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터널의 끝?

by chacha

임테기 한 줄을 확인하고, 처방된 질정도 정리하여 서랍 깊숙이 넣어 두었다. 그리고 하루 종일 잠만 잤다.


나는 스트레스만 받으면 잠이 쏟아졌기에 그도 그런 나를 이해했다. 날씨도 급격히 추워져서 그런지 더더욱 이불 밖으로 나가는 것이 힘들었다.


그래도 한 달 전에 친구와 약속한 중국 여행 날짜가 다가오고 있었다. 간 김에 맥주도 마시고 구경도 할 생각에 우울한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다.

그도 친구들과 한라산을 간다며 날짜를 맞춰 각자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고, 며칠간 집이 빈다고 생각하니 몸을 바쁘게 놀려 분리수거부터 하나하나 집안 청소를 시작했다.


여행을 떠나는 전날, 마지막으로 임테기를 했다. 역시나 한 줄이었다.

같이 간 친구도 그런 나를 배려한 듯 여행 내내 텐션을 높여주었다. 우리는 하루에 만 오천보에서 이만보를 걸었고, 맥주와 기름진 음식으로 배를 꽉꽉 채웠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시작될 인공수정과 시험관이 있으니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그런데 여행 전부터 배가 싸하게 아픈 느낌이 있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생리를 하지 않았다. 같이 온 친구가 “비행기 타고 오면 생리 안 하던데…“라며 한 말이 왠지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


돌아온 다음 날, 피검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아침에도 생리가 시작되지 않자, 임테기를 한 번 더 해볼까?라는 마음이 들었지만, 괜히 더 속상할 것 같아 하지 않고 병원으로 향했다.

의사 선생님도 나에게 언제 임테기를 해봤냐고 물어봤고, 내가 이번에도 안된 것 같다며 말하자 다음 인공수정 일정에 대해 간략히 말해주었다. 다시 집에 돌아와 늦은 아침을 먹었고 집 청소를 하다 보니 1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그때,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00님, 피검사 수치가 329.6이 나왔어요. 안정적인 수치예요!! 의사 선생님도 저도 너무 깜짝 놀랐어요!”라는 약간 상기된 간호사의 말을 듣고 어벙벙해졌다.

이번에도 0.1을 예상하고 받은 전화에서 뜻밖의 말을 들으니 꿈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나에게 질정을 맘대로 끊으면 안 된다며 혼을 냈고, 추가 질정을 받으러 다시 병원에 오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그에게 바로 연락을 했다.

“오빠….”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니, 그는 이번에도 잘 안 됐구나 하며 날 위로하려 했다.

“수치가 329래…나 임신했나 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는 수화기 너머 웃으며 “정말 잘됐다... 고생했어 00아. 진정하고.. 병원 조심히 다녀와. 그리고 일단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우리만 알고 있자.“ 라며 날 진정시켰다.


전화를 끊고 나서 10분 정도 멍하게 앉아있었다.

그리고 임테기를 뜯었다. 두 줄이었다.

그때 난 ‘두 줄이 나오긴 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옷을 다시 갈아입고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아침에 갔던 똑같은 길이었지만 기분이 묘했다. 어두운 터널 끝으로 향해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 밖에 뭐가 펼쳐져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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