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나는 맞벌이셨던 우리 부모님을 대신하여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손에 자랐다.
할머니 집에는 항상 할아버지가 아끼던 화분들이 창가에 가득했고, 햇살이 가득한 날이면 창문을 활짝 열고 분무기로 물을 주던 할머니 모습이 기억난다.
외할아버지가 지병으로 돌아가시고 10여 년동안 우여곡절을 겪으신 할머니는 마침내 작년 봄이 되어서야 우리 집으로 오셨다. 처음에는 딸의 집에 온 것이 잘못인 양 사위 눈치를 보시기도 했고, 내가 결혼 전에 쓰던 방을 쓰면서 내가 너의 방을 뺏는 것 같아 미안해했다. 하지만 할머니 혼자 서울에 사시는 것이 내심 걱정스러웠던 나는 우리 집에 오신 게 무척 좋았다. 모든 걸 다 내팽개치고 와도 되는 자식의 집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 다행이었다.
할머니는 딸네 집에 온 지 6개월도 안되어 치매가 생겼다. 생겼다는 말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가족들은 갑자기 발현된 것 같다고 표현했다. 할머니가 어느 날부터 새벽에 집을 나가기 시작했다. 우리 집은 논밭과 산으로 둘러싸인 시골 동네에 있어서 할머니가 만약에 도랑에 빠지거나 산속으로 향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낮에는 엄마가 하루종일 집에 있으며 할머니가 어디 가지 못하도록 했고, 밤에는 아빠가 할머니가 나가지 못하도록 밖에서 자물쇠로 모든 문을 잠갔다. 하지만 치매에 걸린 할머니는 밤새 잠긴 문을 흔들어댔다. 내가 가도 한참을 멍하니 어딘가를 바라보기만 했다. 정말로 속상했다.
이런 생활이 한 달이 넘어가자 우리는 모두 지쳐갔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요양원에 보내기로 결정한 것은 엄마였다. 자식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요양원에서 할머니는 찾아오는 엄마를 보며 ‘집에 가자, 집에 가고 싶다.’는 말 뿐이었다. 엄마는 매일 울었다.
요양원에서의 생활이 한 달쯤 되었을까, 할머니는 손 발이 붓기 시작했다. 누워만 지내니 온몸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몇 주를 보내던 할머니는 요양 병원으로 옮겨졌다. 나는 요양 병원으로 모셔진 할머니를 오랜만에 보았다. 손녀가 왔다는 소리에 할머니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나는 면회 시간 내내 할머니의 퉁퉁 부은 손을 쓰다듬으며 눈물을 삼켰다.
할머니는 그렇게 병원에서 지내다가 돌아가셨다.
장례는 순식간에 준비되었다. 3일간 바라본 엄마는 조문을 온 친구와 옛이야기를 나누며 웃기도 했고, 가족 친지들이 오면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염을 한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엄마 화장도 예쁘게 했네. 다리도 펴졌어. 굽은 다리도 피고 싶어 했잖아.’라며 울며 얘기했다. 그리고 생전에 좋아하던 노래를 크게 부르기도 했다. 그 모습이 마치 할머니를 떠나보내는 엄마의 마지막 인사인 것 같았다.
언젠가 내가 내 부모의 장례를 치르며 겪을 일이었다. 또 시간이 지나면 내 자식이 떠나간 나를 위해 장례를 치러줄 일이 될 것이다.
장례는 죽은 이의 마지막이 아니라 남겨진 자식들의 또 다른 시작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