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엄마와 하노이 3박 5일 _ 11
집으로 돌아오고 다음날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빠가 이번 여행 좋았다고 하셨단다. 나도 모르게 “그래야지, 이렇게 잘 맞춰드리는 아들이 어디 있어?”라고 본심을 드러냈다. 이 마지막 순간까지도 점잖게 넘어갔어야 했는데 생색 아닌 생색을 내고 싶었나보다.
아닌 게 아니라 아빠는 하노이에서 원하는 쇼핑도 완전히 클리어하셨다. 베트남에서 노스페이스 패딩을 사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Made in Vietnam>이라는 간판이 붙어있는 곳은 대부분 노스페이스 제품을 파는 곳이었다. 난 한 번도 눈길 간 적 없던 가게를 아빠는 보이는 대로 들어갔다. 7~8군데 정도? 여행 내내 노래를 부르시더니 결국 마지막 날 패딩을 구매하셨다. 그리고 다른 가게를 또 가서는 배낭과 모자까지도 구매 완료. 패딩을 옆구리에 끼고 가방을 메고 걸어가시는 뒷모습이 어찌나 가벼워 보이던지. 핀잔이야 드리긴 했지만 그 물건들을 사는 내내 함께하며 같이 골라준 엄마와 나의 노고가 “아빠가 이번 여행 좋았대”라는 말로 위로받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부모님은 여행 내내 나의 구직 얘기로는 조금도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셨다.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이냐고 한두 번 물어보셨지만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어갔고 그게 다였다. 속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엄마가 전화로 전해준 얘기는 여행 좋았다는 게 전부는 아니었다. 아빠가 걱정 많이 한다고, 구직 사이트도 손수 찾아보셨다고 했다.
아빠는 내게 특별히 잔소리하신 적이 없다. 중요한 포인트마다 이래야 되지 않겠냐는 제안이야 하셨지만 길게 왈가왈부하신 적은 없으시다. 어쩌면 하나부터 열까지 다다다다 잔소리하시는 엄마에 대한 반대급부로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아빠는 늘 담담해 보였다. 아빠가 정말 많이 걱정하고 있다는 건 늘 뒤에서 듣게 됐다. 고등학생 시절 교통사고가 났을 때도 앞에서는 별다른 얘기를 안 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사고를 낸 운전자에게는 멱살까지 잡으시며 화를 내셨다는 얘기를 나중에 듣게 됐다. 평소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이번에도 뒤에서 엄청 걱정하시는 것 같아서 순간 울컥했다.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걱정만 끼쳐드리는 것 같아서 너무 죄송했다.
엄마도 여행이 좋았다고 하셨다. 다음에는 딸과 며느리도 같이 가자고 하시면서. 처음에는 지나가는 얘기인 줄 알았는데 완전 진심이셨다. 시간이 지나고 가족 5명이 함께 갈 비행기와 호텔을 정말 예약했다. 가족끼리 함께 여행 가는 게 좋으셨던 것 같다. 가족이 많아질수록 제일 양보를 많이 하게 되는 사람이 결국 엄마인데도 엄마는 그렇게 함께 가는 게 좋으신 가보다. 이번 여행에서도 본인 물건은 하나도 사지 않으시고 딸과 며느리 선물 사줘야 한다면서 지나가는 가게마다 들어가 보셨었다.
어렸을 때는 가족과 함께 떠나는 여행은 상상해보지도 않았었다. 혼자 가거나 친구와 가는 게 여행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가족과 더 많이 가게 된다. 그리고 그때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즐거움을 알게 된다. 소중한 시간들이 쌓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