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식이 실패로 돌아가고 인공수정 3차가 시작되었다. 역시나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렀다.
시험관을 계속할지 말지 남편인 그와 오래 이야기를 나눴었다. 그의 회사에서 난임 비용 일부를 지원하고 있는데 이 조차도 예산이 부족한지 난임이 많은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연초에 신청하지 않으면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서울시 지원금을 제외하고도 시험관 비용을 약 120만 원 정도를 지불하고 나니 어떻게든 회사에서 지원을 받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다행인지 올해는 두 달 정도밖에 남지 않았고 그와 나는 그래도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어느 날은 인공수정을 하는 것이 휴식기를 갖는 것처럼 느껴져 마음이 조급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시험관을 한다고 해서 그 조급한 마음이 없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자연주기로 하다 보니 먹는 약도, 주사도 없었다. 너무나도 여유롭고 몸도 가볍다고 생각했다. 인공수정 2차 때까지는 이 일정에 휘둘려 아무것도 못했던 것 같은데 말이다.
그는 운동과 술을 줄였고, 마카라는 영양제까지 챙겨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토마토가 몸에 좋다는 말에 가락시장에서 토마토를 왕창 사 왔고 매일 아침 갈아먹었다. 그런 그가 난임에 적극적이어서 다행이었고 또 고마웠다.
시술 전날에 난포 터지는 주사를 맞기 위해 아침 일찍 병원에 갔었다. 이 주사를 맞으면 36시간 내에 배란이 되는데 나는 항상 배란이 되고 나서 시술을 했었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은 이번에 배란이 되기 전에 시술을 해보는 게 좋겠다고 판단을 했는지, 시술은 28시간이 채 되기 전에 끝났다.
의사 선생님은 시술이 끝나고 나에게 작은 쪽지를 건네며 “00님, 이번에 정자가 잘 나왔어요. 남편한테 가져다주세요. 잘 나왔다고.“라고 했다. 쪽지에는 23이라는 숫자와 함께 정자의 퀄리티가 적혀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남편이 많이 걱정했는데 다행이네요.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며 눈물을 훔쳤다. 선생님 앞에서 한 번도 운 적이 없었는데, 주책이었다.
시술실을 나오며 남편에게 데리러 오라고 연락했다. 차에 타자마자 선생님께 건네어 받은 쪽지를 보여주며 “이번에 잘 나왔대!! 고생 많았어.“라는 말을 해주었다. 그는 ”휴, 정말 다행이야. 정말...걱정 많이 했는데...토마토가 정말 효과가 있었나? 그래도 인공수정을 도전해 볼 만해졌어.“라며 안심했다.
그때 우리는 아주 작은 희망이 보였다.
이전에는 인공수정을 하기에도 부족했던 숫자였다. 3차에는 그 수가 충분하니 잘 되길 바랐다. 그래서 그랬을까? 나는 시술 후에도 배아를 이식한 것처럼 조심하며 생활했다. 잠도 넘치도록 충분히 잤고 좋아하던 달리기도 쉬었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이번에도 임테기는 한 줄이었다. 나는 이번 차수에 되지 않아도 덜 슬플 거라 생각했다. 몸이 덜 고생했기 때문에.
하지만 무력감이 찾아왔다. 물에 젖어 축 처진 수건처럼 몸이 무거웠다. ‘이번에 안 되면 다음엔 될까? 다음에 안되면 그다음은?…’ 긴 터널처럼 끝이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