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여행책 만들기’ 수업이 끝이 났다. 부지런히 이야기를 고르고, 글을 쓰고, 편집을 해 왔지만 마지막 수업 당일에 책을 들고 가지는 못했다. 그래도 거의 마무리 되고 있었다. 실제 책을 손에 쥐어보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인쇄할 곳과 견적이 오간 뒤 진행 일정을 조정하고 있었다.
독립출판 과정에서 인쇄를 맡기는 일은 무언가 다른 단계로 넘어가는 느낌이었다. 고이 품어 온 작고 소중한 녀석이 내 품을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누군가와 특별히 상의할 것도 없이 혼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뒹굴뒹굴 찾아낸 뒤로는, 가이드해주는 사람 없이 혼자 쓰고 싶은 대로 쓰고는, 고치는 것 역시 혼자 마음에 와 닿는 대로 바꿔 쓰곤 했으니 철저히 독립된 작업을 해 온 셈이었다. 편집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진도 내가 보기에 좋아보이는 것을 고르고, 폰트를 비롯한 글과 사진 배치 등도 내 소견에 옳은 대로 앉히고는 ‘이것으로 족하다’ 싶은 순간에 마무리 지었으니 이 역시 더할 수 없이 독립된 작업이었다. 페이지 수도 알아서 조정했고, 종이도 왠지 마음이 끌리는 것으로 골랐다.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한 것이었다.
100~200권은 만들고 싶었다. 부모님과 지인들에게 나눠주는 것 정도로 생각하면 50권만 되어도 넉넉할 것 같았지만, 그래도 그냥 좀 더 만들고 싶었다. 사실, 솔직히, ‘그냥’은 아니었던 것 같다. 팔아보고도 싶었다. 대형서점에서는 안 된다 하더라도 독립서점에서라도 팔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내가 만든 책을 실제로 사는 사람이 생기면 얼마나 신기할까 싶었다. 그래서 인쇄를 맡겨야 했다. 100권이 넘는 분량을 가내수공업으로 프린트해서 제본을 한다는 것은 전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제본하는 방법은 제대로 듣지도 않았고 찾아보지도 않았다.
인쇄할 곳은 예전 직장에서 거래해본 곳으로 정했다. 선생님은 몇 군데에서 견적을 받아보고 해야 한다고 하셨지만 그러지 않았다. (귀찮았다) 사장님이 친절하시고 좋았다. 그렇게 말도 안 되는 견적을 부르시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다. 오랜만에 연락을 드렸다. 돈이 될 만한 일로 전화를 드린 것이 아니어서 왠지 죄송하다는 생각과 함께 수줍게 얘기를 꺼냈다. 여차저차해서 개인 책을 만들어보게 됐는데 인쇄와 제본을 부탁드린다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가운데 용무를 설명했다. 다행히 사장님은 재미있다는 듯 맡아주셨고 필요한 사항들을 물어보셨다.
일단 종이가 그렇게 평범한 종류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되게 특이한 것은 또 아니었다) 보통 인쇄에 사용하는 종이는 아니라면서 꼭 그 종이로 해야 하는 것이냐고 물어보셨다. 살짝 당황하긴 했지만 가능하면 이 종이로 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표지도 크라프트 계열인데 인쇄가 선명하게 안 될 수 있다고 하셨다. 작은 연습장 같은 분위기를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 드렸고, 표지는 그냥 흑백으로 간단히 인쇄할 것이라는 추가 설명도 드렸다. 하지만 내지는 컬러였다. 하고자 하는 것들을 얘기할수록 스스로가 너무너무 아마추어처럼 느껴져서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그래도 사장님은 크게 신경 쓰지 않으시는 것 같았다. ‘하고 싶은 것 있음 다 얘기해보렴’ 하는듯한 자애로운 목소리로 확인해야 할 것들을 하나하나 체크해 가셨다.
원고를 넘길 때는 더 떨렸다. 안 그래도 전달 드리기 전에 어떤 형태로 드려야 하는지 확인하긴 했지만 맞게 작업한 것인지 확신이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예전 직장에서 디자이너가 브로슈어 작업하는 것을 좀 제대로 봐 놓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때는 이렇게 될 줄 몰랐으니까 라며 이내 생각을 접었다. 원고를 확인하신 사장님께서는 제단을 위한 칼선을 내줘야 한다고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그러면서 기왕 만드는 것 좀 더 분량을 늘려서 책다운 형태를 내보는 것이 어떠냐는 조언도 주셨다. 현재 상태는 분량이 적어서 너무 얇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종이가 살짝 두꺼운 재질이어서 간신히 ‘떡제본’ 할 수 있을 만큼은 되겠지만 아쉽긴 하다는 의견이었다. (‘떡제본’은 보통 책을 만들 때 사용하는 제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만약 떡제본이 어려운 분량이면 가운데 호치키스 같은 것을 찍어서 만드는 ‘중철제본’을 해야 했다. 그건 너무 없어 보일 것 같았다. 그래도 떡제본이 된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이었고, 더 분량을 늘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실없이 웃어 넘겼다.
사실 아쉬운 건 분량만이 아니었다. 디자인이라는 것을 할 줄 몰라서 표지를 정말 간단히 제목과 지은이 등의 텍스트로만 구성했는데, 아무리 어떻게 해봐도 책 같지가 않았다. 그냥 딱 대학교 과제를 위한 리포트 같았다. 종이 특성도 그렇고, 스스로의 디자인 능력도 그렇고 흑백의 간단한 버전이 최선이었는데 한계가 너무나 분명했다. 결국은 더 어쩌지 못하고 그 상태로 최종본까지 만들었는데, 책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 됐다. ISBN을 발급 받지 못한 것도 아쉬웠다. 책마다 발급되는 고유번호인데 결국 넣지 못했다. 1인 출판사로 등록을 하고 번호를 받던지, 기존 출판사에서 받던지 해야 하는데 이 과정이 번거롭게 느껴졌다. (귀찮았다, 또) 대형서점에 납품하려면 반드시 있어야 하고, 독립서점 납품에는 필수 사항이 아니라고 했다. (이렇게 기억하고 있는데, 정확한 내용이 아닐 수도 있다) 욕심이 나긴 했지만 결국 ISBN은 포기하고 책을 만들기로 했다.
한 두 번의 견적과 원고가 오가고, 일정이 공유된 뒤 구색을 맞춰 감리라는 것도 했다. 인쇄소에 직접 찾아가 원고가 원하는 색상 등으로 제대로 인쇄되는지 확인하는 과정인데, 그저 들뜬 마음에 감리를 간다고 한 것이었다. 보는 눈이 거의 없어서 인쇄된 샘플을 보여준다 한들 얘기할 수 있는 것이 없었는데, 진짜 내 책이 인쇄된다는 사실을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일 뿐이었다. 커다란 인쇄기 앞에 있는 모니터에 내 원고가 띄워져 있었고, 기사님께서 뭔가를 맞추신 뒤에 샘플이 눈앞에 쥐어졌다. 어떠냐는 질문에 그저 좋다고만 했다. 내 눈에는 그냥 다 좋았다. 잘못 인쇄되거나 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 감사하고 신기할 뿐이었다. 그 와중에도 기사님께서 왜 이런 종이에 인쇄를 하는지 모르겠다며 한 마디 하시긴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오히려 기사님의 얘기에 사장님께서 여행 감성을 내려고 하는 것이라며 대신 설명해주셔서 살짝 감동하기도 했다.
‘와- 와-’ 하는 순간에 확인 과정이 다 끝났고, 본격적으로 인쇄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제 집에 돌아가 제본까지 마친 책을 받기만 하면 되었다. 사장님은 잘 나올 거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았지만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웅장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기계의 사진과 영상을 찍고는 인쇄소를 나섰다. ‘와- 진짜 했어. 몇 페이지 안 되긴 하지만 진짜 책이라는 걸 만들었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스스로도 의아하고 뿌듯해서 연신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며 버스를 탔다. 며칠이 지나면 내 이름이 찍힌, 내가 만든 책이 도착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350권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