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또 돌아보고 앉았다

by 별연못

‘기획을 못 한다’는 것은 기분 나쁜 일이었다. 멍청한 것 같기도 하고, 의욕 없는 것 같기도 했다. 기획은 방향과 목표를 정하고 기초를 쌓는 일이었다. 무언가 시작하려면 기획이 필요했고, 무언가가 산으로 가지 않으려면 기획이 필요했다. 기획이 촘촘할수록 중심을 잡을 수 있었고, 기획이 여유 있을수록 현장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었다. 결국 기획은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할 수 있었고, 넓으면서도 세밀한 시각을 고루 갖춰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어디 가서 ‘기획자’라고 스스로를 소개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런 일들을 잘 하지 못해서였다. 프로젝트를 어떻게 마무리 지어야 할지 확신이 없었고, 그 확신이 없으니 어떤 방법을 사용해야 할지도 선택하기 어려웠다. 기획 일은 꽤 잘 하고 싶은 일이었으나 결국은 정말 자신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기획을 잘 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장황하게 글로 써본 적도 있었다. 결론은 ‘시키는 것만 해서’였다. 직장을 다니며 부딪혀보니 힘들게 아이디어를 내고 설득하는 것보다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별 탈 없이 좀 더 빠르게 마무리 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렇게 그림 그려주는 대로 손과 발 역할만 충실히 하다 보니 생각하는 근육이 소실되어 버렸다는 것이 나름의 결론이었다. (지난번에 얘기했던 것 같기도 하다)




문제는 여기부터였다. 반백수가 되면서 시키는 사람이 없어졌으니 스스로 지시를 내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뭘 해야 할지는 둘째 치고,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기사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이 재미있었어요’라던지, ‘평소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았습니다’라던지 뭔가 동기가 될 만한 요소가 하나도 없었다. 누군가 아르바이트를 맡기면 기한 내에 마치기 위한 일정을 계획하고 시간 내에 부지런을 떠는 것은 할 수 있었는데, 전반적으로 삶을 어떻게 끌고 갈지에 대한 그림은 전혀 그릴 수 없었다.


반백수 생활 역시 직장생활과 똑같이 보내고 있었다. 주어진 일은 주어진 시간 내에 마무리하고, 남는 시간은 빈둥빈둥 흘려보내는 식이었다. ‘돈이 부족하니 고정적으로 할 수 있는 추가적인 아르바이트를 찾아봐야겠어’라던지, ‘원래 이런 걸 하고 싶었으니 이렇게 해봐야겠어’라던지 하는 식의 기획은 할 수 없었다. 시간은 남는데 이렇다 하는 계획이 없으니 게임이나 드라마 시리즈 같이 생각하지 않고 시간 보내기 좋은 것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들었다. 다이어리에는 미련을 못 버리고 ‘삶의 방향을 찾자’라고 써놓았으나 공허한 새해 다짐 같은 것이었다.


어느새 글쓰기 수업에 제출해야 하는 ‘출간 기획서’를 못 쓰겠다는 생각은 결국 내 인생의 방향을 정하지 못하겠다는 담론으로 옮겨가 있었다. 몇 십 년째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문제였고,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문제였다. 그저 지긋지긋할 뿐이었다.


중학생 때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고, 고등학생 때는 되도록 좋은 대학교를 가자는 생각뿐이었다. (초등학생 때는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고려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되도록 좋은 대학’이다. ‘연세대학교’, ‘한동대학교’ 같은 식이 아니었다. 서울대 같은 학교는 허황된 목표 같았고, 서울 안의 대학은 가고 싶었지만 어디 하나를 딱 짚어 말하는 것도 왠지 염치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 정도로 합의를 보고 말았던 것이다. 전공도 딱히 정하지 못했다. 이과가 아닌 문과 계열이라는 것만큼은 확실했지만, 그 넓은 인문학 중에서 몇 가지라도 고르지를 못했다.


목표가 애매했기에 수능시험 뒤에 원서를 내는 것도 꽤 애매해졌다. 막상 원서를 쓰려고 보니 스스로 갖고 있던 그 막연했던 기준의 실체는 생각보다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노력은 그 기준에 닿을 만큼이 아니었다. ‘그냥 좋은 대학’이었고, ‘그냥 이정도면 되겠지’였던 기준에 맞췄던 결과가 얼마나 빈약한 정도인지를 몸소 깨달아야 했다. 비슷한 형태로 재수 과정을 거쳐 우여곡절 끝에 서울 안에 있는 대학을 간 다음에도 마찬가지였다. 남들이 좋다는 전공에 편승해놓고는 수업을 따라갈 수가 없어서 힘들어했다. 태생적으로 맞지 않는 분야 같았다. 다행히 복수전공이라는 제도를 활용해 간신히 졸업은 할 수 있었다.


대학생 때는 몇 가지 꿈이 있었다. ‘페이퍼’ 같은 잡지의 기자도 되고 싶었고, 여행작가도 되고 싶었다.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영상 PD가 되고 싶기도 했다. 글 말고 영상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것도 재미있어 보였다. 그런데 방송국 PD가 되는 것은 너무 어려워 보였다. (시도조차 하지 않아서 실제 얼마나 어려운지조차 모른다) 여행작가나 잡지 기자는 어디서 사람을 뽑고 있는지도 찾기 어려웠고 돈도 잘 못 벌 것 같았다. 무지하게 어렵고 좁은 난관의 공채를 뚫어내는 것도 자신 없었고, 일반적인 길 외에 어디 숨어있는 것 같은 길을 찾아낼 자신도 없었다. 그냥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이력서 100개 내서 한 군데 걸리는 곳에서 사회생활 시작하는 것’으로 간편하게 방향을 바꿨다.


‘쉽게 따라할 수 있는 것’이 인생을 결정했다. 물론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매번 고쳐 쓰면서 100군데쯤 내는 것도, 매번 퇴짜를 맞으면서 합격을 기다리는 것도 쉬운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모두가 하는 것이니 나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PD 시험을 통과하는 것이나 좋아하는 몇몇 잡지의 기자가 되는 것은 특색 있는 소수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도해보지도 않았다.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건 아니잖아. 그냥 적당히 돈 벌면서 여행 다니고 그러면 되잖아’라고 합리화했다.


그렇게 아무런 목표 없이 직장생활을 시작했으니 수시로 그만 둘 수 있었다. ‘돈을 이만큼 모을 거야’, ‘여기서 이정도 실력을 쌓아서 이런 레벨의 회사로 갈 거야’ 같은 생각은 일절 없었다. 그냥 월급 받는 사회인이면 족했다. 뚜렷한 목표를 정한 적도 없고, 목표에 맞춰 밤낮 없이 노력한 적도 없고, 목표를 이뤄본 적도 없으니 시간이 주어져도 어찌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냥 바닥에 드러누워서 ‘로또 되면 이런 골치 아픈 것 생각 안 하고 죽을 때까지 야금야금 먹고 살면서 목숨 부지할 수 있을텐데’라는 못난 망상만 부질없이 할 수 있을 뿐이었다.




이러니 기획 못 하는 것이 기분 나쁜 일일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의 삶에 대해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루저’같다는 기분이 가득 차올랐다. 어쩌다 이렇게 못난 놈이 됐는지 한심해하다 기분이 더러워지기도 했다. 돌아본다고 달라질 것도 없고 우울해지기만 하는 삶을 뭐 하러 또 돌아보고 앉았는지 모르겠다 싶기도 했다. 하나하나 다시 짚다 보면 채워야 할 단추를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여전히 버리지 못한 것인지. 하여간 씩씩 거리면서 ‘왜 이러고 살고 있나’ 하는 것을 몇날 며칠을 또 돌아보고 있었다.


이전 20화기획을 못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