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타누키 차차 Aug 07. 2019

21. 감정 노동. 감정 경영. 감정 실업

저마다 다른 감정적 일하기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 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게 서언물을 안 주신대~'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우는 일에 어째 좀 야박하다. 크리스마스 때 눈물을 흘릴 정도의 서러움이라면 좀 이해하고 보듬어 줄만도 한데 울음을 그쳐야 선물을 준다는 조건부라니 이 동요엔 꽤 잔인한 면이 있다. 아직 자기가 왜 우는지도 모르는 어린아이인데.


 어렸을 때부터 승부욕이 강했던 나는 '우는 것=지는 것'이라는 공식을 뼛속 깊이 새기며 살아 '계집애가 돼가지고 울면 다 해결되는 줄 아니'와 같은 소리를 극도로 경계했다. 내 울음은 항상 참고 견디다 못해 폭포수처럼 터져 나오는 눈물이 많았고 그래서 매번 더 짜고 찌질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하지 말아야 할 1순위는 당연 회사에서 질질 짜는 것. 그래서 찌질해 보이는 것. 미성숙하게 보일까 봐, 프로답지 못한 모습일까 봐, 누군가 겉으로 위로해주면서도 속으론 이래서 여자랑은 같이 일 못하겠네 따위의 평가를 할까 봐.


 워낙에 일이 고되고 매 순간이 경쟁인 업계인지라 우는 팀원이나 상사를 이따금씩 보았는데 모두 여자였다. 우는 남자는 본 적이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쩌다 회사에서 눈물이 나면 화장실로 도망치듯 달려가 씩씩거리며 나를 다그쳤다. 그만 울어 쪼다야. 울면 지는 거야. 다들 속으론 비웃고 있을 거야.



 어이없게도 박조이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는 눈물이었다. 정말 잘 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많은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내 기준으로는. 그녀는 기뻐도 울고 슬퍼도 울었다. 감동을 해도 울었고 화가 나도 울었다. 자기가 울고 싶을 때도 울고 다른 사람이 울고 싶을 때도 울었다. 오직 분노할 때만 눈물을 훔치던 나와는 달리 그녀는 다양한 각도의 눈물 스위치가 있었다. 처음엔 그게 마냥 신기했는데 나중엔 그녀와 함께 할 땐 회사고 나발이고 여자가 어쩌구 저쩌구든 눈물 콧물을 거침없이 배설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 앞에선 찌질해져도 찌질하지 않았다.  


 이렇듯 그녀가 일하는 방식은 참으로 감정적이기 그지없는데 마음에 내키면 정말 열심히 하고 그렇지 않으면 조금 덜 열심히 한다. 나와 스타워즈는 이것을 감정 경영이라고 불렀다. 브리프를 받으러 가서 담당자와 말이 잘 통하면 신이 나서는 열심히인 부스터를 발동한다.


 "너무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야. 시안을 많이 만들 거니까 이번 프로젝트는 좀 집중해서 해줘."


 비즈니스란 무릇 감정에 치우침 없이 이성적인 판단에서 플러스 마이너스를 적절히 계산하는 것이 보통인데 우리는 어떤 이유에서건 우리가 좋아진 프로젝트는 돈을 안 줘도 열심히 했다. 무슨 일을 그런 식으로 하냐라고 말하면 또 할 말이 없는 것이 수익이 되는 일의 대부분이 우리의 이러한 대책 없음을 좋아하는 사람들, 즉 박조이의 감정 경영의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었기에 딱히 그 경영방침을 대체해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바른 방침이 아닌 우리에게 맞는 방침으로 사업은 매달 성장해갔다. 뚜껑을 열어 놓고 끓이는 사골국처럼 더디고 편치는 않았지만 충분히 진하고 영양가 있는 발전이었다.


다른 색깔들이 모여 하나의 빛을 이루는 순간, 혼자가 아니어서 참 다행이라고 느끼는 순간.

 감정 노동이란 어떠한 일을 수행할 때 조직에서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감정을 자신의 감정과는 무관하게 행하는 노동을 의미한다. 비즈니스적인 문제로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다른 감정을 표현해야 할 때 우리는 감정의 부조화를 느끼며 가벼운 스트레스부터 울화통이 치미는 분노를 안고 감정 노동자의 상태가 된다.


 하나도 사랑하지 않는데 사랑합니다 고객님을 외쳐야 하는 서비스직에서부터 보고서가 왜 이따위야 라는 상사의 타박에 너 님이 하셔야 하는 걸 저한테 시키고 퇴근하셔서 그렇잖아요가 아니라 죄송합니다 다시 하겠습니다를 외쳐야 하는 사무직들까지. 사람과 사람 사이, 감정이 생기는 그 무수한 지점에서 밥벌이를 하는 모든 사람들은 기어코 감정 노동자가 되고야 만다.


 박조이는 감정 노동자보다는 감정 경영자에 가까운 사람이다. 자신의 감정을 기계적으로 억누르지 않고 그걸 활용해 일을 그르치거나 성공시킨다. 놀라운 재능이자 저주받은 재능이다. 그녀와 가장 대척점에 있는 사람은 스타워즈다. 그는 감정 실업자에 가깝다. 일에 있어서는 감정을 철저히 배제하고 행동한다. 아무리 말이 안 되는 상황이 펼쳐져도 그러려니 한다. 일을 함에 있어서 감정적으로 받는 타격감이 제로. 속세에 살면서 고기를 섭취하고 연애도 하지만 스님 같은 사람. 작은 일에도 부화뇌동하는 나와 달리 꿋꿋이 중심을 잡고 서 있는 그를 보며 나는 혹시 감정 불구자인 거 아니냐 부러움 반 걱정 반으로 묻곤 했다. 이 둘과 다르게 내가 추구하는 지향점은 감정 노동자다. 감정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고 조직의 요구에 맞는 감정선에서 주어진 일을 완벽히 완수하고 싶다. 그게 남의 돈 받는 사람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잘되지 않는 날이 더 많지만. 이런 분류는 어디까지나 척도로 보았을 때 무게 중심이 조금 더 치우쳐 있다는 뜻이지 절대적인 고정 값은 아니다.


 감정적으로 일하는 방식이 이렇게나 다르니 오히려 밸런스가 맞았다. 나는 책임을 다하고 박조이는 사람의 마음을 얻고 스타워즈는 차분히 중심을 잡았다. 이 사람의 부족함을 저 사람이 채워주고 저 사람의 뛰어남은 또 이 사람이 끌어주며 우리는 쿵짝쿵짝 남의 돈을 벌어갔다.


 인간은 결코 한 가지 모습일 수 없고, 우리의 감정은 시도 때도 없이 변한다. 그 마음을 수용하든 거부하든 외면하든 선택은 본인의 몫이겠지만 최소한 비즈니스라는 영역에서는 현재 내 감정의 초점이 어느 부분에 치우쳐 있는지 확인하고 내가 처한 상황에서 그 초점을 그대로 유지해도 괜찮은 것인지 빠르게 판단해볼 필요는 있다.


 내가 감정 노동자로 살아야 마음이 편한 사람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내 옆의 두 사람 덕분이었다. 나에게 있어 감정 경영은 대부분 후회로 남았고 감정 실업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 자책을 남기곤 했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둘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나를 알아가기에 바빴을 것이다. 필드에서 나에 대한 물음표는 곧 일에 대한 물음표. 나는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내 인생의 물음표를 지워갈 때가 훨씬 더 많은 존재라는 것을 매일의 다름에서 깨달았다.


 엄마 아빠가 나를 낳아 먹였고, 박조이와 스타워즈는 내가 나를 먹일 수 있게 해 주었다. 내가 나인 채로 밥벌이를 할 수 있다는 건 직장인에겐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다.


내가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내가 잘하고 싶은 일을 해내간다

그리고 그것이 돈이 된다


그 순간, 그것은 일이 아니라 꿈이 된다.

아주 찰나의 순간일지라도.

매거진의 이전글 20. 아직은 직장인이 될 수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