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abu Apr 12. 2024

노랑노랑 치즈와 러버덕

램브란트 박물관

 우리 아이들은 유난히 치즈를 좋아한다. 내가 반고흐, 램브란트, 베르메르의 그림을 보러 암스테르담을 왔다면 아이들은 치즈를 잔뜩 사서 집에 가져갈 생각으로 암스테르담에 왔다. 애들 아빠가 네덜란드로 출장 갈 때면 두부 500그람 한모를 원통형으로 만든 크기의 네덜란드 치즈를 사 오곤 했다. 맛별로 다른 색깔 왁스로 덮인 원통 치즈가 세 덩이 혹은 여섯 덩이씩 그물에 묶여 있는데 12개를 사 온 적도 있다. 그럴 때면 아이들은 한동안 간식으로 치즈와 과일을 먹곤 했다. 어릴 때부터 먹어서 그런지 특이한 향으로 먹기가 꺼려지는 고트 치즈도 곧잘 먹을 정도로 치즈를 좋아한다. 친구가 너네 애들은 간식으로 와인 안주를 먹는구나라고 하니 말 다했지. 유럽에 와서 좋은 점 중에 하나는 맛있는 치즈가 많다는 점. 그러니 나와 달리 아이들의 머릿속은 낙농업의 나라 네덜란드에 가서 치즈를 먹을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지난번 비행기 놓친 사건으로 긴장한 탓에 스톡홀름 아를란다 공항에 여유 있게 도착했다. KLM 네덜란드 항공을 탔더니 식빵 사이에 치즈를 넣은 간단한 샌드위치를 나눠 줬다. 역시 치즈의 나라, 샌드위치에 치즈와 마요네즈뿐이다. 스톡홀름에서 암스테르담은 두 시간 걸린다. 이번에는 3박 4일 일정이라 짐도 최대한 간단히 들고 왔다. 공항에 내려 셋이 한 몸처럼 붙어서 출국장으로 나갔다. 치즈들이 곳곳에 보였다. 애들이 벌써부터 치즈를 사자고 한다. 아니야. 시내엔 더 많을 거야. 일단 시내로 가보자.


 와중에 첫째가 갑자기 질문을 했다.

 "엄마 성과 마약이 자유롭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잉?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린가.

 "어? 그건 어떻게 알았어?'

 "엄마가 내가 네덜란드에 대해서 물어봤더니 여행책 줬잖아요. 그거 읽어보라고. 거기 그렇게 적혀 있던데요?"

 

 아뿔싸 내가 준 유럽여행 책자에 네덜란드를 그렇게 소개하고 있구나. 속으로 이 녀석이 정말 뭘 몰라서 묻는 건가 아니면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건가 가늠할 수가 없어 일단 설명을 시도했다. 최대한 담백하게. 몸을 사고팔 수 있어. 에라이, 망했다. 둘째가 옆에서 갑자기 끼어든다

.

 "뭐? 몸을 사고 판다고?? 왜?? 노예 같은 거야??

 "아니 아니,,,"


 아 난감하다. 설명 포기. 설명하려니 너무 알아야 할 것이 많다. 이건 건너뛰고,, 다시,


"마약이 자유롭다는 건 합법인 마약이 있어서 그래."

"뭐어?? 마약이 합법이라고???"


 둘 다 큰일 날 소릴 한다는 표정으로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봤다.

 아.. 설명하기 힘들어. 네덜란드 너 이 자식..

 그러는 사이 다행히 또 한 번 현란한 자태로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 치즈들이 등장했다. 위기를 넘길 수 있게 해 준 치즈에 감사하며 아이들을 몰아 기차를 타러 나갔다. 스키폴 공항에서 암스테르담 중앙역까지는 30분도 걸리지 않는 느낌이다. 금세 암스테르담 중앙역에 내렸다. 역을 나가니 바로 운하가 보였다. 암스테르담 시내 지도를 보면 반원형의 구시가지 사이사이가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마치 거미줄처럼. 나를 난감하게 한 그 여행 책자에 이렇게 적혀있다. 70여 개의 섬을 500여 개의 다리로 연결하고 있다고. 우리는 천천히 걸어 암스테르담의 중심거리인인 담락 거리를 따라 내려갔다. 나막식 장식품, 튤립 화병 그리고 치즈가게가 건너 건너 이어진다. 아이들이 치즈가게가 보이자 이번에도 지체 없이 들어갔다. 시식 치즈가 종류별로 놓여있었다. 여러 가지 다양한 종류의 치즈를 맛봤다. 치즈가 신선하다! 마침 점심 먹을 때도 되었던지라 셋이서 맛보겠다며 이것저것 집어 먹었더니 너무 먹은 것 같아 또다시 아이들에게 얼른 나가자고 재촉했다. 첫째가 또 이야기한다. 엄마 치즈 사자. 아니, 마지막에 사자. 아,, 안 되겠다. 일단 점심을 먹여야지. 담락 거리 중간쯤에서 한 음식점을 골라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 나와 지난번 여행에서 뼈저리게 배운 '캐리어는 숙소에'를 실천하기 위해 일단 숙소로 가기로 했다. 담락거리를 더 걸어 내려오니 담광장이 있고 그 옆에 신교회와 왕궁까지 모두 모여있다. 건물 앞에서 인증샷을 찍고 교회와 왕궁에 관심 없으신 두 분을 모시고 72시간 교통카드를 구매했다. 암스테르담 시내는 트램으로 잘 연결되어 있어 이번엔 주로 트램을 이용할 계획이다.

 

 이번 숙소는 뮤지엄이 모여 있는 근처로 잡았다. 아이들은 전혀 모르지만 이번 여행의 백미는 미술관 관람이니까. 지난번엔 아파트먼트에 묵었다면 이번엔 호텔이지만 사실은 호텔이라기엔 호스텔 같은 느낌의 숙소다. 유럽은 뭐든 비싸다. 4일 묵기에 깔끔하고 바로 옆에 커다란 공원이 있고 무엇보다 예약하면서 눈을 부릅뜨고 두세 번 확인한 싱글침대가 3개인 곳이라 저녁에 와서 잠만 자기엔 아주 적절하다며 만족했다.


 숙소에 짐을 놓고 나와 램브란트 박물관으로 향했다. 램브란트가 살던 집을 복원해 만든 박물관이다. 그의 대표작 다수가 여기서 작업되었다고 한다. 아래층 현관 입구부터 응접실, 부엌, 침실 등을 층층이 구경하며 올라갔다. 오디오 가이드가 있어서 각자 오디오 가이드의 순서에 따라 둘러보았다. 제일 꼭대기 층에 램브란트의 작업실이 있었다. 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장소에는 커다란 이젤부터 팔레트 물감까지 전시되어 있었다. 그 시절에 물감의 재료들은 무엇이었는지, 색의 배합은 어떻게 했는지도 전시로 가늠해 볼 수 있어서 그림을 좋아하는 둘째가 흥미롭게 관찰한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 다양한 장식품이나 신기한 물건들을 모아둔 곳도 구경했다. 빛과 어둠의 화가라 불리는 램브란트는 빛이 잘 들어오는 꼭대기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렸구나. 걸린 그림들은 대부분 복제품으로 보이지만 데생이나 에칭은 진품으로 조금 전시되어 있었다.


 오늘 일정은 이게 끝이다. 우리는 다시 거리를 걸어 다녔다. 램브란트 박물관에서 다시 담광장 쪽으로 걸어가면서 이것저것 구경했다. 운하와 운하를 이은 다리와 다리를 따라 걸었다. 끊임없이 운하 위에 다리로 연결된 도시가 신기했다. 나름 운치도 있었다. 걸으면서 둘러보면 종종 보이는 몇 가지 상점이 있다. 왠지 느낌만으로도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은 허브 상점과 커피라고 쓰인 카페 앞에 앉아 있는 눈동자에 그 어떤 총기도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간혹 보인다. 그리고 걷다 보면 간헐적으로 코를 쏘는 처음 맡아보는 허브 냄새. 아.. 우리나라에서 불법인 그것의 냄새인 건가? 코가 예민한 첫째와 나는 끊임없이 길거리에서 자꾸 나는 이 같은 냄새가 뭘까 궁금했지만 둘째는 전혀 모르는 듯했다. 첫째가 또 묻는다.


"엄마, 이게 대체 무슨 냄새야?"


 나도 짐작만 하지 알 순 없으니...


"글쎄, 이 냄새가 이렇게 많이 나네..."


 난감하던 차에 둘째가 발랄하게 이야기한다.


 "엄마, 여기 러버덕 가게가 너무 많아. 아까 갈 때 봤던 러버덕 가게에 꼭 가보고 싶어!"

 

 그러고 보니 러버덕 가게가 진짜 많다. 어릴 때 집집마다 아이들 목욕시간에 열일한 러버덕. 석촌호수에 대형 러버덕이 띄워졌던 걸 구경 갔던 아이들이라 다 커서도 러버 덕에 대해 기억하고 있다. 왜 암스테르담에 러버덕 가게가 많은지 찾아보니 아마 그 대형 러버덕과 세계 곳곳을 갔던 설치미술가가 네덜란드 출신의 플로렌타인 호프만이라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서 러버덕 기념품만 파는 상점이 많은 건가. 혼자 추측해 본다. 가게에 들어갔더니 정말 다양한 캐릭터의 모습을 한 러버덕이 진열되어 있었다. 반고흐 러버덕부터 조커 러버덕까지. 바닥부터 천장까지 줄줄 늘어선 노란 러버 덕을 보고 있자니 귀엽기도 한데 오리의 습격이랄까 러버덕에 압도당하는 느낌. 애들도 한참을 보고서도 딱 마음에 드는 러버덕을 발견하진 못해서 결국 빈손으로 상점을 나왔다.


 담광장까지 설렁설렁 걸어오는 길에 둘째가 또 소란을 떤다. 던킨 도너츠를 발견한 것이다. 아이들이 한국에서 소아과 갔다가 나오는 길에 참새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가듯 자주 던킨 도너츠에 들러 도넛을 먹곤 했다. 스웨덴에도 당연히 던킨은 있을 줄 알았는데 스웨덴 온 이후에 아이들이 던킨 도넛을 먹고 싶다 해서 검색해 보니 아예 몇 년 전에 던킨은 스웨덴에서 철수한 걸로 보였다. 다른 도넛 집이 있긴 하지만 스웨덴 사람들은 도넛을 많이 먹지 않는 것 같았다. 케이크나 시나몬빵을 주로 먹어서일까. 이번에도 눈썰미 좋은 둘째가 던킨 도넛을 발견했다. 눈이 반짝 거린다. 그래 먹어라. 던킨 도넛.


 도넛을 산 아이들 눈빛이 흐뭇하다. 도넛 한 상자를 들고 길거리를 구경하며 걸었더니 어느새 담락 광장이다. 광장엔 항상 구경거리가 있네. 여긴 외발 자전거를 타고 불쇼를 하는 아저씨가 계셨다. 외발 자전거로 빙글빙글 큰 원을 돌며 양손에는 휏불을 들고 입에서는 휏불을 향해 뭔가를 내뿜고 계신다. 불쇼는 언제나 아이들의 시선을 끌지. 아름다운 운하와 매캐한 냄새가 공존하는 곳. 노랑 치즈와 노랑 러버덕의 도시, 암스테르담. 


이전 09화 암스테르담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