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여행책 만들기가 끝이 났다. 수업도 끝났고, 제작도 끝났고, 나눔도 끝났다. 250권이 훌쩍 넘는 책이 남았지만, 60여권을 나눠줄 수 있었고, 몇 차례의 만남도 있었다. 제작비는 100만 원 정도 들었고, 배송비도 몇 만 원 추가되었는데, 긍휼한 마음을 품어준 지인들 덕에 10~20만 원 수익이 생기기도 했다. 50페이지짜리 책 300권 제작에 100만 원 정도 들었다고 하면, 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비싸다고 얘기하긴 하는데, 종이가 살짝 비싼 것이었기에 그랬고 서비스로 50여 권이나 더 받았기에 아무런 불만은 없다고 덧붙여 설명하곤 했다. 실제로 비용에 대해서는 전혀 아쉽지 않았다. 해보고 싶었던 경험을 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비용 외의 것은 모두 아쉬웠다.
우선 이야기를 좀 더 풍성하게 엮어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3박4일의 짧은 여행이었고, 거의 패키지 여행과도 다를 바 없는 뻔한 루트였지만, 그래도 1,500자씩 6꼭지의 분량은 너무 적었다. 처음으로 부모님과 함께한 셋 만의 여행이었는데,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마음들을 비롯해 조금 더 깊이 있는 생각들을 담아냈으면 좋았겠다 싶었다. 어차피 정보적인 측면이나 사진 등의 시각적인 측면에서 차별성이 있는 책이 아니었으니 이야기를 더 구상하고 다듬었다면 훨씬 가치 있었겠다 싶었다.
내지 편집은 그럭저럭 봐줄만 했지만, 표지 디자인은 가장 아쉬운 부분이었다. 이것 때문에 책이 책처럼 보이지 않게 됐다. 크라프트지에 흑백 텍스트로만 배열한 표지는 영락없는 아마추어의 문집이었다. (이것 때문에 독립서점에서도 관심 없었던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최근 책 만들기 강좌 선생님이 시작한 유튜브 채널에서도 ‘표지 디자인 방법’을 따로 가르쳐 줄 정도로 표지는 중요한 문제였다. 나 역시도 기왕이면 예쁜 책을 사면서도 왜 작업 당시에는 그렇게 가벼이 여겼는지 모르겠다. (세상 모든 걸 귀찮아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책을 받아본 지인들도 겉을 보고는 집에서 혼자 만들었나 싶었는데, 안을 보니 그래도 파는 책 같았다며 칭찬인지 아닌지 모를 후기들을 전해주곤 했다.
끝내 독립서점 한 곳에도 전해보지 못했다는 것 또한 큰 아쉬움이었다. 지인들에게는 나눌 만큼 나누었기에 ‘이 사람에게는 못 줬네’ 하는 아쉬움은 없는데, 지인들 선에서만 끝이 났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서점에서 내가 쓴 책이 팔리는 것이 로망이었는데. 그것까지는 해보지 못하고 끝난 것이었다. 나와 아무런 연관도 없는 사람이 내가 쓴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되고, 심지어 거기서 그치지 않고 돈까지 내면서 소장을 하려 한다면 얼마나 짜릿할까 싶었는데. 그건 그냥 상상으로 남겨놓아야 했다. 사실 스스로도 내 책에 자신이 없어서 더 밀어붙이지 못했던 것 같다. 서점들에 직접 찾아가 물어보면서 방법을 찾고 더 많이 시도했다면, 적어도 서점까지는 (독자까지는 아니어도) 책이 가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자신이 없었다. 표지도 구렸고, 너무 얇았고, 특색도 없었고, 가격도 비쌌고... 나 자신을 작게 만들 요소들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만든 것이 좋았다.
책을 받아본 이들이 자신의 SNS나 개인적인 메시지로 좋았다는 후기를 남겨주었는데, 하나하나가 너무 행복했다. (책을 본 뒤에 솔직한 후기를 들려달라고 요청했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자신의 SNS에 올려주는 사람도 있었다) 이야기가 너무 짧은 것이나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 걱정이었는데, 오히려 짧아서 부담 없이 한 호흡에 읽었다는 사람도 있었고, 부모님과 함께 한 시간들이 공감된다며 좋아해준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마지막에는 살짝 눈물이 맺혔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은 본인의 상황이 특별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카메라 감독 친구가 생각보다 사진이 괜찮았다고 말해주어서 신이 나기도 했었다. (글은 생각보다 별로라고 해서 다시 다운됐지만) 어찌 되었건 ‘잘 보았다’라는 한 마디가 모든 아쉬움들을 내려놓게 해 주었다.
책 덕분에 연락도 많이 했고, 오랜만에 얼굴 보게 된 사람들도 있었다. 페이스북에 올린 책 홍보 이야기에 연락해준 이도 있었고, 내가 일부러 연락해서 책 주고 싶다는 핑계로 만나게 되는 사람도 있었다. 모두 반가워해주었고, 나도 너무 반가웠다. ‘밥 한 번 먹자’고 해놓고도 딱히 시간 내기가 여의치 않았던 상황들이 꺼리가 하나 생긴 덕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달라질 수 있었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보고 싶었던 사람들 얼굴 보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었다. 결국 만나서는 책 이야기보다는 그동안 밀렸던 사는 이야기들 하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그렇게 되리라는 것은 그도 알고 나도 아는 사실이었으니까. 나눠주었던 60여 권의 책이 그만큼의 대화가 되어 돌아온 것이 무엇보다도 좋았다.
부모님도 좋아하셨다. 그래서 언제 서점에서도 볼 수 있냐며 저기 앞서 나간 얘기들을 하셔서 좀 당황하긴 했지만, 헛된 꿈은 꾸지 않으시도록 차근차근 설명을 드린 뒤 ‘기록이 있는 사진첩’ 정도로 인식하시도록 했다. 그래도 좋다고 하셨다. 자식과 같이 여행 갔다 온 것도 좋았는데, 그 여행을 잊지 않도록 해준 것도 좋다고 하셨다. 며칠 뒤 책을 읽으신 뒤에도 잘 읽었다고 연락해주셨고, 그런 대화들 하나하나가 따뜻했다. 부모님과 소중한 시간들을 쌓은 것 같아서 감사했다.
한 가지가 남아있었다.
모든 과정들이 마무리되고 남은 책들도 한쪽 구석에 조용히 쌓아두었다. 지인들과 이야기도 오갈만큼 오갔고 더 이상 우려먹을 것도 없었다. 그렇게 잠잠해가던 시기는 백수생활이 반 년 넘게 이어지던 때였고, 더 이상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놀고먹을 수는 없는 시점이었다. 아내도 인내심이 바닥이 나던 때였기에 이제는 어디라도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그래서 왠지 이렇게 개인 책을 만드는 것은 이번으로 끝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직장생활 1년 마다 한 번씩 만들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하긴 했지만, 왠지 스스로가 자신이 없었다. 직장을 다니며 과외의 시간을 내지는 않을 것만 같았다. 글 쓰는 것도 재미있었고, 편집도 재미있었지만 이제는 놓아주어야 할 때가 된 것 같았다.
문득 책 만들기 수업을 처음 찾게 되었을 때가 떠올랐다. 당시의 난 독립출판을 알아보기 전에 브런치 작가 신청을 고민하고 있었다. 1년여 전에 떨어졌던 브런치 작가에 다시 도전하냐 마냐 고민하다가 생각지 못하게 방향이 틀어진 것이었다. 그 때 상황이 떠오르고는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브런치 작가는 한 번 더 신청해, 말아?’ 책도 한 권 내봤는데 못할 것 뭐 있냐는 생각이 들었고, 만든 여행책 글들을 기반으로 다시 한 번 신청 메일을 보냈다. 또 떨어지면 다시는 안쳐다보겠다는 각오가 무색하게 며칠 뒤 브런치 작가로 등록이 되었다. 한 지인은 ‘브런치가 시간이 지나면서 요즘은 작가 등록을 쉽게 해주더라’며 근거 없는 소문으로 놀려대는 통에 김이 좀 빠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쨌거나 되긴 된 거였다. ‘오호- 이렇게 브런치를 쓰게 된다고?’
예상치 못하게 계속 글을 쓸 핑계가 이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