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편을 썼다. 처음 댓글이 달렸다.

by 별연못

‘글을 써야지’, ‘글을 좀 쓰는 게 좋지 않을까?’, ‘그래도 장점이라고 할 만한 걸 만들어 보는 게 어때?’ 등등 수많은 생각들을 한다고 해서 실제로 글을 쓰는 것은 아니었다. 그건 그저 광고 문구들 같은 것이었다. 이래서 좋다고, 저래서 좋다고 아무리 떠든다 한들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가는 문구들. 필요한 상황이 만들어져야 비로소 효력을 발휘하는 광고 문구처럼 머릿속 생각들도 불씨가 당겨질 만한 상황이 형성되어야 간신히 한 번의 실제가 될 수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이전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시간이었지만, 그때의 난 꽤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한다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오랜만에 들어간 회사에서 주변 밥집들도 다 파악하기 전에 다른 회사로 옮길 기회가 생긴 것이었다. 인원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퍼포먼스는 꽤 규모가 있어보였다. ‘대행사’라는 영역 안에 있었지만 기존에 접해보지 못한 콘텐츠였고, 깊이 들어가면 나름대로 하나의 영역을 영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지하게 업무 강도가 높을 것 같았지만, 새롭고 괜찮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인 것 같았다. 세상 귀찮은 것을 싫어하면서도 이상하게, 정말 이상하게도 당시에는 안주하는 길 말고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하자는 비장한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그 때의 각오는 거짓이었냐며 아내에게 한 소리 넘게 들어야 했다)


어렵사리 이직이 결정되고 난 뒤에는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이전까지의 시간을 잘 정리해보고 싶었다. 정리하겠다고 달려들어봤자 딱히 뭐가 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갈피를 못 잡고 살아가는 나 같은 직장인이 일반적인 것 아니겠냐며,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하고 있는 지난 10여년을 떠올리며 생각나는 것들을 적어보기로 했다. 잠잠히 묵혀둘 뻔한 브런치에 나름 글을 연재해보기로 한 것이다. 목차를 미리 만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10편은 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매거진’이라는 있어 보이는 형태를 차용한다고 생각하니 왠지 설레는 마음도 들었다. 그렇게 잡지를 만들어보고 싶다더니 이렇게라도 해보게 되는구나, 라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처음으로 퇴근한 저녁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사실 몇 번 되지는 않는다) 왠지 새로운 직장에 출근하기 전에 마무리 짓고 싶어서 서둘러서 글을 썼다. 직장 다니면서 주변 사람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몇 가지 떠올렸다. 대표 중에 성격 급하지 않은 사람 없다느니, 꼭 결재 받으려는 것 말고 다른 걸 물어본다느니, 이생에 천국 같은 직장은 만날 수 없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을 하나씩 풀어갔다.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더 많았다. 남들보다 느리게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과 인생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들이 주를 이루었다. (내 인생은 이 문제가 해결될 때 비로소 답답함이 사라질 것 같다) 분량은 얼마 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익숙한 A4 1페이지에 맞춰서 한 꼭지씩 풀어갔다.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아무 사진도 없이 글만 올린다는 것이 어색했다. 한 두 문단이 지난 다음에는 이미지가 있어야만 할 것 같았다. 제목이 있는 공간에도 어울리는 이미지가 필요해보였다. 사람들이 쉽게 스크롤을 내릴 수 있도록 만들어야만 할 것 같았다. 글만 빽빽해서는 누가 볼까 싶었다. 그런데 마땅한 이미지가 없었다. 이야기들과 어울리는 회사 사진들을 찍어놓은 것은 당연히 없었다. (이런 것들을 쓰게 될 줄 몰랐으니까. 사실 알았어도 안 찍었을 것 같지만) 게티이미지 같은 곳에 있는 이미지들도 쓰기 싫었는데, 외국인들이 세상 걱정 없이 웃고 있는 이미지들이 영 어울릴 것 같지 않았다. 결국 글만 올리기로 했다. 대체 그게 무슨 대수냐 싶을 수 있겠지만, 당시 나에게는 굉장히 어색한 일이었다. ‘어떻게 블로그 같은데 글을 올리는데 이미지가 없을 수 있어?’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보다는 없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이야기에만 집중해달라는 의도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글을 올릴 때마다 페이스북에도 공유했다. 이번에도 선한 이들이 ‘잘 읽고 있다’, ‘구독했다’ 등의 댓글을 달아주었다. 사실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모르는 이들이 더 많았기에 글을 보도록 하는데까지 허들이 좀 있긴 했다. 그래도 알아서들 가입도 하고 글도 읽어주었다. (이제는 페이스북에 공유해도 예전만큼 보는 사람들이 없던데.. 페이스북 탓인가?) 첫 번째 글을 올렸을 때 한 후배가 좋은 글 읽었다며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겠다는 이야기를 남겨주었을 때 살짝 뭉클했다. 한 편으로는 그 후배에 대한 개인적인 마음이었고, 한 편으로는 내 글이 뭔가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주었다는 것 때문이기도 했다.


지인들의 응원에 신이 나서 부지런히 써 나갔다. 이전 직장의 대표님과 이사님은 ‘이거 우리 얘기냐’며 수근거렸다고 하셨지만, 그래도 맥아리 없는 아이가 뭐라도 한다며 좋게 봐주셨다. 심지어 정통 카피라이터 출신 대표님께서 ‘제목들을 잘 썼더라’며 칭찬해주셔서 은근 신이 났다. (본문 글까지는 칭찬하지 못하셨다) 생애 몇 번 없는 부지런을 떨며 한 달 동안 15편을 올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페이스북 지인 외에 모르는 사람들도 글을 읽어주었다. 조회수가 몇 십회씩 나온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와- 진짜 누군가 보긴 보나봐’ 심지어 자신의 생각을 댓글로 남겨주는 사람도 있었다. 처음 달린 댓글에 어떻게 답글을 달아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기도 했다. (그런 고민은 그 뒤로 할 일이 없었다)


직장을 옮기면서 연재도 끝이 났다. 나름대로 인생의 한 기간을 정리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뿌듯했다. (답을 찾거나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느라 바쁘게 보내는 가운데에서도 종종 브런치에 들어가 보면, 여전히 조회수가 나오고 있었고 드물게 구독도 눌러주고 있었다. 신기했다. 몇 달이 지났는데 아직도 봐주는 사람들이 있다니. 15편 중에 가장 많이 봐주었던 글은 ‘경력자로 이직한다는 건 생각보다 압박스럽다’였는데, 아마도 당시의 내 쫄리던 심정을 솔직하게 써놓은 것이 공감이 되나보다 싶었다. (이 글은 결국 다시 브런치에 글을 쓸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되 주었다) 어쨌거나 소소하게나마 반응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좋았다. 정말 뭐라도 하면 뭐라도 있다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두루뭉술한 느낌이라니)




그 해 연말에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를 알게 돼서 지원해보긴 했지만 되지는 않았다. 애초에 기획도 없는 적은 분량과 흔한 생각이었으니 결과는 당연했다. 다만 다음에는 지원할 수 있을만한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는 했다. (실천은 오랫동안 안 했지만) 그렇게 불꽃 같았던 브런치 연재 15편도 마감 되었다. 독립출판 한 번과 브런치 연재 한 번이 글쓰기 경험으로 쌓이게 된 해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두 해 전에 나름대로 애쓰고 있었던 것 같아 기특하기도 하다. 꾸준하지 못했고, 최선의 열심이 아니었던 것이 여전히 아쉽긴 하지만.

이전 15화책을 만들어봤는데.. 그래서 다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