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재 가
광복절에는 본가에 가서 가족들과 함께 보냈다. 얼마 전 투고한 논문의 심사 결과를 앞두고 있어서 노트북도 함께 가지고 갔다. 그러나 집에서는 노트북을 열었다 그냥 닫았다. 성모승천대축일날 어머니와 함께 미사를 드리고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논문 심사의 심사위원이 세 분이나 되다 보니, 계속 염려가 되어 메일함을 들락날락했다. 기다림. 소풍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마음은 설렘이지만, 이렇게 처분을 바라는 기다림은... 내 뜻대로 할 수 없고, 통제 속에 있으니.
불편함 마음이다. 이 기다리는 시간 내가 깨달은 마음은, 두 가지 마음이 늘 교차하는 데 "이런 걸 왜 했나?" 다시 20대로 돌아간다면, 장학금을 받아도, 무감각하면서, 경제적인 감각을 익히며, 먼 미래에 편안하면서 머리를 쓰지 않고도 큰 부자는 아니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좋아하는 책(이젠 책이 진절머리가 나서 책을 안 사려고 하는 주의지만 그러다 마음이 스르르 풀리면 또 책을 산다. 책을 사주어야 할 것 같아서. 이 책을 쓴 사람도 아마 나 같은 신세한탄을 할 지도 모르니) 을 살 수 있는, 보고 싶은 그림이 있는 미술관이 있는 여행과 작은 음악회도 쉬는 날 들릴 수 있고, 퇴사 걱정이 없는 견딜만한 상사가 있는 그런 회사에 취직을... 아니다, 글을 좀 잘 쓴다고 칭찬을 들었다고 문예창작학과 같은 건 가지 말았어야 했다. 그래도 학창시절 과학 중 화학은 좀 잘했으니, 이공계를 갈 것을. 아니다, 기술을 배울 것을. 그러다가 다른 두 번째 마음은 그래도, 이 삶이ㅡ 또 즐거울 때도 있지. 하고서. 감사한 시간도 많지 하고서. 이런 속마음을 어머니께 다 들려주지 않아도 내가 숨쉬는 모냥만 보고도 우리 어머니는 내가 변덕이 심하다고 한다.
미사가 끝날 무렵, 주임신부님께서 유경촌 티모테오 주교님께서 영면하셨다고 하여, 다음날 어머니와 함께 명동성당 조문에 다녀왔다. 아침 일찍이었지만 긴 줄에 사람들이 많았고, 땀이 주륵주륵 났다. 주교님은 독일 유학도 다녀오셨다고 한다. 문득, 사람이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쏟으면 연비가 좋은 그런 훌륭한 지혜와 길을 갖추었다해도... 아플 수 있음을.
너무 이른 연세여서 안타까웠다. 조금 힘들 때, "내가 죽으면 무슨 소용이냐. 이게." 하고 짐처럼 가지고 있던 것들도 내려놓게 된다. 그래서 요즘은 정리를 한다. 버리는 연습을 한다. 언제 떠나도 홀가분하도록...
어머니와 스타벅스에서 오빠가 준 쿠폰으로 티라미수 케이크와 망고 바나나 주스와 아이스라떼를 마시고 집으로 왔다. 메일함을 열어보니, 심사결과서가 와 있었다. 사실 얼마 전 논문 심사 청탁서가 내게도 왔다. 그런데 사실 나도 논문 심사 결과를 앞두고 있고 아직 미해결 과제가 1건이 더 남아 있어, 거절할까 하다가 수락을 하던 터였다.
너무나 떨려서 실눈을 뜨고서 메일을 내려간 것 같다.
그런데...
다행히도
서희경님은 게재 가입니다.
연구비를 지원 받은 논문이어서, 연구비를 토해내야하나 어쩌나, 불안초조 속에 살았다.
만일 이번에 좋은 결과가 오지 않았다면... "이런 걸 왜 했나?" 하면서, 입이 대빨나와서,
땅으로 훅꺼진 컴컴한 하늘을 끌어안고...
무척 답답해졌을 것이다.
가슴이.
그리고 다행히도...
이번엔, 처음으로 세 명의 심사위원께 게재 가를 받은 것이다.
늘 한 분은 수정 후 게재가 껴 있었다.
더 나쁜 걸 받을 때도 있었다.
포기하지 않고 잘 되도록 수정하면 되는구나
논지가 부족하면 채우면 되고...
누가 날 구원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날 구원한다. (내가 빛으로 나아가야한다는 것)
물론, 나의 논문을 이해해 주는, 내 마음같이 읽어주는 심사위원이 배정되는 게
하느님의 성령의 도우심이겠지.
사실 요전엔 개떡 같은 메일을 받았다고 썼다.
근데, 합격 메일을 받고서,,,
개떡이 얼마나 맛있는데... 하며.
흐린 날도 맑은 날도 공평하게 한 번씩 온다는 걸 깨닫고 있다.
연구비를 받는 건 감사하고 좋지만,
세비이니 만큼 부담스러운 과정이 있다.
또 한 가지, 논문 심사처럼, 투고한 동시 원고처럼, 누군가를 사귈 때, 직장을 구할 때
날 마음에 들어하면 처음부터 OK, 게재 가를 준다는 거다.
아니다.
싫다. 하는 사람과 관계에 목매고 아파하지 말자.
안맞는다라고 말한 사람에게
맞추려 하지 말고
나의 가치를 발견해 주는 사람을 만나기에도 짧은 인생이다.
개떡 같은 메일을 받았다고 내 마음을 더 개떡처럼 만들지 말고,
날 개떡 취급하는 사람에게는 돌아설것을.
이것이 지혜다.
(2025.8.18)
사진: 고양이 카페에서 본 러시안블루 고양이 / 나의 최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