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나는 레

베이비 마켓

by 차차

“베니, 화성 모델링은 잘 되어가?”

“아직, 렌더링 건지 30년쯤 됐어”


우리는 모두 하늘나라에서 잠시 내려온 천사들이다. 그 사실을 잊은 천사들이 대다수이고, 그들은 지상에서 누리는 행복을 만끽하는 중이다. 가끔 우주정거장에서 같은 인간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에 이렇게 인사를 주고 받는다. 지구 렌더링이 모두 끝나, 지상에서 고등학교 졸업을 하면, 입양한 아이와 함께 우주를 여행할 기회가 주어진다. 나, 베니는 에이리를 떠나 우리의 아이와 함께 에이리의 마음을 들여다볼 예정이다. 이제 내 삶에 에이리는 떠났다. 그러나 그리와 아니가 남았고, 우리는 영원히 에이리와 제이의 추억을 공유할 것이다.


우리는 밤마다 특별한 임무를 띠고 한 자리에 모인다. 매일 있는 이벤트를 공유하고, 잘 진행되고 있는지 점검도 한다. 이 장소를 영혼집합소라고 부른다. 인간으로서의 나는 ‘꿈’이라고 부른다. 꿈은 대부분 기억에 남지를 않는다. 거의 지워지거나 무의식 저 아래에 남아있다. 우리는 그 이유를 밝혀냈다. 그리고 우리의 탄생과 함께 만들어진 블랙박스에 매일의 꿈을 저장한다. 물론, 누구나 이 블랙박스를 열어볼수는 없다. 삶과 죽음에 엄격하게 얽힌 규율 때문이다. 지상으로 내려온 우리는, 하늘나라의 세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꾸며볼 생각을 했고, 인간은 진화와 발전을 거듭하여 현대에 이르렀다. 무에서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많은 실패와 오류를 거듭했지만, 최근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상용화 했고, 마침내 자유를 얻게 되었다.


자유와 평화는 빈곤과 연결되고 부와 번영은 지난하다. 인간은 예술을 창조하였다. 그러나 미래도시에도 지하도시에도 여전히 눈이 내리고, 눈이 내리면, 온 세상이 하얗게 덮인다. 우주는 너무나 넓어서 인간은 티끌보다 작지만, 영혼이 우주보다 작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인간의 지성은 우주의 넓이를 짐작할 수 있고, 우주로 떠나는 여행을 꿈꾼다.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된다고 했는데, 그 별은 어디쯤 있을까, 우리 별은 어디쯤 있을까.


동생이 울었다. 세상에 태어나 하늘나라에서의 기억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신생아. 떠난 곳이 그리워서 울음을 터뜨리지만 어른들은 이미 기억을 모두 잊은 듯 하다. 순수하고 맑은 영혼을 지닌 아기 천사들은 세상에 적응해서 자신만큼은 하늘나라를 잊지 말고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켜 보기로 마음 먹는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서로 너무나 멀어졌지만, 너도 다 잊은 건 아니겠지. 죽은 오빠가 그린 그림은 이랬어. 쌍둥이 언니는 미래도시도 그리고 지하도시도 그렸지. 미래도시는 높은 빌딩들이 있고, 빌딩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다리가 있고, 동그란 자동차들이 하늘을 날아다니고, 창문이 아주 많았어. 도시는 회색이고, 나무가 없고, 사람도 보이지 않고, 그림자조차 없었지. 지하도시는 땅 속에 있었어. 땅은 단단하고, 나무 뿌리 같은 움터가 있고, 그 곳에 도시가 있고, 도시는 개미굴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어.

오래 전엔 아이를 여럿 낳을 수 있었다고 해. 그래서 육 남매를 키우기도 했단다. 지금은 모두 둘만 키워. 쌍둥이면 셋도 가능해. 시뮬레이션 중에 실패하면 죽었다고 해. 하지만 대부분 실패하지 않아. 우리는 꿈 속의 체험으로 실패를 알고 있어. 그리고 과거의 번영과 영광 속에 살고 있어. 과거를 토대로 만들어진 세계이지. 그래서 우린 과거와 역사를 꼭 배워야 해. 우리가 남길 역사이기도 하거든.


1인용 자동차 레는 자동으로 열리고 자동으로 떠오른다. 스케줄에 저장된 목적지로 날아가고 사고는 제로에 수렴한다. 영화 콘택트처럼 안드로메다까지 날아갈 수도 있다. 외계인은 아직도 발견되지 않았지만, 여전히 수신호를 분석한다. 100년 전 우리는 그리스신화에 등장 하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고, 지구에는 희망이란 별명이 붙었다. 미지의 세계에 제곱근이 붙었다. 아무튼 유선형의 차체에 창문과 문, 헤드램프가 결합된 일체형 면이 있고, 썬루프에 동력장치가 있으며, 바닥에는 안전장치가 있다. 조심해. 매번 자동차에 오를 때면 조심하라는 말을 되뇌인다. 하늘을 날다 졸면서 떨어지는 새는 없지만. 우리는 자동차를 자궁처럼 여긴다. 그러면 안정감이 들고 기계와 자연, 그리고 문명이 하나처럼 여겨질 수 있다. 참, 도어핸들이 있던 부분에는 건강 센서가 부착되어 음주 상태가 반영되고 거리의 교통 경찰에게 자동으로 전송된다.


존경하는 그리, 수많은 날을 기다려온 너를 만난 날을 잊을 수 있을까 하고 잠깐 생각을 떠올려 본다. 너무나도 짧은 지구에서의 시간 동안 내가 상상해온 너를 만날 수 있어서 참 행복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제이는 내 상상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신의 현현, 거창한 수식은 없어도 있는 그대로도 아름다운 세상을 오롯이 내게 느끼게 해 주었기 때문에 늘 고마웠다.


신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 아침이 있었어. 거리에는 아무도 없고, 발치의 공원에 들르는데, 새 몇 마리만이 푸드덕하고 날아가고, 하늘엔 얕게 깔린 구름이 빠르게 흘러가. 바람은 멎은듯 하고, 공기마저 사라진듯해. 풀향기가 언뜻 나고, 흙내음이 나고, 저 멀리 산자락이 펼쳐져 있어. 아파트 단지는 쥐죽은 듯 조용한데, 무지개가 내려온듯 햇살이 비추고, 안개의 어슴푸레한 흰 빛이 온통 눈 앞을 채우고 있어.


도비처럼 지하실에 홀로 살던 날에는, 킥킥 거리며 준비한 나무 상자에, 하얀 털실로 짠 목도리를 넣고, 어린 아이의 빨간 볼 같은 장갑을 넣고, 금빛의 리본을 묶어서 벽장 깊숙이 넣어두었다. 그 상자를 베고 누워 있으면 솔솔 잠이 왔다. 지상에서, 창가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에 문을 닫으면 아주 깜깜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꿈도 꾸지 않고 잠이 들었다. 깨어나면 마치 새로 태어난듯 개운했다.


우주선 한 켠에 허브를 키웠다. 페퍼민트 향이 났다. 그런데 어느 날 잎사귀에 점점이 무늬가 생겼다. 무슨 일이었을까. 그래도 허브를 버리지 못했다. 죽은 줄 알았던 허브에 거짓말처럼 싹이 돋아나길 기다렸다. 바싹 말라 배배꼬인 허브를 들어 옮기다 화분을 쏟아버렸다. 무더기 책들 위로 우수수 흙이 떨어졌다. 내 공무원 책들, 살아 숨쉬는 책들이 살아 숨쉬는 모래알을 머금고 터져버린 보일러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마른 자국으로 갈라진 책장을 사각사각 소리내며 긁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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