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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처럼 빨려들어가는 듯한 입구 앞에 섰다. 이제 저 회전문으로 들어서면 다시는 발 붙이고 서있는 이 지점에 도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에이리는 잠시 숨을 들이쉬고 빌딩 위, 꼭대기를 바라보았다. 수없이 많은 층층이 창문 밖으로 엄습하는 두려움과 긴장감이 에이리의 몸을 감싸고 돌았다.
지구에는 더이상 유적지가 남아있지 않다. 모든 장소를 과거와 똑같이 재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에이리는 다시 영상을 재생했다. 배경이 스쳐지나가고 과거의 어느 시점에 도착했다. 이웃나라에, 이웃에 관심을 가지던 과거에 화성에 도착한 지구의 자동차는, 바퀴를 땅에 붙이고 움직이던 순간에도 지구와 조금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중력이 다르고 대기 성분이 다르고 시시각각 모래바람이 불어 왔지만, 지구에서 태어난 데이는 화성에서의 본분을 잊지 않았다. 데이는 조립이 되듯이 화성에서 다시 맞추어졌다. 그래서 천천히, 빨리도 달릴 수 있게 되었다.
배우자는 여럿일지언정, 생물학적 부모는 하나 뿐이라, 인간은 수명이 다하기까지 하나 뿐인 삶을 매순간 선택하고 고심하고 온전히 헌신하여 살아낸다. 지구에서 태어난 모든 생명체들이 삶의 유한함을 받아들이는 순간 모든 것이 괜찮음을 알게 되었다. 바티칸이 있던 자리에 서서 과거의 유적을 살펴보던 에이리는 잠시 주변의 시간의 흐름이 느려진 것을 알아차렸다. 이제는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어 저장되고, 가능해진 것 중에 가능한 것을 샅샅이 짚어보다보면, 정말로 유의미한 것을 현재로 가져오게 되는데, 미래가 중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공간에 새로 무언가를 만들게 되면, 길이 생겨 따르는 이들의 생명에 대한 책임감 때문일 것이다.
며칠이 지나 에이리는 달에 도착했다. 닐 암스트롱의 깃발이 꽂힌 자리에는 커다란 역이 생겼고, 많은 이들이 그곳을 거쳐 새로운 목적지로 향한다. 에이리가 향한 곳은 화성이었다. 화성에는 클레인 보틀이 제자리를 찾았고, 그 작은 모형을 기념으로 하는 거대한 건축물이 생겨났다. 과거의 런던브릿지와 피사의 사탑과 수많은 그리스 투사들이 경기를 펼치던 공간의 기둥에 하나하나 번호를 붙여 화성으로 옮겨온 이가 있었다. 그 장소는 화성에 위치한 교회가 되었다.
달과 화성 사이에 작은 수영장이 하나 있다. 수영장이라고 하지만 커다란 물방울이다. 우리는 물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물을 기억한다. 그리고 물은 우주를 기억한다. 에이리는 물 속에 몸을 맡기고 잠시 쉴 수 있었다. 마치 블랙홀 같은 클레인 보틀에 가려면 며칠 쉴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클레인 보틀은 안과 밖의 구분이 없고, 위와 아래가 없어서, 공중에 둥둥 떠서 움직이는 신기한 물체이다. 커다란 물방울 속에서 물의 흐름을 느끼며 수영을 하듯, 클레인 보틀 속에서 한 지점을 통과하면 빨려들어가듯 공간을 순환하며 궤적을 만들어낸다. 편의상 꼭대기 층으로 알려진 영역에서는, 중력의 영향을 받아 화성 표면으로 떨어질 수 있으므로 안전 기구를 착용해야 한다. 매일매일 출근하듯 클레인 보틀에서는 반복되는 일상이 펼쳐진다. 삶의 끝으로 나아가는 누군가에게는 그 반복되는 하루가 꿈이었다. 수없이 문을 통과하지만 꼭 같은 자취로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삶의 공식을 터득하고 나면 미끄러지듯 하루가 흘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클레인 보틀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된다.
우주에도 몇 가지 건축 모델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다면체이다. 신은 인간의 형상을 부여했지만, 인간은 펼쳐지는 우주에 알맞은 건축물들을 구상 했고, 그 중 몇 가지가 실제로 지어졌다. 다면체의 기본은 피라미드이다. 정삼각형을 네 개 붙이면 피라미드가 되고, 정사각형을 여덟개 붙이면 일반적인 큐브형 건물이 되는데, 정오각형은 십이면체가 되고, 하는 식으로 점점 구에 가까워져 우주에서 지어지는 건축물에 적합 해진다. 어느 면에서 봐도 차이가 없는 이유는, 인간이 아는 유한한 우주에서 인간의 존재가 너무나 작기 때문이다.
오래전 갈릴레이는 해가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움직이는 것이라 했고, 우주의 크기를 몇 광년이라 가늠하지만, 그 순간 우주의 중심을 둘 수 있는 뿌리가 생긴 것이며, 우주를 탐험하는 동안 우주의 크기를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신비를 알게 되는 것은 각자의 경험 여하에 달린 것이다. 아무 것도 없는 것을 느낀다는 것은, 그 곳에 분명히 가로새겨야할 긴 이야깃거리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물방울 수영장 밖으로 나오며, 에이리는 소금기를 털어내고 발을 씻었다.
에이리는 베니를, 프리는 에이리를 낳았고, 대의 흐름은 켜켜이 쌓인 클레인 보틀 속에 누적 되듯 저장되었다. 옷을 입 듯 화성의 건축물도 20년마다 옷을 해 입었다. 영원히 반복되는 굴레 같은 생명의 건축물 속에 나무를 심고 햇빛을 가두었다. 에이리는 클레인 보틀 속에서 상하 좌우로 움직이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어디로든 버튼만 누르면 이동을 할 수 있지만, 프리의 공간이나 베니의 공간으로 가려면 양파껍질을 벗기듯 다른 층으로 움직여야 했다. 그것이 클레인 보틀의 층계 시스템이었다.
화성 지상에서 20km 떨어진 클레인 보틀은 크게 도착하기 어려운 곳은 아니었다. 바티칸의 에이리는 캐리어에 질소를 가득 챙기고 수영장을 거쳐 화성에 도착할 예정이다. 우주 건설은 시간과의 싸움이라 막연해 보이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공원에서 비누방울을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던, 튤립에 물을 주는 물뿌리개를 들고 하늘에 한번 뿌려보던 누군가가 만들어낸 광경이었다. 여기쯤 이것이 있고, 여기쯤 이것이 있는 우주 건설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천천히 진행되어 갈 것이다.
그러면 두꺼운 우주복을 입고 무겁게 움직이지 않아도, 물 속에서 움직이는 오리처럼 사뿐히 가벼운 발걸음 만으로 저 멀리까지 이동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에이리는 자유라 생각했다. 달의 질소충전소에 도착해 캐리어에 질소를 충전하던 에이리는 문득 지구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 기나긴 우주 여행동안 수없이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