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부터 시작하는 책 쓰기’란 제목은 실로 매력적이었다. 글도 잘 쓸 수 있을 것 같았고, 책도 출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작가’가 되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수업처럼 보였다. 신청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왠지 교정교열 수업보다 한 주 늦게 시작하는 시점도 괜찮은 것만 같았다. 스스로를 예열시킨 뒤 수업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 긍정적 시너지가 있긴 했다. 글과 문장에 대해서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했으니까)
꽤 많은 책을 출간한 작가이자, 한 주가 가득 차도록 강의도 하고 계신 선생님은 출간을 위한 실질적인 조언들을 아끼지 않으셨다. 뭔가 막연하면서도 현학적인 교양 수업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좋았다. 듣기를 잘 했다고 생각했다. 첫 수업을 들으면서 끝내 머리에 남은 한 가지는 ‘이 책이 돈을 내고 살 만한 것인가’하는 문제였다. 개인적인 일기들을 꾸준히 쓰고 어딘가에 올리는 것도 분명 의미 있는 일이지만, 책을 낸다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셀럽이 아닌 이상 시시콜콜한 개인사를 책으로 엮어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데, ‘팔리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출판사들은 자선사업 단체가 아니었고, 들인 노력에 대한 대가를 보상 받지 못하는 결과물을 힘 들여 만든다는 것은 굉장히 비생산적인 일이었다. 그들 역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사람들이니 당연한 문제였다.
‘책 한 번 내보고 싶다’라던 막연한 상상이 꽤 분명한 명제 앞에 당도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내가 사람들이 기꺼이 돈을 내면서까지 보고 싶은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일시에 모든 것이 쪼그라들었다. 상상력조차 발휘되지 않았다. 그런 일은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같은 것’이라기보다는 거의 분명했다. 이내 ‘안 되는 건가’라는 결론에 다다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 생각할 것 없이 나 자신만 해도 ‘책값’을 내는 것에 있어 매우 게을렀다. 인색한 것은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흥미 있는 것에 대해 정가를 주는 것에 대해 아까워하지는 않았다. 단지 게으를 뿐이었다. ‘다음에 보자’, ‘아직 집에 다 못 읽은 책도 있잖아’라는 식이었는데, 여간해서는 이 주기가 빨라지거나 줄어들지를 않았다. 게으른 와중에도 우선순위는 있었는데, 나름 각고의 노력이 들어간 가치가 그 순위를 결정했다. 쉽게 얻어내지 못할 만한 것, 그냥 그렇게 생각해낼 만하지 않은 것 등이 높은 순위로 치고 올라가는 식이었다. 굉장한 탐색과 연구를 거쳤다든지, 무릎을 탁 치게 되는 통찰이 있다든지 하는 것들이었다. 종종 표지 디자인에 이끌려 무심코 사게 되는 책들도 있었지만, 그것 역시도 디자인과 마케팅에 공을 들인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어쨌거나 나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깊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삶이었다. 대학교 때부터 어려운 얘기 하는 선배들 사이에서도 ‘저는 그러지 아니하겠습니다’라며 사고를 확장하는 것에 대해 과감히 거부해온 삶이었다. 조사하고 통계 과정을 거쳐 인사이트라는 것을 뽑아내는 것을 할 수 없어 논문 한 편도 써보지 않고 피해 다닌 삶이었다. 깊이 있게 파고들어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한 것을 찾아내는 것은 여태껏 해본 적 없으니 당장 그런 종류의 책을 쓸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인생 역시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가족 모두 별 탈 없이 평안했고, 개인적으로도 별다른 사고 없이 무탈하게 지내왔다. (갈 바를 알지 못해 우왕좌왕 한 것 말고는) 그야말로 복에 겨운 삶이었다. 누군가에게 흥미를 던질 만하다거나 감동을 줄 만한 인생이 전혀 아니었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평탄하기 이를 데 없는, 굴곡 없는 인생이었다.
이런 이유들로, 수업 과제였던 ‘출간기획서’라는 것에는 여행 경험을 담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 말고는 쓸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래도 생각 좀 한다고 ‘레트로’라는 유행에 맞추어 수 년 전 스마트폰 없던 시절의 여행 모습을 써보면 어떨까 한다고 적어보았다. 10~20대에게는 ‘이렇게 여행을 할 수 있다고?’라는 반응을, 30~40대에게는 ‘맞아, 이랬었지’라는 반응을 기대한다는 식이었다. 두 번째 수업에 들고 간 이 기획서는 간단하게 거부당했다. ‘식상하다’라는 예상 가능한 이유였다. 여행책의 유행이 이미 지났다는 것이었으며, 어디 특이한 곳도 아니고 유럽 배낭 여행을, 그것도 고작 한 달 다녀온 것만으로는 전혀 흥미를 자아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수십 년이나 수백 년 전의 시차도 아니고 고작 몇 년 전이라는 요소 역시 특이점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선생님뿐 아니라 수업을 듣는 사람들에게도 별로라는 평을 받았다. 충분히 예상한 일들이었지만 실제로 맞닥뜨리니 그리 좋지는 않았다.
10명이 채 안 되는 사람 중에 나만 바보 같았다. 다른 사람들은 어찌나 멋진 이야기들이 가득한지 샘이 날 정도였다. NGO 단체에서 수년간 일하며 해외 현장에서 경험한 것을 딸에게 들려줄 수 있는 사람도 있었고, 모범생의 길을 걸어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뒤늦게 자신을 찾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을 반대 성향의 동생과 비교해 풀어낼 수 있는 사람도 있었다. 채식주의자인 아내와의 일상을 그려낼 수 있는 육식주의자 남편도 있었고, 다이어트 과정 속에서 인문학적인 발견을 해낼 수 있는 사람도 있었다. 또 부럽디 부러운 일러스트 이미지를 그려낼 수 있는 능력자도 있었다. 다들 정말 쓰기만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이야기들을 잔뜩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 저런 삶을 살게 된 건지 한 명 한 명 인터뷰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각자의 기획서를 발표한 그 수업이 끝나고 난 뒤 얼굴도 들지 않고 그림자처럼 교실을 빠져나왔다. 엘리베이터에서 간간히 인사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곳에 없는 사람처럼 신발만 쳐다보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내내 스스로가 얼마나 한심했는지. 이게 또 세상 게으른 탓이라며 속으로 엄청난 분노를 자아내고 있었다. 뭐든 귀찮아하는 탓에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아서 아무런 에피소드가 없는 것이라며 순탄했던 인생을 탈탈탈 뒤집어 털어내고 있었다. 안이하게 과제를 해간 것에 대해서도 욕설을 퍼부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쉽게 기획서를 써간 것이냐며, 이게 회사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당장 시말서라도 쓸 만한 것이었다며 할 수 있는 만큼 심하게 몰아붙이고 있었다. 생각할수록 화가 나고 부끄러워서 다음 주부터는 수업에 나가지 말자는 다짐을 하고 또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수업에는 나가야 할 것 같았다. 이렇게 또 피해버리면, 또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다시 한번 과제를 하고, 발표를 하고, 평가를 받고, 다시 또 과제를 하고, 관련된 글도 쓰고 해야 이 시간이 가치 있는 것으로 변할 것 같았다. 누군가 옆에서 봤다면, 왜 별 것도 아닌 것 갖고 혼자 저렇게 속상해 하며 어쩔 줄 모르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겠지만, 내게는 중요한 문제였다. 창피하고 모르겠다며 모른 척 덮어놓지 않고 계속 시도해보며 ‘나도 할 수 있겠다’라는 느낌을 가져봐야 하는, 누구나 거쳐 가야 하는 그런 종류의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