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마음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01 : 불행했노라, 행복했노라. - 上

by 이소서




행복. 다행 행, 복 복.

사전적 의미로는 복된 좋은 운수,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

그렇다면 내 인생에서 행복은 과연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고, 걔는 지금 어디 쯤에 있을까.

우리는 모두 각자마다 목표를 가지고 살아간다.



또 우리는 별똥별이 떨어지거나, 생일 초를 불기 전과 같은 일상적인 순간에서 많은 소원을 빌기도 한다.

건강하게 해달라거나, 시험 잘 보게 해달라는 것,

또는 취업하게 해달라는 것이나 가족들의 강녕을 빌기도 한다.



나 또한 그렇다.

뭐, 연금복권 당첨이나, 사실은 내가 재벌 집 명문가 자제였으면,

하는 그런 우스갯 소리가 담긴 파워 N의 소원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뿐만은 아니다.

원하는 고등학교에 가는 것, 또 내가 원하는 대학교, 내가 원하는 학과에 입학하는 것 등

많은 목표를 세우고 그를 이루기 위해 쉼 없이 달려왔다.

많은 목표를 지나 또 그 앞에 있다. 내가 지난 수많은 목표의 끝은 또 다른 목표의 시작점들이었다.



학교, 직장, 세상은 수많은 사람들의 학교와 직장, 또는 가정으로 조화되어 있다.

그 말은 세상에는 셀 수도 없는 사람들의 목표와 소원들로 뒤엉켜 있다는 말과도 같다.

그리고 그 말은 나도 그런 꿈을 꿔봐서, 나도 그런 소원이 있어봐서 너의 맘을 알아. 가 될 수 있다.



때론 아직까지 남아있는 소원과 꿈이라는 낭만이 한 아이의 세상을 바꿔주기도 하고,

또 어떤 한 사람의 작은 순간을 변화시켜 주기도 한다.



다시 돌아가보자. 세상엔 셀 수도 없는 사람들의 목표와 소원들로 뒤엉켜 있다.

그 말은 나도 그런 꿈을 꿔봤어. 나도 그런 소원이 있어 봤다고. 너만 청춘인 게 아냐. 가 될 수 있고,

가장 위험한 형상인 욕심이란 말로 그 예쁜 이름이 바뀌기도 한다.

꿈이라는 아주 그럴듯한 관형어를 물고서 간절함이라는 포장지를 싼, 끝도 모르고 불어나는 자기합리화.

욕심은 수없이 많은 형태의 비극을 만들어낸다.

나도 욕심의 그 잔인한 얼굴을 알고 있다.



행복이란 말로 시작해놓고, 왜 이런 말을 늘어놓나, 과연 어디까지 갈 셈인가, 싶을 거다.

내가 굳이 소원이니, 꿈이니 목표이니, 이렇게까지 적었던 건 딱 하나 때문이다.

그래, 행복. 행복 때문이다.



내게 행복이 어떤 의미인지 알려면, 먼저 그 행복이 어떤 형태인지 알아야 했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행복이 있지 않나.



어떤 이는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찾는 소확행을 꿈꾼다.

하루 세 끼 먹는 밥 한 숟갈에서 행복을 찾는 이도 있고,

치열하게 보낸 하루 끝에서 먹는 맥주 한 잔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이도 있다.

사랑하는 이들과 얘기를 나눌 때에 비로소 행복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시간을 간직하는 것에서 행복을 곱씹는 사람도 있다.

때로는 쇼핑을 하거나 어떤 지름신의 유혹을 들어주는, 그런 물욕에서 이게 행복이지, 하는 사람도 있고,

일단 행복이고 뭐고 실컷 잠부터 자고 생각하자, 에서 유영하는 행복도 있다.



그런 대한민국의 인구 수보다 많은 행복의 형태 속에서,

안타깝게도 이 글을 적고 있는 본인은 그런 나만의 형태를 찾지 못했다.

우리 집은 늘 반 아이들보다 독특했고,

나의 삶도 마찬가지였다.

아주 오랫동안 아주 유별날 만큼 우울했었고,

남들보다 속도가 느리다는 이유로 나는 게으른 한량이 되었다.

정답이 아니라는 이유로 내가 고른 최선의 답들은 나를 하나의 거대한 오답으로 만들었다.

해내기도 바쁜데, 행복할 정신이 어딨어 라는 말로 나를 몰아세우기도 했다.

그럴수록 행복하고 싶다는 갈망이, 또 행복하지 못한 결핍이 나를 좀먹고 있는 줄도 모르고.



여기서 내가 찾았던 오류 중 첫 번 째를 깨달았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한다.

미래에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오늘을 희생한다.

왜, 그런 말도 있지 않나. 이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 그런데 그 말에는 큰 오류가 있었다.

분명 대학 생활을 위해 고등학교 생활을 불태우는 거라 했다.

분명 취업을 위해 대학생의 청춘을 불사르는 거라 했다.

분명 승진을 위해 이 혼을 갈아 넣는 거라 했다.

그러니까, 5년 후에 잘 살기 위해 지금을 희생하는 거라 했다. 분명히.



그래서 정말 죽을 힘을 다해 5년을 버텼다.

그렇게 5년 후에 다다르니 이제 그러는 거다.

자, 10년 후에 잘 살기 위해 지금 노력하는 겁니다.

아마 그 10년 후에는 그러겠지. 15년 후에 잘 살기 위해 지금 죽기 살기로 하자고.

그러다 진짜 죽을 수 있다는 걸 모르고.

아니, 어쩌면 그러다가 마음이 다 죽어버린 걸 알면서도.



나는 깨달아버렸다.

과거가 모여 현재의 내가 만들어진다.

오늘이 모여 미래의 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말은 중요하다.

미래의 내가 잘 살기 위해 오늘의 나를 갈아 넣자, 가 아니라

오늘 행복해야, 미래의 나도 행복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



그래서 우리는 오늘, 행복할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가 말하는 행복은 아주 작은 순간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니 나는 말하겠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포기하지 말라고.

오늘 행복할 용기를 얻으시라고.



#이소서 #에세이 #감성글


2025. 03.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