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피검사 날이 되었다. 어제가 크리스마스여서 그런지 병원에 사람들이 북적였다. 1시간 반쯤 기다렸을까... 내 이름이 불렸다. 초음파실로 들어갔고 작지만 아기집이 보였다. 3일 전과 비슷한 크기였다. 의사 선생님은 일주일정도 늦은 크기라고 했지만 잘 커주기만 한다면 괜찮다고 했고 초음파 사진을 건넸다.
기쁜 마음으로 병원에서 나와 남편과 함께 보건소로 향했다. 드디어 임신확인서를 받다니 얼떨떨했다. 보건소에서 임산부 배지를 받아보니 더욱 실감이 났다. 차 안에서 가방에 배지를 걸었더니 ‘내가 걸어도 되나’ 싶은 약간 민망한 생각도 들었다.
집에 돌아와 산모수첩에 오늘 받은 초음파 사진을 오려 붙이며 정말 내가 임신을 했구나! 하고 기뻤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2시쯤 됐을까?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피검사 수치가 떨어졌다고 질정을 오늘부터 끊으라고 했다. 갑작스러웠고 당황스러웠다. 나는 “그럼 유산하는 거예요?”라고 재차 물으니 아마도 그럴 거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전화를 끊었고 나는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불과 서너 시간 전에 임신부 등록을 했는데 이제 유산이 된다니... 황당해서 어찌할 줄 몰랐다.
옆에서 듣고 있던 그도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우리 둘의 시간이 잠시 멈춘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충격받은 그를 보니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왔다. “어떡해 오빠...”
임신이 올해에 유일하게 얻은 행복이라고 생각했는데 한 해를 겨우 5일 남겨두고 그것마저 없어져버린다고 생각하니 절망적이었다.
그는 다시 난임 병원에 가서 물어보자고 했다. 머뭇거리던 나는 집 근처 산부인과로 가자고 했고 토끼처럼 빨갛게 변한 눈을 모자로 겨우 가리고 나갔다. 그 의사 선생님은 “안타깝지만, 떨어진 수치는 다시 오르지 않아요. 수치가 떨어지지 않으면 주사로도 떨어뜨릴 수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라며 마치 우리를 다독이는 것 같았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엄마한테 전화를 하고 싶었다. 목소리를 듣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엄마도 그런 나를 가여워하며 같이 울었다. 엄마는 목이 매였는지 수화기를 급히 아빠한테 넘겼고 아빠도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자고, 주말에 내려오면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며 훌쩍이는 나를 달랬다.
전화를 끊고 그와 한참을 울었다. 임신 초기 유산이 많다더니 ‘그게 나였구나’ 싶었다. 그저 랜덤에 걸린 것뿐이라고 생각하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너무 속상했다. 그날부터 나는 다시 병원에 가는 일주일 내내 하루도 울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도 속상한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나를 위해 그 마음을 애써 감췄고 새벽마다 깨서 우는 나를 묵묵히 안아주었다.
길었던 일주일이 지나고 병원으로 향했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벼웠다. 새해 첫날이라 그런 걸까? 빨리 마음을 다잡고 다시 내 일상을 찾고 싶었다.
긴 대기 시간이 지나고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초기 유산은 대다수가 유전자적 문제예요. 일단 초음파를 보고 약물을 쓸지 결정해 보죠.” 라며 내 탓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초음파를 보면서 선생님께 약물 배출이 나을지 소파술*(자궁 내막 조직을 긁어내는 시술)이 나을지 물었고 그녀는 둘 다 장단점이 있다며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평소에는 쫓기듯 진료를 본 것 같았는데 오늘은 선생님도 나를 위해 시간을 조금 더 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흘렀다. 그녀는 휴지를 내밀며 “내일 소파술 하시죠. 이렇게 힘들 땐 빨리 하는 게 나아요. ”라며 단호하게 말해주었다.
그녀의 단호한 말에 오락가락 파도치던 마음이 굳혀졌다. 그렇게 나는 내일 당장 수술을 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