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책자에 암스테르담 다음 목차 잔세스칸스. 네덜란드에 가면 어디선가 풍차를 볼 수 있겠지 막연히 생각했는데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면 20분 만에 풍차마을에 갈 수 있다고. 그럼 가야지 풍차마을. 아이들은 분명 미술관보다는 풍차마을을 훨씬 더 좋아할 거야.
기차역 코흐 잔디크에서 내리는 사람은 모두 잔세스칸스로 간다고 보면 된다. 책에는 역에서 풍차마을까지는 걸어서 15분 정도 걸린다고 적혀 있는데 지하로 내려가서 왼쪽, 오른쪽, 삼거리 어쩌구의 여행책자를 보면서 뭐가 이리 복잡해,, 책자 한번 길 한번 보며 걸어가는 도중에 깨달았다. 아, 모두 풍차마을 가는구나. 그냥 사람을 따라가자 하고 동네를 둘러보며 사람들이 향하는 곳으로 걸었다. 마을은 정말 작았고 길에 지나다니는 사람은 대부분 풍차마을을 보러 온 사람들이었다. '잔'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며 보니 강가에 풍차가 5개 정도 보인다. 한적한 시골마을의 풍경이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물, 풀, 풍차의 조합이라니 이런 걸 두고 목가적이라고 하겠지.
특별히 관광단지로 조성했다 보긴 힘들고 그저 풍차마을에 있던 나막신 공장과 치즈 공장을 풍차를 보러 온 사람들이 나막신도 사고 치즈도 살 수 있게 없애지 않은 것 같다. 언덕하나 없는 평지 강가에 풍차가 돌아가고 시골 논두렁 길 같은 거리를 따라 사람들이 걸어간다. 따라가다 보니 나막신 공장이 나왔다. 입장료도 없이 나막신 만드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었다. 기계에 나무토막을 넣었더니 점점 나막식의 겉모습으로 변했다. 속을 파내는 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건지 아니면 보여주려고 사람이 파는 건지 한참 속을 파고 후후 불어낸 후 또 속을 판다. 역시 아이들은 뭘 만드는 걸 보는 걸 좋아한다. 나막신 만드는 모습을 열심히 보고 있다. 예쁘게 색도 칠하고 무늬도 그려 넣은 나막신 모양 액세서리를 골라서 건물을 나왔다.
이번에도 사람들을 따라갔더니 치즈공장이다. 치즈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예전 치즈공장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꾸며진 세트를 구경했다. 모형으로 만들어둔 지름 50cm는 족히 되어 보이는 낮은 원통 치즈모형을 들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그리고 마지막, 짜잔 치즈샵이 펼쳐졌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곳곳에서 기계적으로 치즈 슬라이서를 들고 플란다스의 개 주인공 넬로 여자친구 복장을 한 언니들이 치즈를 계속 썰고 있다. 페스토맛 치즈, 트러플맛 치즈, 허브맛 치즈 심지어 맥주맛 치즈! 수북이 쌓여있는 시식 치즈들을 맛봤다. 뒤를 돌아보니 애들이 없다. 이미 저쪽 대각선 시식 코너에서 다른 맛 치즈가 썰어지길 기다리고 있다. 맥주맛 치즈는 굉장히 신기하긴 했지만 맛은 별로였다. 역시 맥주는 마셔야 제맛이지. 종류별로 치즈 여섯 덩이를 사서 나오면서 치즈러버 첫째가 고민한다. "한 줄만 더 살까?" 아냐 아냐. 엄마가 시내에서 봤더니 다른 이름의 치즈샵이 있었어. 거기서도 사보자. "그래? 알겠어."
드디어 강가에 세워진 풍차 가까이 왔다. 풍차는 입장료가 따로 있었다. 조직적이지 못한 게 아무래도 그냥 마을에 있던 것들일 거야. 우리가 본 풍차는 작물 분쇄하는 풍차였다. 바람이 풍차날개를 돌리면 풍차 내부에 커다란 맷돌이 돌아간다. 맷돌이 아랫돌 윗돌이 있다면 풍차 내부에 아랫돌은 눕혀져 있고 윗돌은 세워져서 풍차날개가 바람에 돌아가는 힘을 이용해 돌이 둥글게 돌면서 돌 사이에 놓인 작물을 빻고 있다. 커다란 돌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자 저 밑에 뭘 넣든 제대로 빻아 버리겠구나 싶었다. 맷돌이 돌아가는 소리도 크고 먼지도 많이 나서 우리는 좁은 계단을 올라가 밖으로 나갔다. 아이들이 생각하는 네덜란드의 상징 풍차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치즈도 사고 나막신도 보고 풍차랑 사진도 찍고 그렇게 잔세스칸스를 구경하고 다시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왔다.
트램을 타고 꽃시장으로 향했다. 튤립의 나라여서 그런지 구근이 잔뜩 진열되어 있다. 사실 처음엔 웬 양파 인가 하고 다가갔더니 각각 양파마다 아니 아니, 구근이 담긴 칸마다 꽃 사진이 위에 꽂혀 있다. 사진을 보고서야 이 양파(실은 구근)에서 예쁜 꽃이 나오겠더니 상상할 수 있었다. 세상에,, 양파 옆에는 커다란 생강 아니 아니, 이것도 구근의 한 종류 인가 보다. 이 생강(실은 구근)에서도 어여쁜 꽃이 피어나나 보다. 실제로 보지 않고서 생강 모양과 양파 모양의 뿌리만 봐서는 상상하기 힘든데 여하튼 구근이 담긴 칸마다 양파와 생강이 아님을 알리듯 꽃사진이 붙어있다. 아이들이 한뿌리만 사자고 했지만 노노 너네가 심고 키울 거 아니잖아. 구경만 하자. 우리는 7월이라 튤립의 뿌리만 보고 가지만 봄에 오면 튤립도 많이 볼 수 있겠지.
자 이제 저녁을 먹으려면 이제 슬슬 이동해야 한다. 오늘 저녁은 숙소 근처에 치킨집이다. 지도로 검색하던 중에 '강남치킨'이란 곳을 발견했다. 암스테르담에 강남치킨이라니, 런던에서의 치맥이 하루의 힘듦을 싸악 잊게 해 줬는데 과연 암스테르담 치킨은 어떨까. 설레는 마음으로 음식점에 들어섰더니 사람들이 많다. 끊임없이 치킨을 주문하고 테이크아웃해서 간다. 벽면에 치느님이라고 한글이 적혀 있다. 메뉴판을 보니 이런 이런,,, 사이드로 밥과 김치를 주문할 수 있었다! 밥과 김치를 같이 판다고! 그럼 오늘은 치밥이다! 비록 유럽 물가에 버금가게 치킨 또한 비쌌지만 암스테르담에서 치밥이라니. 오랜만에 간장양념 치킨을 맛보며 밥 한 숟갈 치킨 한입 김치 한 조각을 무한 반복하며 맛난 저녁을 해결했다.
밥을 다 먹고 나오는 길에도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치킨집에 들어왔다. 마치 한국 음식을 함께 맛보러 다니는 동호회 느낌이다. 아무래도 네덜란드 젊은이들 사이에 K-치킨 열풍이 부나 보다. 우리는 배가 부르기도 했고 아까 치킨 먹을 생각에 제대로 둘러보지 못한 공원을 천천히 산책하며 숙소로 되돌아가기로 했다. 공원에는 저녁시간을 보내는 암스테르담 시민들이 곳곳에 있다. 커다란 공원에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 운동하는 사람,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 그 사이에서 유난히 잔디를 가로지르면 뛰고 있는 우리 아이들이 보인다. 그 어느 때보다 힘차게 뛰어다닌다. 아무래도 든든하게 먹은 치밥 덕분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