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아 이식을 앞두고 시작된 배주사는 멍이 자주 들었고 옷깃이 스치기만 해도 아팠다. 그는 산부인과에서 비뇨기 검사를 빨리 해보라는 말에 급하게 여러 병원에 전화를 했다. 그중 가장 빠르게 검사가 가능한 병원을 찾았고 다행히 그는 정상 소견을 받았다. 그 질환에 대해 찾아보고 어떤 시술이 나을지 밤새 고민하며 보낸 며칠이 아까울 정도였지만 문제가 없다는 말에 이제 나만 잘 되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식 당일, ‘호박 제리’를 챙겨 시술실로 향했다. 미신이지만 삼신할머니가 좋아하는 사탕을 들고 이식하러 간다고 한 말에, 나는 취향을 고려하여 호박 제리를 챙겨갔다. 난자 채취할 때보다 컨디션도 좋았다.
의사 선생님은 이식할 배아를 보여줬는데 누가 봐도 아주 예쁘게 잘 분열된 3일 배아였다. 짧았던 이식이 끝나고 의사 선생님은 인화된 배아 사진을 보여주며 잘 분열된 상급 배아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남편의 검사가 정상이었다고 말하니 갸우뚱하며 ‘컨디션 때문이었을 수 있겠네요. 그래도 이번에 되면 그 문제는 상관없으니깐요.’라는 말을 남기고 나갔다. 사실 선생님이 남편에게 검사를 해보라고 권유했을 때, 차라리 그 질환 때문이라면 고칠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했고 그게 아니면 나빠진 정자의 원인을 찾기 어려울 수 있다고 넌지시 말했었다.
선생님이 나가고 콩주사 링거를 맞는 40분 동안 배아 사진을 보며 여러 생각을 했다. 기대감도 당연히 있었다. 그리고 임신을 하게 되면 어떨지 상상도 해봤다. 집에 오자마자 냉장고 앞에 사진을 붙이며 잘 되길 바랐다. 그도 여러 감정이 섞인 표정으로 그런 날 바라봤다.
이식하고 하루 이틀은 내 몸에 무언가 있다는 생각에 행동을 조심했다. 사실 내가 어떠한 행동을 한들, 배아에게 아무런 영향이 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조심해야 할 것 같았다. 그도 내가 무엇을 먹을 때마다 ‘이건 괜찮을까? 카페인은 안 먹는 게 좋겠지?’라며 걱정 어린 말을 했다. 나는 외출은 자주 했지만 대부분을 침대에 누워 보냈고 의식적으로 몸을 따뜻하게 했다. 그리고 온 신경이 아랫배에 가있어서 그런지 조금만 찌릿한 느낌이 들면 혹시 착상 중이 아닐지 기대하기도 했다.
그렇게 피검사하는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처음엔 그날을 기다렸지만 마치 시험 성적표를 받는 날처럼 느껴졌다. 차라리 그날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임신 테스트기도 3일 배아의 국룰이라던 9일 차까지 기다렸다.
9일 차 아침, 임테기는 ‘한 줄이었다.’
혼자 방에 누워 한참을 울었다. 그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내가 속상해하는 모습을 알면 더 속상해할게 뻔했다. 그리고 긍정 회로를 돌리기 시작했다. ‘내 배아가 조금 느려서 그런 거겠지. 내일 다시 테스터기를 해보자.‘ 하지만 다음날도 다르지 않았다. 주말이라 집에 있던 그를 보자마자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나는 그를 껴안고 한참을 울었다.
평소처럼 배에 주사를 찔렀다. 나는 임테기 한 줄을 확인하고도 병원에 갈 때까지 주사를 유지했다. 빈껍데기에 주사를 놓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