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은 또 우습게 지나갔다. 한 해 동안 독립출판에도 관심 가져 보고, 브런치에 열 편 넘게 연재도 해 보고,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지원도 해 보았는데 다음해에는 완벽하게 리셋되어 있었다. 그런 일 없었던 것 같았다. 글에 대한 생각을 온전히 내려놓고 회사 일만 했다. 그때의 심정이 이해도 되는 것이 (나 아니면 누가 이해해주겠나) 새로운 영역에서 업그레이드하겠다고 시작한 일이었으니 거기에만 집중하는 것이 옳은 일이었다. 그 직장에서는 날 어떻게 보았는지 모르겠지만, 난 제법 진지했었다.
진심이었던 것 치고는 근무 기간이 짧았다. 1년 5개월이 채 못 되는 시점에 직장을 나왔다. 어떤 이유를 대든 결국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었고, 야심찼던 이직은 씁쓸하게 끝이 났다. 이번에는 두 해 전의 백수 때처럼 오래 쉴 생각은 전혀 없었다. 빨리 다른 곳을 알아봐서 들어갈 생각이었다. 아내에게 같은 고통을 또 안겨주고 싶은 생각은 정말이지 전혀 없었다.
예상보다 구직 기간이 길어졌다. 40대에 들어선 남자 사람이 그에 어울리지 않는 애매한 경력을 가지고는 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코로나 핑계도 대고 싶지만, 구할 사람들은 다 구했으니까) 백수 초기에 보았던 면접을 죽기 살기로 봤어야 했는데, 쉬게 된지 얼마 안 되었다고 좀 여유를 부렸나보다. (딴에는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뒤로는 면접 기회조차 거의 없었다. 대학교 졸업 시점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계속해서 회신도 없는 이력서를 내고 또 내는 생활을 10여 년 전과 비슷하게 반복하고 있었다. 조금 비참했다.
보통 비슷한 또래의 구직자들은 인맥을 많이 활용했다. 그럴만한 나이였다. 사회생활 하며 맺게 된 관계들이 적잖이 있을 때이니 물어물어 옮기는 것이 조금 더 수월한 방법이었다. 사실 구직 사이트에서는 해당 조건을 찾는 경우도 드물었다. 하지만 난 유일하게 사용할 수 있는 카드를 지난번에 이미 써버린 뒤였고, 부탁할 만한 곳이 없었다. 이것 역시 ‘귀찮다’라는 이유로 관계를 맺지 않은 내 잘못이었다. 혼자 고고하고 잘난 척 살더니만. 어렵사리 받게 된 기회도 잘 살리지 못했다. 막연히 ‘나이가 많아진 건가?’라는 생각을 검증하게 된 시간이었는데, (“사장님이 조금 더 어린 직원을 뽑기 원하셔서요”) 막상 사실을 확인 받고 나니 기운이 좀 빠지긴 했다.
가장 큰 문제는 마땅한 기술이 없다는 것이었다. 경력이 왔다 갔다 한 것과도 연관된 것이겠지만, 꾸준히 나만의 뾰족한 것 하나를 갈고 닦지 않은 것이 정말정말 핵심적인 문제였다. 어딘가 받아들여주는 곳이 없다면, 혼자서라도 일하면 되는 것이었지만, 막상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크몽’이나 ‘탈잉’ 같은 곳들 보면서 ‘난 대체 여기에 뭘 할 수 있다고 올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반복했는데, 딱히 뭐가 없었다. 파워포인트도 너무 평범한 수준이었고, 엑셀은 기본 말고는 아는 것이 없었다. ‘기획자’라고 하기에는 너무너무 창피했고, 카피라이터라고 하기에도 만만치 않게 창피했다. 영상도 만들 줄 몰랐고, 디자인도 하지 못했다. 하아- 대체 대행사에서 난 무슨 일을 한 것이며, 아무리 나이와 맞지 않는 짧은 경력이라고 해도 몇 년은 한 것일진데 이렇게도 내세울 만한 한 가지가 없단 말인가. 정말 스스로가 너무 한심해 오랜만에 잠을 잘 못 잤다.
몇 달을 괴로워하던 차에 다행이도 알바가 생겼다. 긍휼히 여겨주시는 두 분께서 자그마한 것들을 맡겨주셨다. 대학교 홍보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인터뷰 기사나 유튜브 영상에 앉혀질 글을 다듬는 일들이었다. 모두 글과 관련된 일이었고, 심지어 다른 직원들에게 ‘작가’라고 소개하시기도 했다. (너무 부끄러웠다) 그래도 글과 관련해서 알바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신 셈이었다. (진심으로 감사하다) 그랬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이 글 쓰는 것이었고, 더 잘 하고 싶은 것도 글 쓰는 것이었다. 내친김에 책도 내고 인세도 받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밑도 끝도 없이 급발진 시키기도 했다. 어찌 되었거나 구직 활동은 그것대로 계속 해야겠지만, 글에 대한 것도 더 발전시킬 수 있도록 무언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된 습관처럼 관련된 강좌들을 찾아봤다.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무언가를 잘 하고자 할 때 학원부터 찾는 것은 아무래도 중고등학교 때의 안타까운 습성인 것 같다) 유행하는 인터넷 강좌들도 찾아보다가 결국은 익숙한 방식으로 선회했다. 교실에 선생님과 학생들이 모여 수업을 듣는 방식. (옛날 사람 같으니) 비대면 시대에 굳이 대면 방식의 강좌를 신청했다. (아내에게 또 한 소리 들었다) 늘 그렇듯 듣고 싶은 강좌들은 많았지만, 사용 가능한 금액은 비례하지 않았으니 신중하게 하나씩 제외해 나갔다. (어렸을 때는 학원 가는 것이 그렇게 싫었는데, 왜 지금은 이것 저것 들어보고 싶은 걸까)
기왕이면 책과 관련된 강의들을 듣고 싶었다. 심지어 출판 인력을 양성하는 단기 학교 같은 형태를 등록해볼까 하는 생각도 심각하게 고려했었다. 구직 활동 중 출판사에도 심심치 않게 이력서를 내 보고 있었다. 그중 한 군데에서는 이전 경력이 전혀 다른데, 제대로 지원한 것 맞냐는 메일을 받기도 했다. 어쨌거나 책 만들기에 대한 미련이 어떤 형태로든 남아 있었다. 그러나 몇 개월이나 되는 과정을 기약도 없이 듣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이렇게 반백수 기간이 길어질 줄 알았으면 그냥 수강할 걸 그랬나 싶기도 하다) 결국 편집인이 되는 전문 과정은 배재하게 됐고, 조금이라도 아쉬운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수업들을 선택했다.
글 쓰는 데 도움이 될까, 혹은 아예 직업으로 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교정‧교열 수업에 관심이 갔다. 책 쓰기를 위한 글쓰기 수업도 들으면 좋겠다 싶었다. 브런치에 글 잘 쓰는 방법도 듣고 싶었다. 대략 8주 정도씩 되는 수업을 듣는 동안 취직이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들었지만 (결국은 쓸 데 없는 걱정이었다) 일단은 시작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런 걱정 때문에 시작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면 또 너무 한심해질 것 같았다. 어차피 반백수인 상황에서 뭐라도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채워 넣는 것이 좋은 것 아니겠냐는 생각으로 일단 강좌 2개를 신청했다. ‘에디터를 위한 교정교열 실무’와 ‘글쓰기부터 시작하는 책 쓰기’였다. 현재 알바로 하는 일들에도 도움이 될 만하다고 생각한 것들이었다.
다시 글쓰기를 위해 서서히, 아주 서서히 시동을 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