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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bu May 03. 2024

암스테르담 마지막날

This is Holland

 빗소리에 눈을 떴다. 어제 보트 투어 때만 해도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는데 아침부터 비가 온다.

창문을 열고 밖을 보니 중정에 나무와 꽃이 비를 맞고 물광마냥 촉촉하게 빛난다.


 오늘은 암스테르담 마지막날.

미술관에서의 잡음이 있었지만 뭐 그 정도야. 나의 위시리스트는 달성한 관계로 오늘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활동을 해야지. 비가 와서 밖이 어둑하다. 그래서인지 애들은 잘도 잔다. 첫째 날 담 광장 근처에 관광지 입장표를 파는 샵에서 가져온 팸플릿을 뒤적였다. 음, 눈에 들어오는 곳이 있다. This is Holland(홀란드는 네덜란드 북부 지방을 뜻함) - Attraction featurin a 5D flight simulation with wind & water effects over Holland's famous sight. 오호 5D라, 애들이 좋아하겠군. 매 시간마다 예약을 받는 걸로 보아 한 시간 내에 끝나는 것치곤 가격이 비싸다. 잠깐 망설였지만 위치를 보니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우리가 관광한 반대쪽에 위치한다. 바다로 바로 이어지는 강을 배(여기서 타는 배는 교통수단이 인 듯)를 타면 금세 암스테르담 북쪽에 도착하고 조금만 걸으면 이 5D 상영관이 있다. 배 타고 위쪽으로 건너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고 5D 어트랙션이라면 아이들은 놀이기구쯤으로 생각할 거 같아서 클릭클릭, 예매 완료.


 숙소 근처에 빵을 사러 사람들이 끊임없이 들락날락 거리는 작은 빵집이 있다. 커다란 크로와상의 진열된 자태만 봐도 맛집이 확실하단 느낌이 온다. 며칠 동안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오늘 아침은 빵을 먹자. 잠 덜 깬 아이들에게 잠깐 정신 좀 차리고 있으라 하고 혼자 얼른 빵을 사러 갔다. 애들 얼굴만 한 크기의 크로와상과 빵집에서 갓 짠 오렌지주스를 사 왔다. 역시 동네 맛집이었다. 크로와상과 오렌지 주스로 아침을 대신하고 짐을 모조리 때려 넣은 다음에 '캐리어를 숙소에' 맡겼다. 우산을 쓰고 길을 나섰다.


 이번 여행으로 알게 되었는데 한때 암스테르담이 다이아몬드 제작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도 어느 정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마침 근처에 다이아몬드 박물관이 있어서 구경하기로 했다. 반짝거리는 것들을 보고 있으면 언제나 기분이 좋다. 왕실의 왕관도 있고 크리스털 박힌 해골 모양도 있다. 검은 암막커튼이 문을 대신하고 있는 방이 있어 빼꼼 커튼을 재쳐보았다. 방 안은 보관된 보석을 보안을 뚫고 가까이 갈 수 있는지를 체험하는 곳이다. 어두운 방에서 레이저를 잘 피해서 보석까지 가야 한다. 레이저에 닿으면 삐 소리가 나면서 처음부터 다시 도전해야 한다. 첫째가 몇 번이고 한다. 도둑이 될 거니? 이제 그만하자. 엄마말은 들리는지 안 들리는지 어떻게든 레이저를 피하려 안간힘을 쓴다. 구경하던 꼬맹이들이 형아가 다 피해서 보석 앞에 서자 감탄사를 내뱉는다. 멋진 자신의 모습에 도취된 건지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하겠단다. 그래. 그럼 마지막으로 하고 나가자.


 추적추적 아침보다 비가 더 온다. 암스테르담은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 도시가 크지도 않고 기다릴 필요도 없으니 전거가 편리한 이동수단인 듯 보였다. 그런데 가만 보니 자전거와 차가 동급이다. 자전거와 차가 같은 신호로 움직이고 사람은 보행 신호에 움직여야 한다. 마치 자동차처럼 저돌적으로 자전거가 달린다. 자전거 도로에 멋모르고 서 있다간 나를 치고 갈 기세다. 비 오는 날도 예외는 없나 보다. 자전거 부대가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씽씽 달리고 있었다. 문제는 비 오는 날은 자전거는 지붕과 앞유리가 없다고 것. 자전거로 쌩하고 옆을 지나가는 여자가 보인다. 긴 비옷으로 몸은 가렸다고 하지만 얼굴은,,, 웃을 수 없었지만 매우 웃겼고 동시에 걱정도 되었다. 왜냐면 여자의 얼굴에 비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저 정도면 샤워기로 얼굴에 물을 뿌리는 느낌일 텐데. 저 여자 아침에 화장을 하고 나왔을까? 아니, 오늘 같은 날은 세수 안 하고 나와도 되겠는데? 회사에 가면 다시 세수를 하는 건가? 그러고 다시 화장을 하고? 여자는 앞을 보기 위해 눈을 번쩍 뜨고 있지만 비가 들이쳐서 굉장히 찌푸린 얼굴이었다. 와이퍼가 필요해보여... 저렇게 온 얼굴로 비를 받아내는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전거를 타다니. 암스테르담, 자전거를 매우 사랑하는 동네인 걸로.


 숙소에서 캐리어를 가지고 나왔다. 이제 오후 일정이다. 중앙역 캐리어 보관소에 잠시 캐리어를 넣어둬야겠다. 가벼운 몸으로 5D 체험관에 다녀왔다가 캐리어를 찾아서 공항으로 가야지. 캐리어 보관소에 빈자리가 별로 없어서 셋이서 낑낑거리며 높은 곳에 캐리어를 올렸다. 이럴 때 애들 아빠가 생각난다. 아님 아들이 빨리 크길 바래볼까. 


 중앙역으로 가서 잠시 배를 탔다. 3분도 지나지 않아 This is holland 가 있는 암스테르담 북쪽에 내렸다. 사뭇 다른 분위기다. 암스테르담의 성냥갑 같은 집들 대신 현대식 높은 빌딩들이 늘어서 있다. 원통 모양의 큰 상영관으로 갔다. 입장했더니 먼저 영상을 하나 보여준다. 네덜란드의 낮은 지형과 바로 옆의 바다를 이용해 어떻게 물을 에너지화시켜서 사용하고 땅을 개간하고 이런 설명을 블라블라 5D 어트랙션을 타기 전에 듣는다. 그리곤 자 이제 비행기 탑승합시다라며 상영관에 들어간다. 아. 비슷한걸  롯데월드에서 탔었다. 앞에 큰 스크린이 있고 주르륵 있는 의자에 앉아서 위에서 내리는 안전 바를 내리면 발 밑에 바닥이 사라지고 마치 비행기에 탄 듯 이리저리 기구가 움직였다. 비행기를 타고 날으며 암스테르담 시내부터 주변지역까지 본다. 슝슝 바람도 불고 비도 뿌린다. 처음에 네덜란드 소개 영상과 이 5D 체험을 합치면 40분은 될라나. 살짝 본전 생각이 났지만 아이들은 재미있다고 했다. 그래. 어린이들은 어제 간 미술관보단 여기가 훨씬 재미있지.


 다시 배를 타고 역으로 돌아왔다. 이제 스키폴 공항으로 가자. 비행기 9시 30분 출발, 공항 도착 5시 45분. 런던에서의 악몽을 다신 겪지 않겠단 마음으로 일찍 갔다. 아이들도 어찌나 재촉하던지 이번엔 비행기를 놓칠 수 없다며. 아니 저기요. 암스테르담에선 일단 공항까지 한 번에 갈 수 있고 멀지도 않다고요. 여러 번 설명해도 소용없었다. 공항에 도착했더니 6시가 되지 않았다. 다행히 스키폴 공항은 붐비지 않았다. 보안검색대까지 무사히 통과하고 저녁을 먹었다. 치즈도 잔뜩 사고 각자 게임과 유튜브를 보는 여유까지 즐겼다. 그리고 무사히 스톡홀름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그렇게 별 탈 없이 암스테르담 여행이 끝났다.


레이저를 피하고 보석에 도달한 첫째. 까만 얼굴에서도 기쁨이 느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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