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권 중 60권을 해결한 뒤 남은 290권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워졌다. ‘흠, 이걸 다 어떻게 해야 되지?’ 어디 장터에라도 내다 팔고 싶었다. (장터가 있어야 말이지) 그러다가 독립서점이라는 곳에 책을 납품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ISBN도 없고 책도 너무 남루해서 부끄럽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만든 책을 처분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
보통 이메일을 보낸다고 했다. 인터넷으로 어떤 성격의 책을 파는 곳인지 먼저 알아본 뒤 적합한 곳들에 이메일을 보내는 식이었다. ‘저, 이런 책 만들었는데요, 그곳에서 제 책도 판매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 때, 가령 문학 서적만 판매하는 곳에 여행 에세이를 들이밀 수는 없으니, 사전에 어떤 성격의 서점인지 알아보는 것이 기본적인 할 일이었다.
에세이, 여행기 등을 판매하는 곳이면 더할 나위 없었다. 잘 못하는 일 중 하나인 ‘정보 찾기’를 떠듬떠듬 시작했다. 검색 엔진에 관련 키워드로 찾아보는 일상적인 일이, 이상하게 남들보다 결과가 좋지 못했다. 특색 있는 정보는 고사하고 기본적인 것도 꼼꼼하게 다 건져내지를 못했다. 회사 생활 하는 내내 이 업무가 가장 스트레스였다. 아이디어가 뛰어난 것도 아니면서 정보도 잘 못 찾는다는 생각. 언제나 따라다니는 스트레스였으니 이번에도 찾아온 것이었겠지만, 이번에는 좀 멀어지면 좋겠다 싶었다. 이건 나 좋아서 하는 일이니 좀 더 마음 편하게 알아보기로 했다.
마침 페이스북에 댓글을 달아준 지인이 자신의 친구가 독립서점을 운영하고 있다고 소개해주었다. 갑자기 귀인이 나타나 길을 열어주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많이 만나 뵈었던 분도 아니었는데, 이렇게 도움을 주신다고 하니 감동이었다. (세상은 선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따로 그 독립서점 친구의 연락처를 받은 뒤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한두 번 더 한 뒤에도 연결이 안 되어 문자도 남겼던 것 같다. 며칠 뒤 연락처를 알려주었던 지인이 그 친구가 외국에 있었다며 오히려 미안해 하셨다. “아니에요, 제가 귀찮게 해드린 것 같아 죄송해요”라고 말씀 드리고, 어렵사리 그 독립서점 주인과 연락이 닿았다. 그는 간단히 상황을 들은 뒤 책에 대한 정보를 메일로 보내달라고 했다.
안 그래도 책을 소개할 수 있는 자료를 만들고 있었다. 메일을 보낼 때 그냥 ‘이런 책이에요’라고만 쓰기에는 좀 없어 보인다 싶었다. 책 만들기 선생님도 자신의 책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소개 자료가 필요하다고 하셨던 것 같았다. 어떻게 자료를 만들어야 할지는 몰랐다. 샘플도 없었다. 탐색에 둔한 나는 역시나 인터넷에서 아무런 관련 자료를 찾지 못했다. 그냥 만들었다. 내 소견에 옳은 대로. 파워포인트를 열고는 제목 쓰고, 책에 대한 정보들(내용, 페이지 수, 종이 재질, 가격 등등) 몇 가지를 적었다. 책의 표지와 내지도 몇 장 찍어 자료에 앉혔다. 길면 보기 귀찮아할 거라는 생각에 짧게 만들었다. 제목 페이지를 포함해도 너댓 페이지 정도였다.
책 소개 자료를 왜 그렇게 안 찾아봤나 모르겠다.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선생님에게 물어보기라도 하지, 뭐 잘 났다고 그렇게 혼자 대충 만들었는지. 아무 곳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소개 받았던 곳을 더불어 인터넷에서 찾아본 몇몇 곳들에 이메일을 보낸 뒤로 한 주가 넘도록 아무 연락이 오지 않았다. 대여섯 곳 정도에 보냈던 것 같은데, 그걸로 끝이었다. 통화도 한 번 했던 그 지인의 친구 역시 그 뒤로 연락해보지 못했다. 이메일로 소개 자료를 보낸 뒤로 아무런 회신이 없어지면서 자신감도 없어졌다. 왠지 더 연락을 할 수가 없었다. 아는 사람 소개라고 말도 안 되는 책을 가지고 귀찮게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그럴만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한 주 두 주가 지나면서 답답하긴 했다. 내 책에 관심이 없는 것은 좋으니 답 메일이라도 받아봤으면 좋겠다 싶었다.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대답이라도 듣고 싶었다. 수신 확인도 살펴보았는데, 메일을 열어본 곳도 있었고 아닌 곳도 있었다. 전화라도 해서 물어볼까 싶다가도 통화버튼이 눌러지지가 않았다. 이게 뭐라고 바쁜 사람들에게 전화까지 해가며 괴롭히냐 싶었다. 정말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지인들에게까지는 뻔뻔하게 책값 얘기도 해가며 들이밀 수 있었어도 그 이상은 할 수 없었다. 스스로도 ‘이런 책은 이 정도’인 것이라고 한계를 분명하게 긋고 있었던 것 같다.
유명 작가들의 사례들을 떠올리며 수십, 수백 곳에 던져봐야 한다는 생각도 했다. 고작 몇 군데에 메일 보내본 것이 다이면서 된다 안 된다 논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더 시도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뭐가 잘못된 것인지도 알고 싶었다. 이렇게 무작정 메일을 보내는 것이 잘못 되었는지, 메일 내용이나 소개 자료를 잘못 만든 것인지, 내가 알지 못하는 루트나 방법이 있는 것인지 알고 싶었다. 석유가 한 방울도 없는 곳을 무작정 기대하며 파는 짓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었다.
책 만들기 선생님은 우리 수업을 끝내고 몇 달간의 긴 여행을 떠났다. 선생님 말고는 물어볼 곳이 없었다. 앞서 언급했듯 인터넷으로 정보 찾는 짓은 지독히도 못하는 편이었다. (아마 덜 간절했나보다. 결국 아무것도 찾지 못한 것 보면) 그렇게 어영부영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감 비슷한 것도 모두 사라졌다. 그냥 이런 책은 원래 가까운 지인들과 나누고 마는 것이라는 결론으로 치달았다. 이런 책은 결코 누군가에게 돈 받고 팔 만한 것이 못 된다는 생각을 강력하게 성립시켰다. 그러면 안 되는 거라고, 큰 잘못 하는 거라고.
안타깝게도 아무런 반전 없이 이렇게 끝나버렸다. 다른 곳에 더 메일을 보내본다거나 직접 찾아가 본다거나 하는 희망찬 이야기 없이 조용히 접어버렸다. 처음 메일을 보냈던 곳들 역시 마치 아무런 것도 보내지 않았던 것처럼 잠잠히 지나갔다. 두 박스가 좀 넘는 분량의 책들은 고스란히 집 베란다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어느날 무슨 일인지 모르게 책 박스가 젖어 상당수를 버리게 될 수밖에 없을 때까지 고스란히 그대로.
책 소개 자료는 그 뒤로 딱 한 번 더 사용했다. 그 덕에 ‘글쓰기’라는 이 가느다란 이어짐이 지속될 수 있기는 했으니 아무짝에 쓸모없는 것은 아니었다고,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스스로에게 위안을 주기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