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우리를 훌륭한 인재로 성장시키는가
지금부터 알려드릴 내용은 자기반성(회고)을 통해 돌아본 필자의 경험담이다. 여러분들이 조금 더 성숙하고, 신뢰받는 주니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 읽다 보면 누군가에게는 당연하게 느껴질 수 있고, 왜 이렇게 행동했지? 싶은 내용도 있겠지만, 회사라는 곳이 그렇다. 나는 잘하고 싶은데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는 순간마다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흔들리지 않고 금세 회복해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회사에 끌려만 다니다 선수 교체될 것인가. 나는 여러분들이 전자의 선택을 하기를 바란다.
'드디어 기획자로 첫 커리어를 시작했다. 좋다! 이 기세로 나 채드윅, 회사에 엄청난 변화의 파도를 일으킬 것이다!'. 아마 첫 직장으로 입사를 앞둔 주니어라면 다들 이런 상상을 하며 첫 출근을 준비할 거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뭐든 적당한 자신감, 열정은 좋지만, 간혹 열정이 과해서 무모함을 가져오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실수가 주니어 기획자의 눈으로 '오만한 평가'를 한다는 것이다.
(열정과다)주니어 기획자 : 제가 당사 서비스를 분석해 봤는데, 이런 이런 점이 부족해 보입니다. 그리고, 여기는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조금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바꾸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런 발언은 아무리 선의의 마음을 가지고 말해도 그 자리에 있는 모두를 당황하게 만든다. 부족한 점을 캐치해낸 건 좋다, 근데 히스토리 파악(왜 그렇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이유나 배경 이해)도 없이 부족하다며 평가하고, 이렇게 바꾸자며 주니어가 당사 서비스를 메이커 앞에서 평가한다?그걸 기획한 동료가 그 자리에 있다면 상당히 기분 나쁠 거다. 성격 좋은 동료들도 눈살 찌푸리게 만드는 행위니 조심해야 한다.
모든 서비스들은 완벽하지 않다. 부조리함의 원인은 '기획자의 의도된 설계', '개발 리소스 부족', '임원의 고집(아묻따 진행시켜!)', 'A/B테스트를 해봤는데 이게 더 반응이 좋음' 등 우리가 미리 헤아릴 수 없었던 배경이 있을 수 있다.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조심스레 접근하자. 그 부조리를 바꿀 기회는 언젠가 오고, 그 기회를 통해 결국 내가 맞았는지 틀렸는지를 증명할 수 있을 거다.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게 있다. 우리는 우리가 맡은 서비스에 대해서는 최고의 전문가여야 한다. 이 말에 대해서는 모두가 이견이 없기를 바란다. 서비스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것은 우리 서비스의 근간이 되는 서비스 아키텍처와 기술적 지식, 개발 스택, 도메인 지식 같은 코어 놀리지(Core Knowledge)만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건 서비스를 이루는 뼈대에 대한 이해이지, 서비스를 100%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왜 사용자가 우리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지?', '나라면 이용하고 있을까?', '우리 서비스를 사용자들이 정말 잘 사용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이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모종의 시도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게 호기심의 공백을 메꾸는 게 이해하는 것이다.
아는 것과 안다고 착각하는 것은 다르다. 필자 역시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 중에 안다고 착각하는 것이 많다. 이론에 종속되어 분석에만 완벽해지려 하지 마라고 조언하고 싶다. 최근에 서비스기획자 양성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서비스를 디테일하게 분석하는 기획자 준비생들이 자주 보인다.
현업 실무자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로 훌륭한 분석력이라고 생각하지만, 실무적 관점에서 보면 조금 갸우뚱스럽기도 하다. (그렇다고 서비스를 뜯어보고, 스스로 고민을 해보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서비스와 우리 서비스를 사용하는 고객에 대한 이해다. 우리 서비스에서 자주 발생하는 이슈는 무엇인지, 어떤 대응책이 준비되어 있는지, 가장 트래픽이 집중된 서비스는 무엇이고, 지난 기간 대비 유난히 유저 체류시간이 줄어든 페이지는 어디인지, 고객들이 입 아프게 불편하다고 얘기하는 기능은 무엇이고, 회사와 어떤 입장 차이가 있는지. 이것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답은 이런 곳에서 얻어야 한다.
규모의 기업에 들어갈수록 우리 업무 대부분은 유지보수 위주로 돌아간다. 회사가 신입 PM/기획자에게 처음부터 대규모 서비스 런칭이나 기존 서비스 고도화를 맡기진 않는다. (론칭된지 꽤 오래되었고, 안정적인 서비스를 맡게 되었다면) 아마 수개월간 지속적으로 낮은 수준의 저강도 고반복 업무가 반복될 거다. 나도 그랬었지만, 많은 주니어들이 여기서 허탈함을 느낀다. '내가 이런 일(유지보수)만 하려고 이렇게 힘들게 입사한 건가?', '나중에 이직할 때까지 내 이름이 걸린 프로젝트는 구경도 못 해보는 거 아니야?' 같은 초조함만 늘어놓을 뿐이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다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언젠가 모두에게 '내 차례'는 공평하게 온다고. 그러나, 내 생각에 이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나는 이런 고민을 갖고 있는 여러분들이 건강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회사에서 쓸모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임팩트 있는 일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한다. 백일, 천일 문구 수정이나 오류 개선만 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모두가 임팩트 있는 일만 하고 싶어 한다면, 아무도 유지보수를 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유지보수는 우리 서비스를 건강하게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 불가결한 업무이다. 제아무리 잘 만든 서비스여도 유지보수 업무가 없을 수는 없다. 그러니, 처음 6개월 간은 다른데 정신팔지 말고 유지보수에만 집중하는 것을 권장한다. 그리고 그 6개월 간 메이커들에게 신뢰를 쌓으며, 여러분만의 필살기를 준비하기를 바란다.
여기서 말하는 '필살기를 준비한다'라는 것은 6개월 간 유지보수를 하면서 우리 서비스의 어떤 점이 취약한지, 어떤 점이 개선되면 좋을지, 어떻게 더 나은 서비스로 성장시킬 수 있을지를 스스로 고민해 보며 판을 짜보라는 뜻이다. 그동안 꾸준히 유지보수를 훌륭하게 처리해 냈고, 서비스에 임팩트를 가져다줄 수 있는 멋진 기획안을 준비했다면, 메이커들도 무한한 신뢰와 응원을 보내줄 것이다.
모든 문제를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우선 단순하게 접근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 2의 리소스가 필요한 일인데 10의 마음가짐으로 접근하면 모든 세상만사가 다 복잡하게 느껴진다. 잠깐 논점에서 벗어나자면, 특히 프러덕트 매니저에게 중요한 역량 중 하나가 메이커들에게 업무를 요청할 때, 10의 일도 2처럼 느껴지게 잘 포장하는 능력이라 생각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단순하게 접근하라는 말은 곧 처음부터 디테일 하나하나에 너무 신경을 쏟지 말라는 말이다. 예를 들어, 팀장님이 '000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구상해 보세요.'라는 지시를 했을 때 마치 논문 한 장을 준비하는 열의에 임하며 수 페이지에 걸쳐 기획안을 작성하며, 몇 날 며칠을 문서 작성에 매달려 있는 주니어들이 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우리 사용자들은 인내심 있게 기다려주지 않는다.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다차원적이고, 한 번에 해결하기 어렵다고 판단된다면? 러프하게 당장 필요한 내용 위주로 작성하고 의논해봐야 한다. 그러나, 단순하게 접근한다고 그 결론 또한 단순해지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는 있다.
즉, '특정 페이지에 디자인 개선 작업을 했는데 페이지뷰가 감소하는 추세'라는 문제가 있다고 가정했을 때, '그럼 롤백해야죠'나 '디자인 개선으로 사용자들이 혼란스러운 것 같습니다. 더 좋게 개선해 보는 건 어떨까요?'라는 답변이 아닌 '디자인 작업 개선으로 인해 단기간 사용자 지표가 낮아질 수 있으니, 기존 디자인 대비 어떤 이벤트 수가 감소했고, 어디로 이탈률이 늘었는지 확인해 보는 건 어떨까요?'처럼 As-Is와 To-be에 대한 고민의 깊이가 있었음을 결론으로 도출해야 한다.
신은 디테일에 있다고? 1년도 안 된 주니어에게 미친 디테일을 바라는 것이 오히려 넌센스다.
필자는 1~2주에 한 번 팀장님과 원온원 미팅을 한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 부족한 점은 뭔지, 우리 회사의 목표에 맞게 내가 잘 맞게 가고 있는지, 개인 단위와 팀 단위에서 내게 염려되는 점은 무엇인지 등을 묻는다. 이런 나를 귀찮아하지 않는 팀장님께 너무 감사하다.
원온원 미팅을 두려워하거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혹자는 사직 의사를 밝히기 전까지는 한 번도 면담을 해본 적이 없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아무리 개인주의 시대라지만, 본인의 속마음조차 개인에게만 담아두지 말자.
내가 걸어야 하는 길을 걸어온 사람들을 이야기를 듣는 것은 정말 큰 도움이 된다. 그들이 어떤 시행착오를 겪었는지, 그들이 생각하기에 내 강점은 무엇이고, 약점은 무엇인지 들을 수 있는 기회는 원온원 미팅에서만 가능하다.
동료나 관리자에게 어려워하지 말고 먼저 티타임을 요청해 보자. 그들에게 내가 지금 무엇을 고민하고 있고, 어떤 점이 어려운지 얘기해 보자. 의외로 내가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해결책을 발견할 수도 있고, 라포(Rapport) 형성에 큰 도움을 준다.
짧은 연차에 좋은 직장에 들어갔거나, 빠르게 승진한 사람들은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회고를 통한 자기객관화의 전문가들'이라는 점이다.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무엇이 부족한지 점검하며 방향성을 잡는 것은 앞만 보고 무작정 전진하는 것보다 훨씬 큰 성장을 만들어 낸다.
'회고가 중요하다'는 얘기를 나는 수 백번도 더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글 역시 셀 수 없는 회고가 있었기에 쓸 수 있었던 깨달음이자 자기반성이다. 매일, 매주, 매달, 그리고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여러분들이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이 휘발되기 전에 남겨두기를 바란다. 부족했던 점에서 스스로 깨닫고, 더 나은 내가 되도록 돌아보며 걷자. 오늘 아침 내가 몰랐던 내용으로 크게 깨졌다면, 저녁에는 반드시 완전히 알아내고 말겠다는 집념을 가지길 바란다.
역사가 그랬고, 인문학에서 그래왔듯 인간은 돌아보며 성장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필자도 주니어인 마당에 감히 여러분들께 조언을 한다는 게 마음이 여간 불편하지 않다. 그럼에도 쓴 이유는 "훗날 내게 후배 기획자가 생긴다면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를 미리 쓴다"는 생각을 하며 썼다. 위에 적은 내용 모두 지난날 회고에 썼던 내용들이다. 내가 했던 실수와 시행착오들. '1인분 하는 기획자'라는 소리를 듣기 위해 처절히 몸부림치던 지난날들과 다가오는 날에 대한 각오. 열의. 그 어떤 것들.
기획자는 정말 훌륭한 사람들이 많은 직무다. 현상과 문제,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어떻게든 해결하려는 사람들. 그 속에 있다 보면 '나라는 사람이 이런 일을 해도 되는 걸까'라는 감정에 지배되어 두려울 때도 있다. 그럼에도 척척해내고 있는 나 자신을 볼 때면 새삼 이 직무를 잘 선택한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
마지막으로 조언 한마디를 더 보태자면, 'Done'에 방점을 찍는 게 아닌 'So Next?'에 방점을 찍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란다. 잘해왔던 것처럼 잘 해낼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길 바라며.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말했습니다.
"나의 언어의 한계가 나의 세계의 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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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3. 01. 24. 채드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