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미련을 깔끔하게 정리해주었다
여러 수업들 중 ‘에디터를 위한 교정교열 실무’를 선택한 이유는 직업적 접근이었다. 글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고, 잡지나 책을 만드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직접 책을 쓰는 것보다는 왠지 조금 더 가깝게 느껴졌다) 그런데 10년 넘는 사회생활 경력이 책 편집과 전혀 관련이 없었기에 양심상 기본적인 소양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디터’에게는 기획력을 비롯해 수많은 자질이 요구되겠지만, 일단 제대로 된 문장과 맞춤법을 구분하는 것 정도는 기본으로 깔고 가야 할 것 같았다. 안타깝게도 그 바탕이라 할 만한 것이 제대로 깔려있지 않았고, 그래서 교정교열의 세계로 안내해줄 수 있는, 그러면서도 없던 실력을 키워줄 수 있는, 그런 수업을 듣고자 했던 것이다.
거의 아무런 정보 없이 느낌에 의존해 수업을 골랐다. 물론 커리큘럼도 살펴보고, 강사님이 어떤 분인지도 찾아봤지만, 결국은 좀 더 끌리는 쪽으로 선택했다. 선택한 뒤에는 바로 수업료를 입금했고, 몇 주 정도 수업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렸다. (이렇게나 부지런히 기대하는 학생이라니) 그사이 결심을 되돌리지 않기 위해서 아내를 비롯해 몇몇 사람들에게 ‘나 이런 것 들을 거야’라고 선포 아닌 선포도 했다. 물론 얘기할 때는 최대한 별 것 아닌 듯한 뉘앙스를 유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편집자를 해보려고’라는 단순하고 깔끔한 어조보다는, ‘아니, 가끔 알바를 하는데 교정교열을 알면 도움이 되겠더라고. 맞춤법 제대로 알면 좋잖아. 그리고 혹시 알아? 계속 공부해서 교정 알바 같은 것도 더 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라고 장황한 동시에 상대방이 분명하게 기억하지 못하도록 최대한 늘려서 말하곤 했다.
수업은 굉장히 유익했다. 선생님은 몇 십 년 동안 책을 만들며 교정을 봐 온 장인이셨고, 책에 대한 진심 어린 책임감과 열정이 그대로 전해지는 분이셨다. 학생들에게 전해주시고자 하는 내용과 마음도 정말 컸고, 늘 정해진 수업 시간보다도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셨다. 그 분을 보고 있자니 나 같은 사람은 편집을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본적인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배우며 약간의 갈증 같은 것이 해소되었다. 늘 문장을 제대로 쓰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한글을 이제 와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배워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었다. 그런데 교정교열 수업을 들어보니 ‘이런 것들을 배워야 하는 것이었구나’ 싶었다. ‘백분율’과 ‘할인율’은 맞지만, ‘출석율’은 틀리다는 것들을 익혀야 하는 수준이었다. (지금 어느 것이 맞냐고 물어보면 또 모른다. 공부는 역시 수업 한 번으로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쓰는 것이 맞는 것인지 알고, 더불어서 왜 그렇게 쓰는 것이 맞는지를 알고 싶었다. 그래서 문장을 틀리지 않고 제대로 쓰고 싶었다. (하지만 수업이 끝난 뒤에는 또 다시 마음대로 쓰고 있다) 선생님은 다양한 사례와 더불어 근본적인 이유를 자세하게 가르쳐주셨다. (가르쳐 주신 것만 다 기억했어도 어디 가서 부끄럽지는 않았을 텐데)
기본적인 맞춤법에 대한 것과 함께 ‘편집자’에 대한 궁금증도 다소 해결되었다. (현장을 경험한 것도 아니고, 선생님이 본격적으로 편집 과정을 설명하신 것도 아니니 ‘다소’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선생님은 맞춤법 못지않게 편집자의 마인드도 중요하게 강조하셨다. 책 한 권을 만드는데 있어서 가져야 할 책임감이었는데, 숱한 오타들과 불분명한 사실 여부가 담긴 책을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고 설명하셨다. 인쇄를 다 마친 책에서 몇 개도 아니고 수십 개의 오타가 발견되는 것을 보고도 ‘그럴 수도 있지 뭐’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하셨다. 인간의 결과물이니 완벽할 수는 없지만 기본적인 마음가짐은 그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실 확인 여부도 편집자의 책임이라고 했다. 이 부분은 생각지 못했었다. 가령 역사적 배경이나 연도가 잘못 되지는 않았는지, 누군가를 소개하는 내용에서 잘못 된 것은 없는지 꼼꼼히 살펴야 한다고 했다. 원고를 읽다가 고개가 조금만 갸웃거려도 그냥 넘어가지 말고 반드시 사실 확인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며 조력자 역할도 해야 했다. 글의 문맥상 어떤 표현이 더 어울릴지 작가와 논의도 할 수 있어야 했다.
선생님의 수업을 끝까지 들으면서 전문적인 편집자가 되는 것은 어렵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기질과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세상만사를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토시 하나 틀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원고를 대하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물론 어린 시절 뭐 모르고 시작해서 월급 받는 처지였다면 어떻게든 해쳐왔겠지만, 이제 와 선택해야 하는 시점 앞에 있다면 섣불리 발을 딛지 말아야 할 일이었다. 수많은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넘어 사실 여부를 하나하나 체크하며 책임지는 일은 나라는 사람과 잘 어울리지 않았다. 대행사에서 만드는 24p짜리 브로슈어까지는 가능하겠지만, 300p짜리 책 한 권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슈퍼 울트라 꼼꼼’이 덕목인 직업에는 함량 미달이었다. (‘그냥 꼼꼼’까지는 노력할 수 있다)
몇 주간의 시간과 얼마간의 수업료는 결국 두 가지 의미로 유익했다. 한글 실력이 굉장히 부족하다는 것을 직시하게 해 주었고, 교정교열을 업으로 삼는 것은 조용히 접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해 주었다. (부족한 한글 실력이 향상되었다고 쓸 수 있다면 참 좋겠는데, 양심상 ‘현재 위치를 알았다’ 정도가 최선인 것 같다) 지인 중 누군가는 그 교정교열 수업 다 듣지 않았냐며, 그 쪽 일은 어떻게 되었냐고 물어보기도 했는데, 그것은 나의 영역이 아니라고 깔끔히 답하곤 했다. (물론 계속 공부하면서 부끄럽지 않은 정도로 한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여전히 갖고 있다) 그럼 그 수업을 왜 들었냐며, 아깝지 않냐고 한 번 더 물어보는 이도 있었는데, 전혀 아깝지 않았다. 알아야 할 지식들(맞춤법)도 알 수 있었고, 미련이 남는 방향에 대해서 정리도 할 수 있었으니까.
몇 년 전에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정확히 언제인지, 어느 상황에서 듣게 된 것인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영화평론가’가 되기 위한 수업을 신청한 적이 있었다. 영화평론가는 대학교 때부터 로망으로 동경하던 직업이었다. 좋아하는 수많은 영화들을 가릴 것 없이 다양하게 접하면서 엄청나게 멋스러운 이야기를 끝없이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위대해 보였다. 지구를 대표하는 지식인 같았고,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말도 안 되게 멋있을 것 같았다. 직장을 다니는 동안에도 가슴 한켠에는 영화평론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호시탐탐 그 세계로의 이주를 열망하고 있었고, 끝내 조심스럽게 관련된 수업을 듣기 위해 소중한 퇴근 후의 저녁 시간을 바친 것이었다.
첫 수업을 들은 뒤, 다음날 해당 기관에 전화해 피치 못할 사정으로 남은 강의들을 들을 수 없게 되었는데 혹시 남은 일정만큼의 환불이 가능한지를 물었다.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 두 시간 남짓한 시간으로 내가 영화평론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은 것이었다. 선생님과 다른 학생들이 나누는 대화에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들은 나와 다른 세상에 있었는데, 그 세상으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솔직히 더 정확히는 들어가고 싶지가 않았다. 난 더 이상 대학교 때의 내가 아니었고, 범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이상 속 이야기를 아련하면서도 대담하게 엮어낼 자신이 전혀 없었다. 그렇게 단 한 번의 수업으로 몇 년간 저 길을 가야하지 않을까 했던 미련 가득한 고민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개운했고, 현재 하는 일에 좀 더 애정 어린 노력을 기울일 수 있었다.
교정교열 수업은 부족한 지식을 채워주었을 뿐만 아니라, 미련 가득했던 고민 또 하나를 잘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