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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부의 셋째딸 Jan 21. 2022

농촌에서 시내로 유학생활

'다름'과 '틀림'이 주는 생각.

'그 해 우리는' 드라마

   '그 해 우리는-초여름이 좋아'의 원안은 이나은 작가님, 글과 그림은 한경찰 작가님의 웹툰의 원작을 드라마로 만든 것이다. 전교 꼴찌와 전교 1등 다큐멘터리 촬영으로 촬영 기간 동안 같은 반에서 생활한다. 촬영을 하며 가까워진 두 명은 연애를 하게 된다. 하지만 이 둘은 '함께 했지만 더러웠다'라는 마지막 인사로 5년의 인연을 마무리 짓는다. 그렇게 끝났어야 할 인연은 10년 뒤 강제로 청춘 다큐로 재소환되면서 다시 사랑이 피어나는 청춘 로맨스를 다룬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학창시절 생각이 났다.  중학교때 전교 1등과 짝꿍이였기 때문이다.

  내가 살던 농촌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시내에 있는 학원을 보냈었다. 동네 엄마들은 시내에 있는 한 학원에 '우리 농촌에서 5명의 아이를 보내면, 학원 통원차량을 지원해 줘야 한다.' 조건을 제시 다닐 수 있었다.


  지금은 도로도 많이 좋아져서 30분이면 시내와 왕래가 가능하지만, 20년 전에는 차량으로 50분이 소요되었다. 학원과 조율이 안 되는 시기에는, 시간이 가능한 엄마들은 학원이나 버스정류장으로 마중을 나오시기도 하셨다.  

  마을 행사가 있을 때 엄마들은 학교나 학원 이야기로 정보를 공유하기도 했었다.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가끔 신기하기도 했었다. 

"우리 애는 공부도 안 해서 학원에 보내고 싶지 않은데.. 이것이(자녀) 나중에 시내 나가서 기 죽고 살까 봐.. 적응시키러 보내는 거예요.. 이게 맞는 건가 해요.." 

"하하하.. 우리도 그래.. 하하.. 이 정도면 유하이다.. 하하하하" 

우리 엄마는 한마디 더 보탠다. "펜 잡고 있는다고 공부가 아니다.. 하다못해 집 앞마당에 꽃들만 봐도.. 공부인데.. 밖으로 보내야지.." 동네 엄마들은  "맞아요.. 형님.. 하하하.. 하하하하하..." 웃었다.


  어릴 때 살던 집은 부모님께서 손수 지으신 제주 돌담 집이었다. 보일러도 없고 가마솥 아궁이에 불을 짚여야 하는 방 두 개, 목욕탕 하나, 부엌 하나로 구성된 집이다. 마당은 잔디 없이 흙밭이지만 집을 둘러싸고 있는 삼나무가 있고, 한 귀퉁이에는 10평 남짓 나무와 꽃을 심어 정원을 가꾸셨다. 전문가의 솜씨는 아니지만 부모님께서 손수 만든 정원에서 사진을 자주 찍어 주셨다. 농사일로도 바쁘신데 한두 명도 아닌 딸 넷을 정원에서 꽃 설명을 하고, 가지치기를 설명해 주시고.. 지금 생각해보니 하나하나가 다 부모님의 가르침이었다. 

(늦둥이 남동생은 아직 태어나기 전이다.)

동생과 옛날 집 마당에서
농부의 셋째 딸, 전교 1등과 짝꿍이 되다.

  농촌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시내에 있는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때 분교라는 학교에 회장도 했었고, 학원을 다니면서 시내 사는 친구들이 생겼지만 소극적인 '촌아이'였다. 나에게 중학교는 두려움의 존재 이기도 했다. 

  둘째 언니는 공부를 꽤 잘하는 편이고 모범생이었다. 역시나 똑똑했던 언니는 나의 두려움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입학식이 있기 전에 나의 외모를 꾸며주었다. 시내 지하상가에 가서 그 당시 유행했던 마루 양말, 노튼 조끼, 잔스포츠 한정판 백팩, 가방에 다는 인형, 유행하는 초록색 뿔테 안경을 장착해 주었다. 


  드디어 입학식 날 학교 운동장에는 입학생만 406명, 재학생까지 합하면 천명 정도가 똑같은 교복을 입고 반별로, 번호 순서로 두줄로 서 있었다. 동네 친구들은 1반, 5반이었지만 나는 혼자 동떨어지는 9반이었다.

  다른 입학생들은 같은 초등학교 출신들과 속닥속닥 거리고 있었다. 아는 친구가 없어서 나는 멀뚱멀뚱 하늘과 구름을 보며 '언제 끝나나 빨리 교실에 가서 앉아서 쉬고 싶다. ' 하고 있었다.


  입학식 운동장에서 내 옆은 비어 있었다. 서운하기도 했지만, 짝꿍과 첫 대화를 어떻게 해야 할지 긴장했기 때문에 없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입학식이 시작되었고 한 여학생이 입학선서를 하고 상을 받았다. 친구들은 수군거리며 '00교 1등이잖아.. 그래서 상 받고 선서하는 거야..' 라며 이야기했다. '얼마나 공부를 잘해야 많은 사람들 앞에서 상을 받을까?'라고 혼자 생각하며 부러워했다. 저런 친구는 나는 다른 세계의 아이라는 것을 직감했기에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입학식을 마치고 교실로 들어갔다. 


  언니가 꾸며주었던 유행하는 아이템들을 하고 있어서 일까.. 여러 명의 친구들이 와서 말을 걸었다. 

 "너는 어느 초 나왔어?"라고 물었다. 나는 

"나는 촌에.."라고 말했다. 친구는

"그래?! 너 제주시 살지 않아?!"라고 되물었다. 나는 

"아니,, 나는 버스 타고 50분 가야 되는 촌에 살아.."라고 다시 대답했다. 친구들은 

"그래? 너 현주랑 짝꿍이더라.. 축하해.. 잘 지내자!"라고 했다. 


  나도 모르는 짝꿍을 이 아이들은 어떻게 아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곧 현주라는 친구가 나타났고, 입학식 때 수군거렸던 전교 1등이었다. 역시 1등답게 나타나서는 나를 항상 챙겨주었다. 

  그 덕분인지 내가 촌에서 산다는 것은 아무도 몰랐고 분교 출신이라고 놀리지도 않았다. 나는 친구들도 많이 생기고 중학교 생활에 재미가 있었다. 


  분교 출신이거나 촌에서 시내 학교를 다니는 것으로 왕따를 당하는 친구들이 여기저기에서 생겨났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떤 친구들은 나에게 와서 "째(저 아이) 촌아이잖아.. 놀지마.. 완전 별로야.."라고 험담을 했다. 아무 생각 없었던 나는 "나도 촌인데.. 우리 집은 50분 버스 타야 갈 수 있는 산에 있어.. 그럼 나도 별로야?"라고 진심으로 물어보았다.  그러자 친구는 "아니지.. 우리는 이미 친구니까.. 상관없어.."라고 말했다. 


  친구가 친구를 평가한다는 게 아이러니했지만, '이런 상황이.. 엄마와 어른들이 말하던.. 시내 적응기란 말인가?' 생각하며 그런 친구들을 자연스레 손절했다.  그리고 동네 친구이지만 빠른 연생으로 중학교에 일찍 입학한 친구와 중학교 입학 소감을 이야기하다 상담 아닌 상담을 했다. 그 친구는 원래 촌에 산다고 무시하는 애들 많다며 위로해줬다. 1년 먼저 사회생활을 경험한 친구의 말이 위로가 되었다.


'다름'과 '틀림'


  집에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 티브이를 보며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했다. 다른 반에는 농촌에서 시내로 학교 다닌다고 놀리고 왕따 시키는 애들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언니들은 '강하게 보이려고 친구들에게 못되게 구는 나쁜 아이들'이 있다고 이야기해주었다. 농촌에서는 누가 강하게 보이고 상하관계가 없었기에 나에게는 더욱더 이해할 수 없는 중학교 문화였다.


 아빠, 엄마 가족들과 긴 시간 이야기를 했다. 요약하자면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그것이 조직이나 단체가 되는 것이다. 앞에 있는 사람도 있고 뒤에 있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위에 있는 사람은 선생님뿐이니 기죽을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깔보고 나쁜 아이들과 어울리면 안 된다. 나와 다르다고 상대방을 틀리다고 생각해서 지적하거나 적을 만드는 것은 바보 같은 행동이다."  엄마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농촌에 산다고 잘못하거나 틀린 게 아니다. 다르게 산다고 틀렸다고 욕하거나 손가락질하는 것은.. 그것이 진짜 잘못하고 틀린 것이다. 정답이 없는 것" 

  

  그 이후 왕따를 주동하던 친구들에게 궁금해서 물었다. "너와 달라서 그런 거야? 틀리다고 생각해서 그런 거야?" 

친구들은  말했다. "다르다는 것과 틀리다는 것이 똑같은 말이지 않아?!"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우리 엄마, 아빠가 그러던데.. 나와 다르다고 받아들이지 않고(이해와 인정)..  '잘못된 것'이라는 분위기로 틀렸다고 하는 것은.. 이상한 거래"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친구이 틀린 것은 아니기에 나는 조심 스럽게 이야기해야 했다.

 '너의 행동은 틀렸어..'라고 말하는 것 같아, '이상한 것'라고 말을 돌렸다. 그렇게 '틀리다는 것', '다르다는 것'에 대해 낙서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사투리를 쓰니 더 분위기는 웃겼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게 틀린 것처럼.. 다르다는 거지?.. 아니아니..ㅎ" 도돌이표는 계속 반복되며 신이 나게 웃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입을 모아 "우리가 생각하는 게 다른 것처럼 '틀리다 는 말'을 바꿔서 말을 잘해야겠네" "맞아..맞아..하하하" 말했다. 

 

  며칠 뒤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기로 했고, 오락실 노래방과 일반 노래방 두 가지를 비교했다. 서로 장점을 주장하는데 한 친구가 "틀려~ 두 개는 틀리잖아~"라고 했다. 다른 한 친구의 "다르지~ 다르다는 말을 모르니? 사전 없니?" 라며 신나고 재밌게 말을 시작했다. 우리가 이야기했던 '다름'과 '틀림'에 대해 다시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와 다른 친구들은 배꼽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다른 친구가 "너네 부모님은 대단한 것 같아.. 우리 집은 항상 바빠서 그런 거 말할 시간도 없어.."라고 말했다. 다들 입을 모아 말했다. "부모님들이.. 다들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은 아니야.." 그리고 또 마주 보며 "하하하하하.. 하하하" 웃었다. 

  

  '단어 하나가 생각을 바꾸고, 이해하는 감정을 만드는 것' 그리고 '이야기 나누고 서로의 생각을 존중해주는 과정'이, 우리가 중학생이 되었고 자라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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