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친구들에게 난임을 알리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결혼만 하면, 피임을 하지 않으면 바로 아이가 생기는 줄 알았던 때엔 오히려 임신을 계획하고 있다고 쉽 게 말했던 것 같다. 곧 생길 거라고 믿었으니까.
'어떻게 됐어?'
라고 말하던 친구에겐 더 이상 나를 설명하고 싶지 않아졌고 그저 묵묵히 묻지 않던 친구들만 남았다.
내 주변에 난임을 겪지 않은 사람이 많아서, 내가 시험관을 한다고 하면 백이면 백 '주사는 얼마나 아픈지' 물어봤고 '자기 지인이 시험관을 통해 쌍둥이를 출산한 이야기'까지 말하며 난임은 한 다리 건너 하나는 있는 흔한 일인 듯 날 위로했다. 물론 나도 인공수정 할 때까지도 그들과 비슷한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들이 나를 위해 했던 말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적절한 선을 지키며 남을 위로하기란 참으로 힘든 일인 것도 알고 있다.
나의 요가선생님은 내가 주사로 배가 불편하다고 말하니, '저쪽에서 수련하시던 분도 오래 하시다가 얼마 전에 잘 되셨어요. 00님도 잘 될 거예요.'라고 말했고 그 이후로는 평소처럼 날 대하며 시험관에 관련된 어떠한 얘기도 묻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나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가족이라는 이름하에 나에게 직설적으로 내뱉었던 말이 상처가 되었던 적도 있었고, 어떤 지인은 자신이 난임을 겪어봤다던 이유만으로 나에게 무례한 조언을 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어쩌면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는 걸 염두해야 했다. 물론 나는 공감을 얻기 위함도 아니었고 이해를 받기 위함도 아니었지만.
그래서 한동안 남편인 그에게만 이야기를 했었다.
언젠가 나는 병원 데스크에서 임신 확인 서류를 떼던 여자를 보며 울컥했던 적이 있었다. 눈물을 삼키며 '우리도 저런 날이 오겠지?'라고 말했고, 그는 엉엉 소리 내 울었다. 그도 나와 같이 이 여정을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었다. 나처럼 기대감과 실망감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을 모두 느끼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말을 아꼈다. 또다시 그를 울게 할 수 없기에.
가끔은 난임을 오래 겪은 지인을 만나 이야기를 해보기도 했었다. 시기마다 느꼈던 감정은 비슷했지만 결국 각자 사정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나이도, 시험관 차수도, 현재의 처지도 말이다. 하지만 그 지인에게서 기억에 남을 말을 들었었다. “지금 느끼기에 끝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 끝은 있어요. 그래서 난임은 일시적이죠.”
나는 여전히 누군가를 만나면 내 이야기를 한다. 어쩌면 상처를 받을 수도 있고 더 이상 관계를 이어나가고 싶지 않아지는 순간도 생기지만,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말과 응원을 받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