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마음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02 : 불행했노라, 행복했노라. - 下

by 이소서




우리가 말하는 행복은 아주 작은 순간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니 나는 말하겠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포기하지 말라고.

오늘 행복할 용기를 얻으시라고.



그리고 내가 하나 더 깨달은 사람들의 오류 아닌 오류는 이것이다.

내가 생각했을 때, 세상에서는 딱 하나로 통일된다. 행복으로.



그러니까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사람들은 소원을 빌 때, 건강하게 해주세요, 취업하게 해주세요, 라고 빌고,

사람들의 목표에는 대학교, 취업, 결혼, 출산 등등 아주 많은 것들이 있는데,

그 많은 걸 한 마디로 표현하면 행복이라는 것이다.



그 증거는 왜? 라는 질문 하나면 된다.

왜 건강하길 바라나? 왜 취업하고 싶은 거지? 왜 결혼하고 싶나? 왜 친구를 원하지?

왜 로또에 당첨되고 싶은 거지? 아, 돈이 많으면 좋으니까.

왜 돈이 많으면 좋은 거지? 음, 그래야 행복할 것 같으니까.



각자 사람마다 저마다의 성향이 있고 적성이 있다.

또 저마다의 취향이 있고, 체질이 있다.

이처럼 다 저마다 행복의 체형과 얼굴만 다를 뿐이지 그 이름은 행복인 것이다.

그러니, 나에게 좀 더 여유를 주고 생각해보자.



물론 인생에 있어 꿈과 목표는 꼭 필요하고,

우리가 꿈꾸고 목표한 것이야말로 우리의 삶에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성적 때문에, 취업 때문에, 또 무엇무엇 때문에 행복을 포기하면 무엇이 남을까.

정작 행복을 주고 얻은 목표에 무엇이 남을까.

그건 내가 행복한 게 아니라 내 성적이, 내 직업이 행복한 게 된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내 성적이나 직업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그러니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내가 행복할 방법과 내가 행복해질 길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잘하는 법이 아니라, 행복할 수 있는 방법과 그 습관을 가르쳐야 한다.

잘해야 잘 사는 게 아니라, 잘 살아야 행복한 게 아니라 행복해야 잘하는 것이고,

그게 잘 사는 것이라고, 가르쳐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나에게 적용해보자. 나에게 행복이란 어떤 의미인가.

솔직히 말하면 어떤 의미인지,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 집은 빚을 갚지 못해 풍비박산이 났고, 나는 꿈을 포기해야 했다.

나는 어느새 20대 중후반이 되었고,

내가 살기 위해 했던 선택이 이 나이 먹고 이룬 것 하나 없는

그런 한심한 인간으로 만들었다.

나는 병원 입원을 권유받을 정도로 심각한 우울증이고

내 하루에서 죽음은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이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과연 나는 단 1분 1초도 행복하지 못하고,

내내 불행하고 비참하기만 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아니다.



아무리 바쁘고 치열한 하루를 보내더라도 그 하루에는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아무리 작을지라도 분명한 행복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귀가하는 버스 안에서 창 밖을 보며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듣는 것,

그 노래를 들으며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상상에 빠지는 것,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가 눕는 침대, 날 감싸 안아주는 그 차갑고 퐁신한 이불의 촉감,

그러고서 보는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나에게 쫑알쫑알 쉼 없이 장난을 거는 영원한 나의 아기들(쌍둥이 여동생들).

세 줄로 나란히 누워 같이 보는 유튜브 영상들.



내 하루를 돌아봤을 때 나는 분명 그 소소한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또 세상 모두가 잠든 새벽녘 나 혼자 내 방에 앉아 쓰는 글,

혼자 남아 하는 노래 연습, 연기연습.

그럴 때, 쌓이고 쌓여 하악질을 해대던 내 스트레스들도 그르렁대며 더 나은 소리를 내뱉는다.

그런 시간마저도 나는 지옥 같은 기분을 느꼈지만,

조그마한 행복은 옅지만 분명 나를 안아주고 있었다.



나는 깨달아야 한다.

인정해야한다.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행복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어떠한 행복을, 어떻게 느끼고 살 것인가에 대한 의문도 남는다.

앞으로 내가 더 노력하고 깨달아 행복에 대해 더 많은 걸 알게 되면

아마 거창한 행복도 느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지만,

지금으로써는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아주 작을지 모를 소확행들에 대해 집중하고 싶다.



아주 작은 순간들이 모여 삶이 되는 것을 알았으니,

더 크게 행복하기 위해 아주 작은 순간들부터 모아보려 한다.

지금 행복할 줄 알아야 나중에도 행복할 수 있다.

그러니 나는 이제부터 행복할 준비를 하려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도 중요하겠다.

나를 알아야 내가 어떤 순간에 행복한지를 알 테니까.

이 글을 작성하기 전 나는 먼저 내게 물었다.

지금 나는 나의 행복을 위해 어떤 것들을 하고 있는가.

슬프게도 거의 없었다.

나는 요 몇 년 사이, 행복에 대한 열망이 가득 커진 상태였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그러기 위해 내게 해주고 있는 것들이 없었다. 바로 그 미래를 위해서였다.

그래 멀리 봐야지. 더 크게 봐야지.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그 직장에서 자리 잡으면,

내가 내 꿈을 이루는 날이 오면,

돈을 모아서 더 큰 집에 가면, 모아둔 돈으로 더 예쁜 옷을 사고,

더 맛있는 음식을 먹고, 더 좋은 곳으로 여행 가면 더 행복하겠지.

그때 지금 못했던 것들을 실컷 해봐야지 하며 미루고 미뤘다.



이 글을 쓰며 내가 나를 얼마나 막 대했었는지를 깨달았다.

남들에게는 민폐 끼치지 않으려, 실수하지 않으려 안달복달 애를 썼었다.

남들 앞에서는 밥 하나 편히 먹지 못했고, 국을 먹을 땐 어김없이 손이 떨렸다.

누군가가 있으면 행동 하나, 말 하나 다 통제했다.

그렇지만 어쩌면 가장 중요한 사람인 나에게는 그러지 못했다.

이 사회가 요구하는 내 몫을 해내느라 여유가 없어서, 남들 배려하느라 남은 힘이 없어서,

나를 미뤘고, 나에게 참으라 말했다.



어찌 보면 아무도 시키지 않은 궁상이기도 했다. 그럴 때면 슬쩍 세상 탓을 했다.

이 돈 많아야 겨우 살 수 있는 세상, 세상이 이런 걸 뭐 어떡하라고.

그래서 달래질 속도, 그래서 채워질 허기도 아니었는데, 그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 누르고 눌렀다.

미래를 위해서. 희망찬 내일을 위해서. 내 찬란한 앞날을 위해서.

5년 전에도 했던 말들을 수없이 되뇌었다.



책에서 본 곰돌이 푸는 ‘매일 행복할 수는 없지만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라고 말했다.

예전에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당최 행복한 일이 어디 있다고. 돈도 없고, 난 이렇게 이룬 것 하나 없이 한심한 꼴인데.



그랬던 나에게 오늘 다짐했다. 앞으로는 내 행복을 위해 노력하기로.

끽해봤자 이거였다.

끽해봤자 지친 하루 끝 버스 안에서 듣는 음악 몇 곡이었고,

끽해봤자 침대에 누워 보는 드라마 몇 편이었다.

생각해보면 그거 하나를 편히 못 해줬다. 나에게.



그런 나에게 다짐한다.

귀가 버스에서 듣는 드라마 OST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

샤워하고 먹는 김치찌개.

후식으로 먹는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에이블리 할인 쿠폰에 포인트에 있는 대로 줄이고 줄여서 고른 마음에 드는 옷 한 벌.

시간 내고 돈 모아 겨우 가는 여행.

나에게 착실한 소확행들을 선물하겠다.

그렇게 행복하는 습관을 내게 들이겠다.



언젠가, 다시 행복에 대한 질문을 들었을 때, 혹은 다시 이 주제에 대해 글을 쓰게 되었을 때,

나는 오늘보다 더 그럴듯한 글을 쓸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오늘보다 더 행복해진 모습으로 더 큰 행복에 대해 말할 수 있기를 꿈꾼다.



다시 생각해보면, 다 아는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뻔한 말을 꼭 해야했다.

이 뻔하디 뻔한 것을 해주지 못했던 수많은 ‘나’들이 있어서.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우리에게는 각자 행복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다른 것보다, 행복해야 하는 의무도 다하길 바란다.

삶은 우리가 생각했던 그 어느 날보다 짧을지 모른다.

그러니 꼭, 오늘 행복하길 바란다.

당신의 불행에서 벗어나, 행복할 용기를 내시라.

어쩌면 행복도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이소서 #에세이 #감성글


2025. 0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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