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만들어봤는데.. 그래서 다음은?

by 별연못

50페이지짜리 책을 만들고, 브런치 작가 신청이 통과가 된 뒤에는 - 취직을 해야 했다. 8개월 정도 지속중인 백수생활을 더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재정도 재정이었지만, 아내가 너무 힘들었다. 남편이라는 작자가 뚜렷한 방향도 없이 집에서 빈둥대는 것을 아무 말 않고 감내해야 한다는 것은 세상 부당한 벌칙이었다. 무언가를 준비하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 숨겨놓은 확실한 카드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그저 시간만 축내는 배우자는 상대에게 정말 몹쓸 고통을 뿌리부터 차곡차곡 심어주는 꼴이다. (이건 진짜 아닌 것 같다)


독립출판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쓰는 일이었다. 내 책을 내 돈 주고 만드는 일이었다. 그래서 아무 얘기나 아무 디자인에 앉혀 만들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만든다는 얘기는 아니다) 소소한 아르바이트로 받았던 돈은 고스란히 책 300여 권 제작하는데 들어갔다. 그렇다는 것은 먹고 생활하는데 사용할 돈이 없다는 얘기인데, 이건 통장에 남아있던 알량한 잔액을 야금야금 갉아먹으며 해결했다. 아내가 불안한 것은 당연했다. 남들 다 갖고 있는 은행대출 역시 예외 없이 보유하고 있으면서 해결할 방안 하나 없이 집에 앉아 책 같지도 않은 것 만든다고만 하고 있으니 얼마나 속이 답답했을까. 1,000피스 퍼즐 맞추기, 10만원 짜리 레고 조립하기와 다를 바 없는 일이었다.


어쩌면 이런 상황 덕에 ‘글쓰기’는 기본적으로 죄책감이 담겨있는 행태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핑계다) 아니면 회사 다니기 싫은 철없는 이의 도피처 같은 이미지가 형성되었는지도 모른다. (우리 가정에 한정해서 만든 가정이다) 하여간 “나, 글을 좀 더 쓸게”라고 얘기하기는 어려웠다. 스스로도 글을 통한 비전이 생기지는 않았다. 이만큼 아내가 인내하며 받아준 것만으로 충분히 고마웠다. 이제는 ‘정신을 차리고’ 따박따박 들어오는 급여를 받을 수 있는 곳으로 나가야 할 때였다.




운 좋게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출근하게 됐지만, 몇 달 못 다니고 먼 곳으로 옮기게 됐다. (복잡한 얘기는 생략) 오랜만에 출근하면서 역시나 글은 뒷전이 됐다. 그래도 얼마 전에 브런치 작가가 된 터였는데, 아무것도 올리지 않는 것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들었던 여행책 이야기를 조금씩 나누어서 올렸다. 최대한 오래 올릴 수 있도록 1꼭지를 반씩 쪼개었고, 되도록 1주일에 1개만 올렸다. 3달 가까이를 이것만 가지고 연명했다.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자괴감도 들고) 이 기존 이야기를 올리는 동안 1주일에 1편씩 다른 이야기도 쓰려는 것이 애초 생각이긴 했다. 하지만 왠지 아무런 것도 써지지 않았고, 간신히 여행책 글 나눠서 하나씩 올리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여행책 이야기는 이미 지인들에게 알릴만큼 알린 것이었기에 아무런 푸쉬 없이 조용히 쌓아갔다. 이제 막 개설한 브런치에 아무런 알림도 없이 쌓아가는 글은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당연한 이치였고, 이 자연의 순리에 맞춰 게으른 업로드는 거의 아무런 공감도 받지 못한 채 잠잠히 막을 내렸다.


그래도 한 번씩 들어가는 브런치에서 ‘무비패스’라는 것을 보게 되었다. 마치 영화기자처럼 시사회에 초대되어 영화 보고 글 쓰는 것이었는데, 당연히 해보고 싶었다. 해보고 싶은 마음에 비해 준비는 미비했다. 영화 관련 글을 발행해야 했는데, 예전 글을 다시 사용했다. 1년 전 브런치 작가 신청할 때 냈다가 떨어진 그 영화 글을 재탕해서 발행하고는 무비패스에 신청한 것이다. 한 번 안 된다고 했던 글을 다시 낼 때의 생각은 도대체 뭘까. ‘이번에는 다르게 봐주지 않을까?’라는 지극히 사적인 여념을 담은 미련함? 여튼 당연히 선택 받지 못했다. 그렇게 또 한 번 조용히 없던 일이 되었다.




독립출판으로 작은 책을 만들어봤다고 해서 뭔가가 달라지지는 않았다. 책이 팔리고 사람들에게 ‘작가’라고 스스로를 소개해도 떳떳한 상황이 되는 것 같은 거창한 상상은 내려놓고라도, 생활 패턴 자체에도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이런 책을 내봤으니 다른 책을 내보자던가, 이번 책은 이런 것들이 부족했으니 저런 것들을 보완해서 한 번 더 만들어보자던가 하는 식의 후속조치가 전혀 없었다. 분명 스스로에게 ‘이번 처음 책은 시험 삼아 만드는 거야. 이를 바탕으로 더 좋은 책을 만들어보는 거야’라고 했던 것 같으나, ‘그런 다짐을 한 적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글을 꾸준히 쓰지도 않았다. 분명 재미있었는데, 그 이후로는 더 이상 쓰지를 않았다. 오죽하면 ‘무비패스 당첨 되서 영화글 쓰고 싶어!’라고 생각하면서도 새로운 고민 없이 예전 글들을 또 그대로 가져왔을까. 부모님과의 여행 이야기 다음에는 아내와 다녀온 시리즈들, 처가 식구들과 놀러갔던 이야기, 결혼하고 유일하게 친구와 둘이서 떠날 수 있었던 여행 등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들이 많았으나 단 한 페이지도 쓰지 않았다. 어느 순간에는 ‘이제 좀 써봐야지’ 하다가도, 또 어느 순간에는 ‘굳이 그런 걸 써서 뭐하나’ 싶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삶 속에서 글이 우선순위에 있지 않았다. 글은 언제나 ‘시간이 나면 시도해볼만 한 일’이었다. 당장 어디에 취직하느냐가 관건이었고, 취직한 뒤에는 회사 업무들을 처리하는 것이 늘 벅찼다. 회사가 헐렁하면 헐렁한대로 시간이 나서 좋다기보다는 이 회사를 계속 다녀도 될지 고민하느라 여유가 없었고, 회사가 촘촘하다 싶으면 주어지는 업무들을 시간 내에 평균 이상으로 마무리 짓기에 급급했다. 그런 가운데 여행 이야기를 쓰고, 영화 감상평을 늘어놓고, 일상 속 단상들을 꺼내놓는 것은 다 부질없는 짓 같아 보였다. 아무리 야근을 해도 늘어날 리 없는 고정된 월급이 야속한 상황에서, 아무런 금전적 보상도 없는 일기들을 풀어가는 것은 그저 피곤함을 가중시키는 일일 뿐이었다. 마음을 안정시켜줄 예능과 영화로 정신을 분산시키는 것이 오히려 훨씬 이득 같았다.


‘글쓰기’가 삶 속에서 자리 잡는 것은 참 요원한 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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