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싶어 미리 얘기하자면, 혼자 만들고 지인들에게 알린 얘기입니다)
드디어 책이 완성됐다. 집으로 박스 3개가 도착했다. 낑낑거리며 집 한쪽으로 옮기고는 테이프를 뜯었다. 다른 사람이 봤으면 무슨 연습장을 이렇게나 많이 샀나 했겠지만, 이건 엄연히 책이었다. 한 달 넘도록 나름 애썼던. 아쉬운 것 투성이었지만, 좋았다. 무엇보다도 매듭을 지었다는 것이 좋았다. 빈약한 내용, 그저 그런 문장, 아마추어 이하의 사진, 어설픈 편집, 백수에게는 과한 비용 등 중도포기를 정당화할 이유들이 끊임없이 말을 걸었지만 설득 당하지 않았다. 물론 귀 기울이며 완성도를 높였어야 하는 부분마저 못 들은 척 한 것까지 당당하지는 못했지만.
글과 사진을 비롯해 펴낸이, 디자인, 마케팅까지 모두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냥 웃겼다. 뭐라고 이렇게 이름을 다 적어놓았는지. 뒷표지에는 가격도 있었다. 50페이지짜리 책에 6,500원을 매겨 놓았다. 책 가격이 어느 정도 되어야 하는지도 수업에서 들었던 것을 기반으로 책정했던 것 같은데, 다시 생각해보니 책 완성도에 비해 좀 뻔뻔했던 것 같다. 사실 처음부터 할인할 생각으로 책정한 금액이라 다 받으려고 한 건 아니었다. 그래도 가격이 적혀 있는 것이 좀 다르긴 했다. 값어치가 있어보였다. (사람들도 받을 때 “어? 가격도 있네? 공짜가 아니구나” 하는 식의 인식을 하는 계기가 됐다)
내 이름이 적히는 항목 중 ‘마케팅’도 있다는 것이 다시 눈에 띄었다. 책 만들기 수업에서 예상치 못했던 내용이 마케팅이었다. 책을 만들고 나서 혼자만 소장할 것이 아니라면 알려야 한다고 했다. (이 당연한 사실을 간과하기 쉽다) 판매를 하고 싶다면 서점에도 연락을 해봐야 하고, 지인들에게 나누고 싶다 하더라도 최소한의 연락은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독립출판이라는 것은 책을 만드는 것부터 실물을 확산시키는 것까지의 과정을 다 생각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이 작업과 더불어 혼자 하고 싶은 만큼 하는 것이라는 성격도 접목해보면, 결국 마케팅이라는 것도 자신이 범주를 결정하면 될 일이긴 했다. 지인들에게 알리기 위해 SNS에 책 이야기를 올리는 것도 마케팅이었다.
인쇄소에 갔던 날 페이스북에 책 만든다고 한껏 자랑을 올렸다. (그때만 해도 지인들이 인스타그램 못지않게 사용했다) 그리고 다음날에는 책 소개와 함께 주문을 받았다. ‘혹시나 보고싶다 하시는 분들은 댓글 달아주세요’, ‘지인들과 나누는 것이니 책값은 안주셔도 되지만, 굳이 주신다면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어느 기한까지 신청 받은 뒤 언제부터 발송할게요’ 등의 이야기였다. 아내는 진짜 돈을 받을 거냐며 핀잔을 줬지만, 진심으로 사양할 생각은 없었다. 나도 지인이 만든 것에 대해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충분히 있었고, 또 그렇게 갖게 된 사람이 더 소중하게 봐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거나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책 주문 받아요!’를 올렸고, 본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어쩌나 내심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감사하게도, ‘좋아요’만 누르고 신청은 하지 않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렇게 살고 있었냐며 신기해하는 사람부터 해맑은 마음으로 책이 궁금하다는 사람까지 꽤 많은 사람들이 댓글을 달며 책을 신청해주었다. 잘 연락 못하고 지냈던 사람들이 신청해주는 것도 신기했다. ‘오, 이 사람이?’ 반가우면서도 고마운 마음들이 몽글몽글 피어났다. 처음 책 만들겠다고 수업 듣기 시작할 때와 비슷한, 뭔가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는 그런 느낌이었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보면서 빠져들곤 했던 감성에 젖어드는 것 같기도 했다. 약간의 판타지 같은 느낌도 들었다. ‘세상에 이렇게 착한 사람들이 많다니!’ 사람들이 반겨주는 것이 참 감사했다.
서른 명 가까운 사람들이 책을 신청해주었다. 그 중 일곱 명은 책값도 보내주었다. 심지어 배송비라며 책값보다도 더 준 사람도 있었다. (정말 이렇게 선한 사람들이라니) 신이 났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소 확인을 위해 연락하는 것도 전혀 귀찮지 않았고, 엑셀을 열어 배송목록을 정리할 때에도 콧노래가 났고, 서류 봉투를 사다가 한 권 한 권 포장하는 것조차도 재미 있었다. 회사 다니던 시절에 이벤트 당첨자들 정리하고 상품 보낼 때와는 전혀 달랐다. (그 일도 다른 일에 비해서는 괜찮은 편이었지만) 신청한 사람 중에는 캐나다에 사는 사람도 있었기에 배송비가 몇 만원씩이나 들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냥 계속 신이 났다.
없던 약속도 잡았다. 오랜만에 만나자고 하기에도 책이 좋은 핑계가 되었다. 별 거 아니라고 하면서도 어떻게 작업했는지 시시콜콜 떠들고 있었다. 특히 파워포인트로 혼자 편집했다는 대목에서 한 번씩 놀라주고들 했는데, 그 반응이 재미있어서 더 떠들었다. 책값 대신이라며 밥이나 커피를 사주는 사람도 있었고, 한 귀인께서는 열권이나 정가를 주고 사주셨다. 나도 모르게 90도가 넘도록 인사를 드리고는 오천 원은 깎아드렸다. 흡사 불우이웃 돕기 같은 것이었다 하더라도 감사했다. 그저 내 책을 보아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이렇게 마음 쓰고 있다는 것을 표현해주는 것이 넘치도록 감사했다.
부모님도 좋아하셨다. 당신들과의 여행 이야기를 책으로까지 만들어서 전해주었다는 사실이 좋으신 것 같았다. (글이 있는 사진첩 같은 것이라고 해야 하나) 수고했다며 책값도 두둑이 챙겨주셨는데, 사실 이것만은 받고 싶지 않았다. 나이 들어 백수 짓 하며 지 재밌는 것이라고 만든 건데 용돈까지 받는 건 너무 철이 없다 싶었다. 그래도 계속 거절할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었는데, 그 순간만큼은 마음이 좀 그랬다. 내내 유쾌하게 흘러가던 코미디 영화에서 갑자기 눈물 자아내는 오래 된 한국영화 같았다.
실컷 나눠주고도 두 박스 넘게 책이 남았다. 인쇄하고 제본해주신 사장님이 마음 좋게 주문한 수량보다도 넉넉하게 더 제작해주셔서 전혀 줄어드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300권을 주문했는데 350권 정도를 받게 됐고, 지인들에게 최선을 다 해 나눠준 수량이 60권 정도였다. 아내는 생각보다 많이 나눠줬다고 하면서도 남은 박스를 보며 한숨을 감추지는 못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어느날 베란다에 있던 박스가 젖으면서 수십 권을 버리게 되긴 했지만, 그래도 남은 책이 훨씬 더 많았다. (대체 왜 젖은 걸까, 정말 우연인 걸까)
이 책의 마케터로서 판로를 개척해야 했다. (이래서 지인 상대로는 보험이건 방문판매건 한계가 있는 건가 보다) 수업 내용을 다시 찾아보며 서점에 어떻게 팔 수 있는지 알아보았다. 물론 일반 서점들은 꿈도 꾸지 않았다. 전국에 제법 많이 생겼다는 독립서점들에 몇 권씩이라도 보낼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재미있는 일을 여기서 끝낼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