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조금 아픈 날

by 세실리아

오늘은 마음이 조금 아픈 날이었습니다. 수심가지인심난지(水深可知人心難知) 깊은 물속은 짐작할 수 있어도 얕은 사람의 속마음은 헤아리기 어렵다는 말이 있지요. 오늘이 딱 그랬습니다. 저는 3월부터 대학 글쓰기클리닉에서 학생들의 글쓰기가 잘 완성되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열두 살부터 공식적으로 글을 쓴 저는( 처음으로 전국백일장에서 시를 써서 '가작'이라는 상을 타고 교장선생님과 악수를 나눈 후 방송국에 나오고, 자본주의 사회를 꼬집는 풍자 콩트집 "돈이 보낸 편지"라는 책을 상으로 받은 시기) 누가 인정해 주지 않아도 글쓰기는 운명 같은 것, 누워서 떡먹기라고 생각하는 분야입니다. 아니, 누워서 떡먹기가 더 어렵겠네요. 글을 쓰는 것보다도요.

박사학위를 준비하며, 유아 독서 디베이트 프로그램 개발을 마친 후, 나름 개발자로 인정받던 출판사에서 스스로 퇴사를 한 뒤 몇 해 동안 학술연구를 한 뒤 가게 된 첫 직장이라서 저를 선택해준 분들에 대한 마음 깊은 감동이 있었습니다.

면접을 여러 번 보았는데 기억이 납니다.

학부대학의 교수님도 계셨고, 행정실의 가장 윗분의 선생님도 계셨습니다.

다소 경직된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지요.

"교수가 되지 않고 왜 지원하셨을까요?"

그때 저는 마음이 슬펐습니다. 대학원을 진학할 때는 장학생이어서 지금 나이 때면 교수가 될 줄 알았습니다. 아니 교수가 아니 되더라도, 작가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을 줄 알았거든요. 어렸을 때는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제 글을 보면 따뜻해지고 웃게 해 주고 싶다라고 생각해서 작가가 되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교양학부의 글쓰기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그러려면 클리닉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아야 할 것 같다고, 학생들의 글쓰기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물론 문예창작학과의 교수가 되는 게 꿈이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패기넘치게 나는 노벨상을 받겠다가 꿈이었지요. 그러나 번번이 최종심에 탈락을 하고 출판사에 원고를 보이면, "결이 맞지 않다는." 제가 몹시 혐오하는 발언을 하며... (결이 맞지 않다,는 저의 트리거입니다. 마음을 표현하고 툭툭 걷어차일 때 들은 말이라서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그 말의 무게가 얼마나 사람을 눈 덮인 벌판으로 이끄는지 그사람은 모를 거예요. 결이 맞지 않다는 말을 곱씹어 봅니다. 살면서 독특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는데, 나도 알아요. 결을 맞추고 싶지 않다는 것을. 맞추어도 그렇게 말한 사람은 다른 트집을 잡아 결이 맞지 않다고 말할 테니까요. 그게 제가 아파하며 깨달은 지혜입니다. 나를 무디게도 무너지게 하지 말자하고요.)


이미, 자소서 같은 건 제가 대신 친구들을 써줘서 대기업에 합격시키기도 하고,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고 지인의 작은 골칫덩이 문제를 논리정연하게 서술하여 승소를 하거나, 몸이 다쳐서 보험처리를 받아야 할 상황에 증거를 수집하고 문장을 만들어 보험사를 설득해서 보상금을 받을 수 있게 한다던지, 대학원 자소서를 써주어 입학시키고... 한국어가 서투른 중국에서 유학온 유학생의 졸업논문의 문장을 고쳐주기도 하고... 기타 등등, 학위를 받은 뒤엔 종종 칼같이 저도 논문 심사를 진행하고 있어... 사실 글쓰기 클리닉 일은 저에게 누워서 발을 까닥까닥 거려도 될 만큼 아주 쉽고 재미난 일이었습니다. 물론 누워서 글을 봐주진 않지만요.

물론 공임이 많이 드는 일입니다. 자소서는 아주 쉬운 교정이고, 학술보고서나 학위논문, 소논문 이런 건 저도 핵심개념을 찾아가며 집중해서 읽어야 합니다. 신경이 많이 쓰이는 일이라, 눈이 푹푹 꺼지는 일입니다.


대학 혁신 사업으로 진행되는 글쓰기클리닉은 대학평가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방학동안 문장을 고심하여 만든 설문지를 요사이 이용객에게 돌리고 있는데, 너무 놀라고 말았습니다. 저에게 지도 받은 후, 학술보고서 프로젝트 경진대회(co deep learning)에서 '대상'과 '최우수상'을 받았다고 감사하다고 쓴 학생의 글에는 저도 무척 기뻤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아직 회신이 다 오지 않았지만, 그 많은 설문지 중에 유독 칼날 같은 글이 있었습니다.


마음을 북북 찢어놓는 것 같았습니다.


학생은 자소서를 냈는데 취업하지 못했나 봅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선생이 쓸 데 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한다는 문장과

친절하지 않다.

전문성이 없다.

추천하지 않겠다.

다시는 방문하지 않겠다.


(그래서 그 과의 학생은 먼지가 되어 보이지 않는 건가. 이런 물증없는 의심까지 생기는 거예요.)


그 학생의 얼굴을 저는 조금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안경 쓴 얼굴...

질끈 묶은 머리...

깡마른 몸...


제가 어떤 말을 하자, "그렇게 제 글이 별로예요?" 하는 공격적인 말이 그 학생의 첫마디였습니다.

처음 대면하는 자리에서 조금은 무례하다고 생각했지요.


이곳에 방문하기 전에 남자 선배에게 글을 보여주었다는 말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별로였습니다. 취업을 성공한 남자 선배에게 코멘트를 받고도

그 말을 믿지 못하고 클리닉에 방문해 지도를 받고도

취업 문턱을 넘지 못했다면...

그것은 이렇게 설문지를 근거도 없이 난도질해놓은

고약한 심보 때문이지요.

인성을 감추어도 하늘은 알고 있습니다.

특히나 공자님을 기리는 학교에서 덕을 쌓아야지요.

저는 우주의 균형을 믿습니다. 이 세계는 에너지장 같은 거여서,

내가 나쁜 마음으로 소우주를 대하면 나쁜 마음이 큰 우주가 되어 돌아옵니다.

부메랑 같은 것이고, 취업보다 중요한 건 심보를 고치는 것입니다.

놀부 마누라 같은 심술보를 가지고 사람을 찌르면...

자신이 더 아프게 되지요.


답장을 주어 "공자님 말씀을 읽고 덕을 쌓으세요. 아니, 이건 순화한 맛이고.

이렇게 말하고 싶었어요.


"먼저 사람이 되라."


...

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그럴 순 없죠.


저는 기억력이 아주 좋거든요.

그래서 제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흐린 눈을 해야 합니다.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 시절에도 문과생인 제가 S전자, 종근당에 친구 자소서를 봐줘서 합격시킨 전적이 있기에...

대기업 이공계 자소서도 저에겐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떤 이는 저를 만난 뒤 7군데 서류가 붙었다고 감사하다는 학생이 있었고,

어떤 학생은 학술보고서 대상과 최우수상을 받았고,

어떤 학생은 학술논문을 봐주는데, "선생님, 너무 감사해요. 저녁에도 하면 좋겠어요. 제가 흔쾌히 설문지 조사 써드릴게요." 라며 아직 부치지 않은 설문지 걱정을 해 주는 박사과정생 학생도 있었습니다.

무척 고마웠지요. 저는 정성스러움에 마음이 동하니까요.

(이렇게 성과라는 걸 써보며 위안 삼은 제 자신이 수치스럽습니다.

마음을 다쳤다는 반증이니까요.)


방학 때는 무척 바빴습니다. 학기가 끝날 무렵 co deep learning 특강을 했었는데, 서울의 학생들이

줌으로 신청을 했고, 입에 단내가 날 정도로 15P, 혹은 그 이상 학술보고서들을 팀으로 봐 주었습니다.

주제들도 다양했지요. (한꺼번에 떼로 몰려오는 바람에...힘들었습니다. 완벽주의자 성격이라 대충할 수도 없기에, 질문하지 않은 근본틀을 알려주느라 목이 쉬었습니다. 사실, 이렇게 안해도 됩니다. 그러나 해 줘야 할 것 같았습니다. 챗GPT와 클리닉에 의지하기보다는 기본을 알아서 스스로 쓰게 하는 게 더 중요하니까요. 그것이 저의 글쓰기 지도 철학입니다.)


그와중에 저도 소논문 심사를 두 편하고, 제 논문을 제출해 3명의 심사위원에게 게재 가를 받고 출판했습니다.

(이런 걸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말한다는 게 우스운 일이겠지만요.)


그런데...


내가 쓸 데 없는 무슨 말을 했을까?


벌써 그말은 내 마음을 좀먹고 악마의 씨앗처럼 침투했습니다.


저는 수다쟁이긴 하지만...

막 학교에 부임해 올 때라...

모든 게 조심스럽고

공과 사는 구분하는 성격이라서

쓸 데 없는 말을 한 기억이 없는데...

억울했습니다.



정성을 다하고

이런 피드백을 받으니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대충 하고

이런 질타를 들으면...

억울하지도 않았을 텐데...


학술 논문 같은 어려운 글이 아니라,

에세이인 자소서에서 이런 평가를 하니

분풀이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불쾌했습니다.


나도 참새시절 선생님을 힘들게 한 적은 없는지...

호기심이 많아 "왜요?" 이런 말을 달고 다녔는데...

그때마다 할아버지 교수님이 꿀밤을 씨게 때린 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선생님을 존중하지 못했던 적은 없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소중히 여기는 정인한테 들은 말은 아니지만...

늘 짝사랑만 했던 상대에게서


"왜 이렇게 말이 많아.말 되게 많네" 라는 말을 들은 적 있는 것 같아

얼굴이 빨개지고

속이 상했습니다.


마음을 북북 찢어놓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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