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어느 날, 친척 언니의 결혼식에 갔었다. 고모는 나를 보자마자 처음 한 말이 “아직 애는 없어? 왜?”였다.
일 년에 하루 있는 제사에도 ‘일이 바빠’ 오지 않던 고모는 오랜만에 만난 조카에게 살가운 말 한마디를 할 줄 몰랐다. 그저 고모와 나는 같은 피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가족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네, 아직 없어요. 생길 때 되면 생기겠죠. “라며 정신없이 어린 아들 둘을 돌보고 있는 당신의 딸을 쳐다보며 말했다. ‘자기 손주도 나몰라라 하면서 제가 낳으면 고모가 봐주시게요?’라고 따져 물어보고 싶었다.
게다가 나와의 대화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옆에 앉은 다른 조카에게는 “둘째는 안 낳게?”라고 말하는 모습에 나는 입을 닫기로 했다.
식의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쯤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호텔 식사는 얼마고 생화 장식 추가는 얼마라고 따지던 친척 오빠는 갑자기 나를 보며 “00은 아가씨 같네. 애를 안 낳아서 그런가?”라고 말했고 더 나아가 내 나이까지 물었다. 무례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애를 낳으면 아줌마가 돼? 오빠는 애 없을 때부터 아저씨였으면서 “라며 그 질문을 받아쳤다. 옆에서 듣던 아빠는 ”애를 키우면 피곤에 쩌들어서 그런 거지 뭐“라며 수습을 했다. 친척 언니를 축하해 주러 모인 자리에 선을 넘나드는 잔소리는 명절과 다를 게 없었다.
이 날의 주인공인 언니는 친척 중에서 가장 똑 부러지는 사람이었다. 어렸을 때 우리 엄마가 ”세상엔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게 많아. “라고 했던 말에 ”숙모는 몰라요. 공부를 못하면 아무것도 못해요. “라고 주장하던 언니였다. 언니는 끝내 변호사가 되었고 멋진 호텔에서 결혼식을 열었다. 나는 그런 언니가 멋져 보였고 대단해 보였다. 하지만 친척들은 식장 비용이 더 궁금했고 언니의 나이가 많으니 애는 바로 낳아야 되겠다는 둥 별소리를 다했다.
결혼하면 애는 숙제 같은 걸까? 왜 자꾸 선생님처럼 확인을 하는지, 답안지라도 맡아두고 있는지 정말로 궁금했다.
임신을 기다리고 있는 내 상황을 몰라서 그런 걸까 알았으면 안 그랬을까 집에 돌아오는 내내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결론을 내렸다. 정신 건강을 위해 당분간 이런 행사는 보이콧해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