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 여행이 반고흐 미술관 관람이 목적이라고 해놓고선 실은 티켓도 없이 암스테르담에 갔다. 여행 일 주 전에 슬슬 세부계획을 세워볼까 하고 일정을 짜면서 알게 되었다. 반고흐 미술관 티켓팅은 미리 해야 한다는 것을. 아마 방학 기간이어서 더 표가 없었을지도. 티켓 예매하는 사이트를 뒤져 뒤져 표를 찾아도 예매 가능한 표는 취소표로 나오는 한 두장이었다. 그것마저도 금세 사라졌다.
결국 과연 이렇게 가는 게 맞냐는 남편의 비난을 들으며 출발 전에 4인 프라이빗 투어로 반고흐 미술관 예약을 했다. 안 갈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내 위시리스트라고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하지만 출장으로 암스테르담을 갔다가 반고흐 미술관 표를 쉽게 구했던 남편은 계속 못마땅해했다. 그때는 아침에 일찍 줄을 서면 입장 가능한 것 같더란 이야기를 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분명 아니었는데. 어쩔 수 없었다. 미리 하지 않은 건 나니까. 이번에도 시키는 대로 해볼 수밖에. 잔세스칸스 가기 전에 반고흐미술관으로 갔다. 미술관 오픈 전이라 10명 남짓한 사람들이 서있었다. 표를 현장구매할 수 있다면 풍차마을은 하루 미뤄도 되니까. 하지만 표 없이는 입장할 수 없단다. 줄에서 튕겨져 나왔다. 난 표가 없으니까. 남편한테 현장구매는 안된다고 했더니 별 말이 없다. 침묵 속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 돈 주고 가는 건 아닌 거 같아...
그러더니 어제 잔세스칸스를 다녀오는 길에 연락이 왔다. 표를 구했단다. 빨리 프라이빗 투어는 취소하라고. 항상 바로 포기하고 대안을 찾는 나와 달리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라고나 할까. 대단하다 고맙다고 하고 프라이빗 투어는 취소했다. 이십만 원은 아꼈네. 하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할 걱정이 스쳐 지나간다. 국립박물관에 어린이를 위한 워크숍을 예매해 두었는데 오전에 반고흐 미술관을 갔다가 오후에 국립박물관을 가야 하는 일정이 되어버린 것이다. 두 곳이 큰 잔디밭을 두고 건너 있을 정도로 가깝기에 매우 효율적인 동선이라고 볼 수 있긴 하지만,,,
아이들은 분명히 싫어할 것이다. 게다가 이번엔 투어도 없다. 반고흐 미술관은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가능했고 국립미술관은 아이들에게 중요한 작품만 설명해 주면 되겠지 하고 직접 데리고 다닐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과연 별 트러블 없이 잘할 볼 수 있을까? 하지만 걱정은 잠시. 어쩔 수 없다. 어떻게 되겠지.
드디어 반고흐 미술관 10시 30분 입장. 남편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며 여행 삼일차 피곤한 얼굴의 두 아이를 데리고 미술관에 입장했다. 한국어 가이드를 하나씩 목에 걸고 반고흐의 자화상부터 살펴봤다. 여러 가지 버전의 자화상이 걸려있었다. 워낙에 자화상을 많이 그린 반고흐니까. 해바라기는 한 달 전에 런던 내셔널 박물관에서 봤지만 아이들이 아는 그림 나왔다며 아는 채 할 수 있어해서 뿌듯했고 평소에 볼 수 없었던 반고흐의 그림들이 많아서 확실히 눈이 즐거웠다. 노란 집이라는 작품은 고흐가 아를에 머물 때 집을 그린 작품인데 도판으로 볼 때와 사뭇 느낌이 달랐다. 노란 집과 파란 하늘의 보색 대비가 강렬한 작품인데 실제 그림을 보니 하늘이 마치 밤의 푸른 하늘처럼 짙은 색이었다. 하늘만 보면 어두워지는 밤 같은데 집은 노랑 그 자체여서 밤인지 낮인지 혼란스러워 보고 있으면 긴장감 내지는 불안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걸려 있던 꽃 피는 아몬드 나무 그림은 행복감이 가득 느껴지는 그림이었다. 그림이 생각보다 훨씬 컸다. 작은 그림인 줄 알았던 나는 큰 그림에서 오는 감동에 한참을 그림 앞에 서 있었다. 사랑하는 동생 태오의 아들이 태어남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함께 행복해했구나.
다행히 아이들도 그림을 잘 즐겨주었다. 워낙 많이 들어본 화가고 그림도 아이들 눈에 쏙쏙 들어오는 그림이니 더 잘 봤을 것이다. 직관적으로 아름답고 색도 선명하니 아이들 눈도 즐거웠을 것이다. 오전을 다 보내고 미술관 안에 있는 음식점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산 하나 넘은 심정으로 오후에 관람할 국립박물관도 순탄하길 바래본다. 결론적으론 그렇지 못했지만.
점심 먹고 나와서 광장을 가로지르며 자 이제 저기로 가면 된다 했을 때 이미 원성을 샀다. 또 미술관이야? 어쩌다 보니 이렇게 스케줄이 되었어. 너무 힘들면 저기선 앉아 있어도 돼. 그림을 다 볼 필요는 없거든. 엄마가 중요한 그림이 어디 있는지 보고 와서 중요한 것만 보자. 앉아있어도 된다는 말에 입은 나왔지만 더 이상 불평하길 멈춘 아이들을 보면서 슬쩍 또 다른 당근을 제시했다. 그리고 그림 잠깐 보고 '마스터피스'라고 어린이들 체험관을 예약해 뒀어. 거기서 이것저것 체험하면 좀 더 재미있을 거야. 그제야 입이 들어간다. 하지만 난 알고 있다. 분명히 미술관은 앉아 있으면 된다는 것만 기억하고 체험 언제 가냐고 계속 물어보겠지.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은 규모가 컸다. 일단 안내도에서 층마다 내가 보려고 했던 그림이 있는 곳을 체크했다. 아이들은 베르메르, 렘브란트 정도만 봐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미술관이어서 그렇기도 하고 반고흐처럼 화가 한 사람 그림만 있는 것도 아니어서 역시나 아이들의 집중력은 확 떨어졌다. 이층으로 올라가는데 이미 앉아 있겠다고 했다. 그래. 앉아있어. 엄마가 둘러보고 올게. 둘을 앉혀두고 잰걸음으로 그림을 찾아 나섰다. 베르메르의 그림은 순간을 정지시켜 놓은 것만 같았다. 우유를 따르는 하녀의 그림과 집의 정면을 그린 그림에서 오후의 따사로움과 여유로운 순간이 느껴졌다. 그림의 구도 때문일까 더 안정적이고 차분한 그 순간. 언젠가 나의 어린 날에 느꼈던 오후의 그 여유로움. 램브란트의 야경은 아주아주 커다란 그림이었다. 유리돔 안쪽에서 그림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기계가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림의 1/3 지점이 가려져서 전체가 보이지 않는 게 너무 아쉬웠다. 아쉬운 마음에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그래도 넌 다행이라며 지난주에 온 사람들은 저 기계가 가운데를 가리고 있어서 사람들 얼굴을 못 보고 갔어라고 한다. 아,, 그렇구나.
애들이랑 이 정도만 봐야겠다며 다시 빠른 걸음으로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랬더니 웬걸. 둘이서 투닥투닥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작은 벤치에 앉아서 서로 자기를 침범하지 말라는 유치한 말싸움이었다. 순간 너무 화가 났다. 애들 기다릴까 봐 나는 다른 그림들을 얼마나 빨리 보고 왔는데 앉아서 싸우기나 하고. 한국사람도 없겠다. 한국말 복화술로 혼을 냈다. 어금니 꽉 깨물고. 엄마의 화남은 만국공통인 것일까. 한국말로 혼내고 있었는데 벤치에 함께 앉아있던 노란 머리 청소년이 슬그머니 자리를 뜬다. 아차, 느껴졌구나.
엄마의 꾸중을 들은 아이들이 한풀 기가 꺾였다. 따라오라는 말에 고분고분 자리에서 일어나 따라온다. 램브란트 야경은 그림 사이즈가 워낙 커서 아이들도 가운데인물들을 보고 쪽에서 왼쪽으로 보느라 시간이 걸렸다. 나도 공부해 온 것을 아이들에게 기억나는 대로 최대한 알려주었다. 역시 가이드투어를 하는 게 최선의 선택인 걸까. 그랬다면 아까처럼 화를 내는 일은 없었을 텐데라며 후회하고 있을 때였다. 저쪽에서 떼를 쓰는 6살짜리 꼬마아이가 보였다. 미술관이 지겨운 모양이다. 다리도 아프고. 아이 옆에 허리를 숙이고 아이 귀에 바싹 얼굴을 대고 어금니 꽉 깨물고 복화술을 하고 있는 외국인 엄마가 보였다. 그래, 미술관은 아이들에겐 그렇게 재미있는 곳은 아니야. 따라다니는 거에 만족하자.
예약해 둔 체험관 '마스터피스'가 뭐 하는 곳인지 가보자. 애들 얼굴에 화색이 돈다. 드디어 미술관을 벗어났다는 기쁨이 느껴진다. 박물관 내부에서 체험관 쪽으로 이동했다. 일단 아이들에게 하얀색 가운을 준다. 뒤에는 암스테르담 박물관 로고가 찍혀있다. 박물관 직원이 되어 마스터피스를 복원하는 체험이었다. 깨진 도자기 모형 맞춰보기, 그림 복원을 위해선 어떤 물감을 쓰면 될지 찾아보기, 옛날 의상은 무슨 천으로 만들어졌을까 관찰해 보기 등을 방을 돌며 체험했다. 마지막엔 그 자리에서 사진을 찍어 유명한 그림에 자신의 얼굴 넣어보기를 했는데 자기 얼굴이 그림에 들어간 걸 보더니 신나게 웃는다.
고생했다 얘들아. 저녁 먹고 보트 타러 가자. 암스테르담 운하를 작은 보트를 타고 둘러보면 오늘의 일정은 끝이다. 보트 투어를 하는 몇 군데 포인트가 있는데 다행히 국립미술관 근처에서도 시작 가능했다. 보트에는 각 나라에서 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보트가 작아서 둘러앉은 사람이 많지 않아서일까. 보트를 운전하는 투어 가이드가 각자 소개를 부탁했다. 우리가 한국인임을 알더니 K 뷰티 이야기를 한다. 우리나라 화장품이 유럽 사람들도 알 정도구나. 보트에 앉아서 운하 옆에 길쭉한 성냥갑 모양으로 늘어선 암스테르담 집들을 보며 유쾌한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다. 운하의 깊이가 3 미터면 1미터는 자전거로 가득 차있을 거야.전쟁 때 자전거들이 다 운하로 버려졌거든 그리고 태풍이 오면 바람에 날려 운하에 빠지고 그리고 남자친구에게 차인 여자친구가 남자친구 자전거를 운하에 버려버리고! 반 농담 반 진담 같아 보이는 저 이야기가 첫째의 취향을 저격했나 보다. 박장대소하며 웃고 있다.
나중에 암스테드담 여행을 떠올리면 아이들은 어떻게 기억할까? 미술관을 하루에 두 군데 가야 했던 재미없었던 날로? 아니면 보트 가이드가 하던 농담으로? 뭐. 두 가지 다 기억해 주면 더 고맙울 거 같기도 하고. 어떤 기억이든 셋이 함께 여길 왔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추억 하나 더 쌓은 거겠지. 기억해 줘.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