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2 때 문체부 장관상을 받은 요리 유망주, 경영학도가 되다.
이 모든 것이 결국 시간낭비일지라도, 적어도 우리는 어제보다는 선명한 미래를 그려나가고 있다.
- 채드윅(본인)
나는 17살 때부터 요리를 배웠다. 공부는 나의 길이 아니라는 것을 무려 17년 만에 깨달은 것이다. 공부는 하기 싫었고, 부모님에게 그래도 나도 뭔가를 배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좋은 핑곗거리를 찾다가 만만해 보였던 요리를 선택했다. 또, 당시 '요리하는 남자'는 꽤 멋있어 보인다는 착각을 했었기 때문에, 오랜 고민 없이 요리를 배우고 싶다고 당당하게 부모님께 말했다.
그런데 의외로 요리는 나와 잘 맞았다. 섬세하고 멋들어지게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요리에 쉽게 재미를 붙였고, 매일 요리학원에 마지막까지 남아서 '요리'라는 예술에 푹 빠져 살았다. 주말에도 칼을 놓지 않고 무언가를 척척 만들어 내며 부모님과 누나가 맛있다는 반응을 할 때면 어깨를 으쓱거리며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행운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정확히 1년 뒤인 18살에 저는 다니던 요리학원 원장님의 추천으로 서울에서 열리는 국제요리 박람회에 경상도 대표팀으로 합류하였고, 정신을 차려보니 1등을 수상했다. 무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내가 살면서 받아본 상 중에 가장 큰 상을 받은 것이다. 내가 알기론 장관이 주는 상 위에는 대통령상이나 국무총리상 정도밖에 없을 테니 장관상 정도면 10년짜리 안주거리가 생긴 셈이다.
자연스럽게 나의 진로는 요리사로 정해지는 듯했고, 레스토랑 주방에서 일하며 기술을 다졌다. 또, 운이 따라줘서인지 고3이 되자마자 국내 요리전문학교에 수시 장학생으로 합격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쉬운 건 수시에 합격했다는 특례(?)로 야자를 한 번도 안 해봤고, 수능도 안 봤다는거)
나는 남 밑에서 복종하며 일하는 성격은 못 돼서 항상 요식업 창업을 생각하고 있었다. 학교를 마치고 나면, 괜찮은 요식업 아이템이 뭐가 있을까 초록색 검색창에 이것저것 검색해보며 하루를 마무리하곤 했다.
그러다 우연히 前 한국경제신문의 임원기 기자님의 글을 보게 되었다. 임 기자님은 배달의민족, 야놀자, 당근마켓, 스타일쉐어 등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유명한 스타트업의 대표들을 300명 이상 인터뷰하고 자신의 블로그에 실은 분이다. 인터뷰 콘텐츠를 봤을때,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신선한 충격과 전율이 내 온몸을 휘감는 듯했고, 내 심장이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머지않아 깨달았다.
'아, 나는 얼마나 좁은 세상 속에서 살고 있었나? 세상에는 이렇게 멋지고 세상을 혁신시키려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왜 나는 부엌이라는 작은 공간에 나를 가뒀을까?' (요리업을 하는 분을 폄하하는게 아니라, 스스로 부엌이라는 공간 자체를 갑갑하게 느꼈었습니다.)
그렇다. 내 몸속에는 창업가의 DNA가 흐르고 있는 듯 했다. 그게 아니고서야 이런 감정을 쉽게 느낄 수는 없었을 테니까. 그리고, 결단은 빨리 내렸다. '경영'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든 나는 1학년 1학기를 마치자마자 무기한 휴학을 신청했고, 다시는 요리전문학교로 돌아가지 않았다.
경영을 배워 배민(배달의 민족)같은 멋진 스타트업 회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바로 경영학 편입을 준비했다. 당시 서울 C 대학교 회계학과에 재학 중이었던 친누나 덕에 회계학은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었다. 매일 눈뜨면 흑석동까지 가는 게 조금 귀찮긴 했지만, 으리으리한 대학교 캠퍼스의 풍경을 보며 자극을 받으며, 나중에 꼭 편입에 성공해서 이런 대학교에 오겠노라 동기부여를 하며 편입 준비에 매진했다.
그렇게 2년이란 시간이 지나 전역까지 했다. 그간 나름대로 노력한 덕분에 편입에 성공해 경영학도가 되었고, 등판에 멋진 호랑이 자수가 새겨진 야구잠바를 입고 캠퍼스를 누빌 수 있게 되었다. 또, 그렇게 듣고 싶었던 창업 교과목도 실컷 들을 수 있게 되었다.
해본 암기라곤 레시피 외우기가 전부였던 요리사 꿈나무가 경영학도가 된 것이다.
작년 2월에 대학교를 졸업한 나는 서울의 모 대학교에서 예비 창업자들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나중에 내 사업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서 많은 창업자들과 많은 사업 아이템들을 가까이서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다양한 비즈니스들의 흥망성쇠를 보며 생각한다.
이 모든 것들이 결국 시간낭비일지라도, 적어도 우리는 어제보다 선명한 미래를 그려나가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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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5. 21 채드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