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으로 책을 낸다는 건 디자인과 편집도 직접 한다는 의미가 된다. 더 재주가 좋으면 인쇄나 중철 같은 작업도 혼자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그런 손재주는 없었다. 간혹 독특한 형태의 책을 만드는 분들은 바느질 같은 작업을 이용해서 한 땀 한 땀 핸드메이드 책을 만든다고도 하던데, 거기까지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저 당장 눈앞에 놓인 편집을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지가 관건이었다.
책 만들기 수업에서 편집 툴 사용까지 가르쳐 주지는 못했다. 그러기에는 과정이 짧았다. 대신 개론적으로 어떤 방법들을 사용해서 책을 편집하는지는 소개해 주었다. 일반적으로 아는 것처럼 ‘인디자인’이라는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이 대세였다. 선생님은 기본만 다루고자 한다면 배우기에 그렇게 어려운 프로그램이 아니라며, 본인도 처음에 유튜브 강의를 보면서 익혔다고 했다. 요즘은 워낙 그런 정보들을 찾아보기가 쉬우니 본인의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는 문제였다.
질문은 하지 않았지만 프로그램 구입 비용이 얼마나 될지 걱정이었다. 수업을 듣던 당시만 해도 월정액으로 사용하는 구독 서비스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어도비 프로그램은 비싸잖아’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 때는 구독 서비스가 없었던 것 같다) 선생님은 체험판을 설치해서 체험 기간 내에 편집을 마치면 된다고도 알려주었는데, 그것도 왠지 껄끄러웠다. 왠지 체험판을 설치한 뒤 체험 기간이 끝나고 나도 모르게 비용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괜한 걱정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결국 안 하겠다는 마음이었다)
선생님은 ‘인디자인’ 프로그램이 부담스러우면 자신에게 익숙한 프로그램으로도 얼마든지 편집을 할 수 있다고 하셨다. (선생님의 최강 장점은 ‘긍정’이었다) ‘한글’, ‘MS워드’, ‘파워포인트’ 등 본인이 다룰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충분히 책다운 책을 만들 수 있다고 하셨다. 물론 전문가가 만든 것만큼 매끄럽지는 못하겠지만, 크게 티 안 날 정도는 접근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요건 구미가 당겼다. ‘한글’은 자신 있는 편이었고, ‘파워포인트’도 곧잘 하는 편이었다. 선생님이 예로 보여주는 화면들을 보고 있으니 저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글’ 파일로는 소모임 등에서 문집 같은 것도 만들어본 적 있었다.
‘문집’이라는 생각이 들자 멈칫해졌다. 연습 삼아 해본다고는 했어도 어엿한 책의 형태는 띄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숱한 ‘한글’ 작업의 경험을 돌이켜 보았을 때 학교 앞 제본 가게에서 제본한 느낌 이상으로는 만들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인디자인’을 배워볼까 하다가 ‘파워포인트’로 마음을 정했다. (앞선 고민은 의미 없다는 듯 그냥) ‘인디자인’ 편집 화면을 엇비슷하게 ‘파워포인트’에서 실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책 편집하는 것과 비슷한 모양으로 화면 펼쳐놓고, 사진 얹고 글 얹고 하면서 어느 정도 흉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선생님도 ‘파워포인트’가 제법 괜찮을 수 있다고 하셨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파워포인트 프로그램을 열었다. 용지 크기도 설정하고 여백도 정했다. 집에 있는 책들 몇 권 펼쳐 보면서 어느 정도 여백에 글자 크기가 어느 정도 들어가면 괜찮을지 시험해봤다. (선생님이 수업 때 여백과 폰트 크기 등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몇 장 프린트해가며 내 눈에 괜찮은 형태를 정했다. 어차피 내 마음에 드는 책을 만드는 것이니 알아서 정하면 됐다. (상사의 컨펌을 받지 않아도 된다니!) 이렇게 저렇게 만져보니 거의 기성 책과 비슷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파워포인트의 글 상자 특성상 아쉬운 부분이 있긴 했지만 아주 큰 흠은 아니었다. (물론 아쉽긴 했지만) 이미지와 글 더미들을 앉힌 시범 페이지들을 인쇄해보며 조금 뿌듯해졌다. 정말 책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신이 나서는 속도를 확 올리려고 했는데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일단 사진들을 골라야 했다. 그리 많지 않은 사진 중 쓸 만한 사진을 찾는 것이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가뜩이나 써놓은 글이 적어서 사진이라도 많이 넣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괜찮은 사진이 없었다. 얼마 되지도 않는 폴더 안을 몇 번이나 보고 또 보고 했는지 모른다. 이렇게라도 살릴 수 없을까, 요만큼만 잘라서 쓰면 어떨까 하며 같은 사진들을 수도 없이 쳐다봤다. 사실은 기본적으로 ‘내가 찍은 사진’에 대해서 전혀 자신이 없었다. 마음은 늘 감각적으로 찍고 싶은데, 결과물을 보면 늘 토익 시험에 나오는 설명 사진 같았다.
사진과 며칠을 씨름한 뒤에는 다시 글이 문제였다. 어렵게 어렵게 고른 사진들을 여기 저기 배치하며 글도 함께 배치해갔는데, (정확히는 글을 배치한 뒤에 사진을 배치한 것이지만) 글의 분량이 조금 더 길면 좋겠다 싶은 곳도 있었고, 조금 더 짧으면 좋겠다 싶은 곳도 있었다. 파워포인트로는 정교하게 컨트롤하기가 어려웠으므로 기본 분량을 다시 조정하는 것이 더 빨랐다. 그렇게 글의 분량을 조절해가는 중에 마음에 안 드는 부분도 보였다. ‘여긴 아예 다시 쓸까’ 하는 부분들이 툭툭 튀어나오곤 한 것이다.
편집도 하면서 글도 다시 쓰면서 며칠을 더 보냈다. 둘 다 혼자 하니까 미안해할 사람은 없어서 좋았다. 만약 내가 작가였고 편집은 디자이너에게 맡긴 것이었다면, 이런 잦고 자잘한 수정은 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저, 다시 읽어보니 이 부분이 마음에 안 들어서 다시 썼는데, 좀 바꿔주시겠어요?”라는 말을 한 번 이상 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었다. 직장 생활에서 디자이너, 영상 편집자들과 종종 일하곤 했는데, 어떤 이유에서건 수정사항이 발생하면 그렇게 미안했다. (작업한 본인의 실수로 생긴 수정사항은 예외지만) 어쨌거나 혼자 북도 치고 장구도 치면서 신나게 바꿨다. 사진도 이렇게 넣어보았다가 저렇게 넣어보고, 사진 한 개 위치와 크기가 달라지면서 전체적으로 어그러지면 다시 글도 조정하면서 마음껏 바꾸고 바꿨다.
재미있었다. 딱히 취미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는데, 내가 하고 싶어서 내가 원하는 대로 무언가 만들고 있다는 것이 기분을 좋게 해줬다. 아주 오랜만이기도 했다. 시간이 갈수록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인 순간들이 삶을 더 많이 채워가고 있었는데, 아주 오랜만에 ‘오, 이거 신이 좀 나는데’ 하는 순간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거 참 이게 뭐라고) 내친 김에 편집 디자인을 배워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역시나, 또, 이번에도 생각만으로 그치고 말았지만 편집 디자인이라는 것이 내심 나에게 잘 맞는 일이라는 느낌도 들었다.
아내가 책 만든다는 것은 어떻게 되어가냐고 물었을 때 파워포인트로 열심히 작업 중이라고 답했더니 살짝 놀라긴 했다. 그렇게도 만들 수 있냐며, 그냥 인디자인을 배우는 게 안 낫겠냐며 핀잔 아닌 핀잔을 조금 얹긴 했지만 그래도 나쁜 반응은 아니었다. 나중에 결과물을 보고는 이렇게도 제법 괜찮다며 긍정적인 반응도 보여주었으니 충분했다. 나름 뿌듯한 편집 과정을 진행하며 진짜 책으로 만들어질 것을 상상하니 조금씩 더 두근두근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