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덕트 매니저의 자산은 기록이다
'프로덕트 매니저에게 정말 중요한 역량은 무엇일까?'를 한참 고민하던 적이 있었다. 이것도 잘해야 할 것 같고, 저것도 잘해야 할 것 같고.. 그러다 보니 결국 'PM은 모든 걸 잘해야 하는 제네럴리스트구나'라는 결과로 귀결된다. 그래 알겠는데.. 그래서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역량이 뭔데?라고 물으면 나는 '기록'이라 생각한다.
대부분의 프로덕트 매니저들은 '무언가를 기록한다'라는 행동이 습관화되어 있다. 회의록, 백로그, 회고, 기획서, 결과 보고서 등 PM은 하루에 많게는 수 십에서 수 백 페이지 분량의 페이퍼 워크를 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PM은 기록이 자산이다'라는 말도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PM에게 '기록'이라는 행위의 의미는 남다르다.
나는 PM으로 커리어 피봇을 할 때 당시 제 경쟁력을 무엇으로 가져갈 것인가를 고민할 때 '똑똑하게 기록하는 사람이 되자'로 정했다. 아 오해는 하지 말아달라. 하루종일 문서화 하는데 시간과 정성을 쏟자는 의미가 아니다. '해야하는 거라면 제대로 하자'는 것이다. 똑똑하게 기록한다는 것은 곧 '일이 되게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수차례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문서를 잘 쓰는 방법을 고민했다.
워낙 다양한 Smart Note 애플리케이션이 있지만, 나는 가장 대중적인 서비스 중 하나인 '노션'을 선택했다. 이 노션을 용도에 따라 여러 통장을 분리하는 것처럼 목적에 따라 여러 페이지로 구분해서 쓰고 있다. 뭔가를 시작할 때 거추장해지면 작심삼일이 되는 스타일이라 시중의 복잡한 템플릿을 뒤로하고 직접 템플릿을 만들어 쓰고 있다. 몇 가지 예시를 보여보자면,
건강한 회고야말로 비약적인 성장을 가져다 준다.
회고를 가장 첫 단에 쓴 이유는 기록하는 모든 것 중 회고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뭘 했고, 뭘 잘했고, 뭐가 부족하고, 어떻게 해야겠다'는 내용이 담긴 회고는 자기객관화에 큰 도움을 주고, 회복탄력성을 성장시켜 준다! 회고와 업무 일지는 분명히 다른 목적으로 구분해서 작성해야 한다. (되도록 일상과 일의 기록은 아예 분리해서 쓰는게 좋다.)
회고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어렵게 쓰지 말 것'이다. 어렵게 쓰면 나중에 다시 열어보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보여주려고 쓰는 것도 아니니 너무 정성 들여서, 또 복잡하게 쓰지 말자. 간단하게 쓸수록 쓰기 쉽고, 다시 꺼내보게 된다. 있어 보이게 쓰려고 노력하지 말자. 명심하자! 회고는 있어 보이려고 쓰는 게 아니라, 나를 되돌아보려고 쓰는 것임을!
기록하기 전까진 읽은 게 아니다.
"좋아하는 것을 계속하고 싶다면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기획자의 독서(김도영 저)에 이런 문구가 있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문구이기도 하다. 일을 잘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은 모두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을 텐데, 독서는 이런 어려움을 가장 쉽고, 저렴하게 해결해줄 수 있는 도구다.
나는 독서 노트를 노션에 정리하기 시작한 지 3개월이 조금 넘어가는데, 예전에 책만 읽고 덮었을 때와 비교하면 기록을 함으로써 정말 지식이 풍부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고 있다. 책에 담긴 저자의 지식과 정보들을 그냥 읽기만 하면 내 것으로 만들기 어렵기 때문에 독서 노트를 작성함으로써 저자의 지식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독서 노트를 쓰는 게 어렵다면, 필자가 쓴 독서 노트 정리법 글을 참고해보시길!
설득하기에 가장 효과적인 한 장의 종이
아마존의 CEO 제프 베조스는 2017년에 파워포인트 발표 문화를 없애면서 '6 Page Narratives' 문화를 도입했다. 준비하는데 복잡했던 파워포인트 발표 대신 서술 형식으로 6장 이내의 메모로 정리함으로써 페이퍼 워크에 소모되는 시간을 단축하고, 회의 참석자의 이해도와 집중도를 증대시킨 것이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원 페이지 내러티브(이하 '원 페이저')는 한 장의 문서에 무엇을, 왜 하는지 요약해서 정리하는 효과적인 문서 작성 방법이다. PM/PO가 조선시대 사관도 아니고 페이퍼 워크에만 시간을 쓸 순 없지 않은가? (게다가 열심히 써도 다들 잘 안봄.) 이런 비효율적인 페이퍼 워크 작업을 혁신하고자 원 페이저를 쓰고 있다. 원 페이저 기획서는 '목표 > 문제정의 > 가설 > 성공지표 > 해결방안 > 회고' 순으로 정리하고 있다. 한 페이지에 반드시 모든 내용을 적어야 한다는 강박보다 한 페이지로 요약될 만큼 미사여구 없이 간략하게 작성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해보자.
원 페이저는 내가 이것을 한 장의 문서로 정리함으로써 스스로 제품의 히스토리를 파악하는 걸 강제할 수 있으며, 향후 방향성을 수립하는 중요한 나침반이 되어 줄 것이다. 물론, 같이 협업하는 메이커스들도 기존 수 십장의 문서보다 훨씬 반가워하는 건 덤이고!
하루의 마지막은 내 정보 자산을 되돌아보며.
PM은 하루 일과 중 정보 수집에 쏟는 시간이 대부분인데, 막상 어렵게 찾은 정보들을 잘 관리하고 있지 않다. 축적된 정보 자산을 잘 관리하는 것도 PM의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아티클을 읽었는지, 또 단체 카톡방에서 어떤 지식이 오갔는지를 집중해서 수집한다면 열 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나는 노션에 '아티클'과 '지식의 전당'이라는 페이지를 만들어 정보 자산을 관리하고 있다. 보통 자기 전에 수 백 통이 쌓인 카톡을 빠르게 넘겨가며, 내게 생소한 지식에 대한 질문과 답변을 발견하면 바로 노션을 켜서 복사+붙여넣기한다. 미래 관점에서 보면 짧은 노동 대비 데스크 서치에 낭비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아티클'은 말 그대로 내가 데스크 서치를 하면서 찾은 좋은 업무 지식이나 트렌드를 보관하는 공간인데, 나중에 새로운 기능을 도입한다던지 아이데이션을 할 때 좋은 인사이트를 쉽게 찾을 수 얻을 수 있다.
다음 '지식의 전당'은 단체 카톡방에서 획득한 정보를 보관하는 공간이다. 나는 PM/PO/서비스 기획자 1,500명이 모여 있는 단체 카톡방 2개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도합 3,000명이라는 많은 동종 업계 종사자들이 모여 있다 보니, 업무에 관한 이야기가 매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대부분 '이런 기능을 도입하려 하는데 개발이 가능할까요?' 혹은 '이런 어려움이 있는데 어떻게 해결할까요? '라는 질문을 주니어 기획자가 던지면 거기에 시니어 PM/PO나 관련 도메인에서 일하고 있는 관계자분이 답변을 해주시는데, 쓸모 있을 정보들이 쏟아져 나오는걸 대충 보고 무시하기가 힘들더라.
그래서 '지식의 전당'이라는 페이지를 만들어 당시 오갔던 질문과 답변을 스크래핑해서 정리하고 있다. 완전히 다른 세상의 질문도 아니고 우리가 실무에서 마주할 수 있는 질문들이 많기 때문에 잘 보관해둔다면 나중에 내가 똑같은 난관에 봉착했을 때, 큰 어려움 없이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긴다. 물론, 답변이 현재 시점에서도 유효한 지 검증은 필요할 것이고.
이렇게 나는 기록을 미래의 자산으로 생각하며 열심히 하고 있다. 여러분은 어떤가? 너무 뻔한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는가? 아니면 정보의 홍수 속에 갈팡질팡 헤엄치던 중 생명의 동아줄을 발견한 기분인가? 기록은 자산이 된다. 귀찮고, 불필요하게 느껴지더라도 미래의 나를 위해서, 유의미한 데이터로 보관될 수 있도록 우리 조금만 노력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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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9. 08 채드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