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말은 사라지고, 기록은 남는다.
사무실 바로 나의 옆자리에 실장이 앉아 있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일에 대한 이야기를 ‘말’로 하지 않는다.
그 말은 너무 자주 사라지기 때문이다.
회의 중에 오간 이야기, 지나가며 나눈 결정,
“이거는 이렇게 합시다” 던 그 한 마디.
그 말들은 며칠 뒤면 꼭 이렇게 돌아온다.
“어? 제가 그랬나요?”
그럴 때면 그의 표정이 너무 무구해서 내 기억이 잘못된 것만 같다.
말뿐인 ‘기억’은 서로의 책임을 흐린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고, 감정에 따라 왜곡된다.
남는 건 ‘기록’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메일을 쓴다.
사소한 일정 변경 하나도, 파일 수정 요청 하나도,
모두 ‘글’로 남긴다.
“이거 그때 말씀하셨잖아요.” 대신
“3월 5일 이메일 참고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니까.
기록은 나를 보호한다.
책임의 출처를 분명히 하고,
‘말’로는 번복되던 일들이 ‘글’로는 바뀌지 않는다.
가끔은 성가시고, 답답하기도 하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에게 굳이 이메일을 써야 한다는 게.
하지만 어쩌겠는가.
더 이상 억울한 일을 겪고 싶지 않았다.
내가 어떤 일을 언제 맡았는지,
누가 어떤 요청을 했는지,
무슨 근거로 이 방향으로 정해졌는지.
기록이 없으면,
모두 다 나의 책임이 된다.
그래서 나는 기록으로 일하기로 했다.
상대가 잊어도, 모른 척해도,
기록은 증거로 남아 있으니까.
말은 사라지고, 기록은 남는다.
그리고 그 기록이
오늘의 나를 지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