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디얇은 개인 책도 글을 써야 만들 수 있다

by 별연못

부모님과의 여행 이야기를 작은 여행책에 담아내고자 생각한 뒤에는 실제 글을 쓰는 과정이 남아있었다. (너무 당연한 얘기인가?) 언제까지 쓸지는 알아서 할 일이었다. 그래도 여행책 만들기 수업이 끝나기 전에는 편집까지 다 하고 인쇄도 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으니 2~3주 내에 써야겠다 싶었다. 아무리 백수 상태라지만 2~3주 내에 쓸 수 있는 분량은 한정되어 있을 것 같았다. (그냥 많이 쓸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은 힘들이지 않고 쓸 수 있는 정도만 쓰기로 했다. ‘이만큼은 꼭 써야지’라기 보다는 ‘쓴 만큼만 해서 만들어보자’에 가까웠다.


목차 같은 것도 정교하게 정하지 않았다. 이건 연습이었으니까. (이 한 번의 연습 외에는 더 없었다는 것이 함정이긴 하다) 다이어리와 종이를 꺼내놓고 시간별로 간단히 메모를 해나갔다. 언제 이 여행 얘기가 처음 나왔는지부터 되짚어보며, 항공권과 숙소를 예약한 날을 비롯해 한국으로 돌아온 시간까지 하나하나 기억과 사진들을 더듬으며 가능한 촘촘히 복기를 시작했다.


정말 별 게 없었다. 그저 일기를 기록하는 정도를 벗어나기는 힘들 것 같았다. 이래가지고는 독립서점에라도 내보고자 하는 마음이 덧없어 보였다. 지금이라도 그만 둘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가, 다른 여행 소재를 찾아보자는 생각도 들었다가, 연습 삼아 처음부터 끝까지 과정을 밟아보기로 한 것이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밀고 가보자는 생각도 들었다. 다행히 마지막 생각으로 미세하게 마음이 기울면서 다시 용기를 냈다. 몇 십만 원이 들지는 모르겠지만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버리는 돈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버킷리스트 하나 이룬다고 생각하고 즐겁게 해보자고 마음을 다독였다.




몇 십 페이지짜리 잡지 같은 책을 독립출판으로 내보는 것이라고 하면서도 내심 욕심이 있었나보다. 몇몇 지인들에게라도 ‘좋은 이야기’라는 진심어린 감상평도 받아보고, 몇몇 독립서점에 진열되었다가 단 몇 권이라도 팔려 ‘작가’라는 타이틀도 조심스럽게 가져보는 환상 같은 것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강좌 선생님은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목소리 높여 응원해주셨지만, 여전히 그것을 믿지 않는 마음과 그것이 진짜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뒤엉켜 있었다. 그러니 한 번은 ‘어차피 아무도 안 볼 책, 시험 삼아 만들어보는 것이니 깊게 고민 말고 되는대로 해보자’라는 마음이었다가, 한 번은 ‘그래도 혹시 돈 받고 팔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만한 가치가 있는 재미있으면서도 깊이가 있는 훌륭한 책을 만들어야지’라는 마음이었다가 하며 정신분열 같은 증세를 매일 반복하며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일어나지 않은 일, 심지어 경험해보지 않아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일을 계속해서 심각하게 그려보는 것은 거듭 제자리걸음만 하도록 만드는 최상의 방법이었다. 여행책 만들기 첫 수업을 듣고 나서 ‘부모님과의 여행 이야기를 쓰자’라고 생각한 뒤로, 그리고 다음 수업이 지나도록 아무것도 진전되지 않고 있었다. 살짝 조바심이 나면서 이런 동일한 패턴으로 충분히 5주가 지나갈 수 있다는 예상이 이어졌고, 그렇게 마지막 수업을 맞이하면 스스로에게 또 너무 화가 날 것만 같았다. 이럴까봐 첫 수업이 시작될 때에도 부디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만들어보자고 했던 건데, 그새를 못 참고 또 지지부진한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정말 징글징글하다)




그냥 쓰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와 함께했던 소중한 시간을 잘 간직하기 위해서 메모한다는 생각으로 그저 기록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엄마 아빠에게만큼은 같이 갔다 온 여행 이야기를 사진첩처럼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쓰기 시작했다. 거실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을 늘리려고 애썼다. 1층이라 나무에 가려 햇빛도 원하는 만큼 들어오지 않는데다 크기도 고시원만한 집 거실에서 그래도 음악 정도는 잔잔히 틀어놓고 문장을 하나하나 이어나갔다. 그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아빠가 무엇에 관심을 보였는지, 엄마가 언제 웃었는지 희미해져가던 기억들을 조금 더 선명하게 옮겨 적어 나갔다.


쓰는 동안 즐거웠다. 이전에 했던 고민들은 어느새 뒷전이 되었다. 그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써나가면서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어쩌면 엄마, 아빠의 이야기였기에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아들이 가이드 해준다며 좋아하시던 부모님의 표정이 떠올라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이야기를 하나하나 회상하며 한 편씩 엮어가는 과정이 참 따뜻했다. 좋아하는 영화를 보며 그 세계에 잠시 빠져들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느낌과 비슷했다.


오랜만에 글 쓰는 것이 재미있었다. 매번 회사에서 기획서나 홍보자료 같은 글만 쓰다가, 누가 시키지 않은 글을 쓰고 있자니 마음이 참 편안했다. 보여주려고 만들던 기획서나 홍보자료는 그렇게 감추고 싶더니만, 이 글은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다. 잘 써서라기보다는 그냥 나누고 싶었다. 좋아하는 친구 만나서 별거 아닌 일상을 나누며 수다 떠는 시간이 가져다주는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재미있다고 해서 한 번에 술술 쓰지는 못했다. 이번 꼭지에서는 여행 일정의 어느 정도를 소화할까 하는 생각으로 백지를 바라보다가 잠시 후 일어나서는 커피 한 잔을 타며 멍하니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어느새 자리에 앉아서는, 한 문단을 썼다가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가 그 다음 문단을 썼다가 하는 패턴을 반복하는가 하면, 영 이상한 것 같아 과감히 몇 문단을 지웠다가 아깝다는 생각에 다시 살려냈다가 역시 안 되겠다며 지웠다가 하는 행동을 반복하기도 했다. 그렇게 며칠 동안 글쓰기라는 작업에 빠져들었다. 참 오랜만에 무언가에 몰두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내심 뿌듯하기도 했다.




총 여섯 꼭지를 썼고, 한 꼭지 분량은 1,500자 정도였다. A5 용지로 2.5페이지 내외의 분량을 한 꼭지로 잡은 것이었다. (본문 외에 나름 ‘들어가는 글’도 짧게 썼다) 참 얼마 안 되는 분량인데, 이만큼 쓰는 것도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렇다고 몇 주씩이나 걸린 건 아니다) 기왕 쓰는 것 좀 더 길게 써서 그래도 책다운 두께를 만들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이상하게 더 길게 써지지가 않았다. 아무리 3박4일밖에 안 되는 여행이라지만, 본 것 들은 것 생각한 것 등등 잘 풀어서 두 배 정도라도 썼다면 좋았을 텐데 그게 잘 안 됐다. 괜히 혼자서 수업 과정 5주 안에 제작까지 다 해내야 한다는 쓸데없는 강박에 쫓겼던 것 같다.


일단 초안이라고 부를 만한 원고를 써놓고 나서는 한시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 뒤로도 몇 번씩 고쳐가며 시간을 더 써야 했지만, 그래도 처음과 끝이 모두 손에 잡힌다는 것만으로도 한결 마음이 놓였다. 이제 사진 고르고, 처음 해보는 책 편집 하고, 종이 고르고, 인쇄와 제작 견적 문의하고, 실제 결과물을 받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왜 글 쓰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이 남은 거지) 초심자의 고민과 한숨 같은 것과는 상관없이 수업은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었고, 최대한 수업 내용을 따라가며 다음 스텝을 차근히 밟아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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