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검사 수치가 300대가 나오자 먹던 알레르기약과 피부과 연고를 모두 끊었다. 매일 임테기를 하며 결과선이 진해지는지 확인도 했다. 어제보다 더 연해질까 걱정 속에 잠이 들었고 다음날 약간이라도 연해보이면 우울했다. 그래서인지 일주일 뒤 있을 2차 피검사 날은 정말로 까마득했다.
피검 전날이 돼서야 임테기 두 줄이 비등비등해 보였다. 역전*(임테기 결과선이 대조선보다 진할 때)을 봤으니 당연히 아기집을 볼 거라고 생각했다. 드디어 임신 확인서를 받아보는구나 하고 기대했다.
다음날이 되어 난임 병원에 갔다. 거의 1시간을 기다려 겨우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나를 보며 “남편의 정자가 킥이었네요.”라고 말하며 초음파실로 향했다. 모니터를 내 쪽으로 돌리며 자궁 이곳저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아기집이라고 할만한 크기는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진료실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오늘이면 잘 보여야 되는데, 여기 조그맣게 착상을 시도한 것처럼 작게 보이긴 하는데.....”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을 아꼈다.
내가 “잘 안 됐을 수도 있겠네요?”라고 되묻자 그녀는 “그럴 수도 있어요. 자궁 외 임신일 경우도 있고...” 라며 애매한 대답만 내놨다.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이 멍했다. 그리고 속상했다. 진료실을 나오니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날 안쓰럽게 바라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오늘 남편과 함께 병원에 오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됐다.
집에 돌아와서는 ‘자궁 외 임신’을 여러 차례 검색해 보고 비슷한 시기에 아기집이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보았다. 그렇게 또다시 지옥이 시작됐다.
점심쯤 되어가니 병원에서 전화가 왔고 간호사는 3,289라는 수치가 나왔다며 의아해했다. 그리고 3일 뒤 다시 초음파를 보러 오라고 했다.
나는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의사도 간호사도 모르는 이유를 내가 어떻게 알 것이며, 그 3일을 어떻게 버텨야 할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에게 전화를 했다. 나 스스로가 ‘너무 유난 떠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다시 초음파를 보고 싶었다. 그래서 집 근처 S 산부인과에 가보고 싶다고 하니 그도 휴가를 쓰고 집으로 오겠다고 했다.
그가 집에 오고 그 병원으로 향했다. 내 상황을 설명했고 선생님은 아주 조심스럽게, 그리고 꼼꼼하게 하나하나 체크하며 신중하게 자궁 안을 살펴봤다.
선생님은 화면을 보며 “이 작은 게 아기집 같아요. 지금 피검사 수치에 전혀 이상하지 않은 크기예요. 그래도 며칠 뒤 다시 확인해 보면 좋겠어요. 그리고 자궁 외 임신도 걱정되신다고 해서 봤는데 깨끗하네요.”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눈물이 터졌다. 옆에 있던 간호사도 서둘러 휴지를 뽑아주었다.
“그거면 됐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오늘 우리는 지옥과 천국을 왔다 갔다 했다. 그도 안심했는지 우는 나를 보며 울보라고 놀렸다. 그리고 난임 병원에 가서 따져야겠다며 나 대신 씩씩거렸다. ‘정말 난임 병원 선생님이 잘 못 본 걸까?’
집에 돌아오니 4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갑자기 허기가 졌다. 걸신에 들린 듯 밥을 왕창 국에 말아 후루룩 먹었다. 배가 차니 살 것 같았다. 그러고 나서 아주 작은 완두콩처럼 생긴 아기집을 보고 또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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