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게 하나도 없어.

by chacha

난자를 채취하고 나는 복수가 차기 시작했다. 배가 이상할 정도로 툭 튀어나왔고 추리닝은 제외한 다른 바지는 입을 수 없었다. 그래도 이제 몸을 회복하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이틀 뒤 확인한 수정란 개수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단 3개였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채취된 난자 중 50%가 수정되고 그중 50%가 동결이 되면 선방인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16개의 난자 중 단 3개만 수정이 되었고 그중 몇 개나 동결될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동결 배아가 확인되는 날까지 지옥이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 알 수 없는 원인을 찾기 시작했고 걱정에 잠을 설치는 일이 잦아졌다. 그도 그런 나를 바라보며 힘들어했다.


그가 갑자기 동해로 바람을 쐬러 가자고 했다. 심란해진 마음을 다스릴 방법이 이것뿐인 것 같았다. 여행을 떠나는 날, 동결 배아 개수가 나왔다.

’무려 2개였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이식도 못하고 다시 채취부터 할까 봐 걱정했던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이때 나는 사람의 마음이란 게 참 간사하다고 느꼈다. 수정란 3개는 적고 동결 배아 2개는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와 그는 처음 수정란 개수를 확인했을 때, 사실 다른 병원을 알아보고 있었다. 시험관을 오래 했던 지인이 내 상황을 듣고 여러 조언을 해주었는데 그중 하나가 ‘전원’이었다. 선생님이 조금 더 촘촘하게 챙겼다면 조기배란의 상황도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고 한 말이 계속 뇌리에 박혀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지인에게 추천받은 한 병원을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그 병원은 남편의 진료실 출입을 막지 않았고 나는 그저 그와 함께 진료를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그도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을 편하게 물어볼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선생님은 우리가 걱정하는 게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있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나는 그 병원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그곳도 좋았지만 나를 더 오래 봐왔던 지금의 선생님을 믿고 따라가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오히려 다른 병원을 가봤던 것이 심란했던 마음을 다잡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또 일주일이 지났다. 이식을 위해 병원에 갔고 그날은 담당 선생님의 부재로 다른 분이 나를 봐주었다. 그 선생님은 내 동결 배아를 보더니 갸우뚱했다. 미성숙 난자 3개를 제외하면 13개의 난자는 모두 상태가 좋았기에 정자의 영향을 받은 것 같은 뉘앙스로 얘기를 했다. 그래도 3일을 배양한 배아 2개가 있으니 한 번에 이식해 보기로 했고, NK(면역 세포) 수치를 낮춰주는 일명 ‘콩주사’ 링거를 맞고 퇴원했다.


2주 만에 다시 병원에 가서야 드디어 담당 선생님을 만났다. 그녀는 갑자기 밖에 있는 남편을 진료실로 부르더니, ‘정계정맥류’가 의심되니 비뇨기과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라고 했다. 그리고 정계정맥류 시술을 한다면 최소 3개월 동안 시험관은 할 수 없으니 빠르게 검사를 받아보라고도 했다.


그 말을 들은 그는 무척 황당해했다. 최소 2주 전 병원에 방문했을 때라도 알려줬다면 시간을 버리지 않았을 텐데 왜 지금에서야 말해주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 병원에 가는 게 두렵다고 했다. 갈 때마다 사건이 터지니 말이다.


그리고 나도 배가 돌처럼 딱딱해진다고 하여 붙여진 별명인 ‘돌주사‘가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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