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어찌 출간기획서 과제를 마쳤다. 제목도 바꾸게 될 테고 목차도 바꾸게 될 테지만 어찌 되었건 지도 한 장은 마련한 셈이었다. 작성한 출간기획서를 보면서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있다는 의미에서 지도 같았다. ‘목차’라는 것이 묘했다. 30개 남짓한 꼭지들을 보고 있으니 그만큼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냥 ‘지금부터 원고지 600매 쓰는 거야’라고 하면 무슨 얘기를 어떻게 채워야 할지 막연하지만, 30개로 구성해놓은 목차를 보고 있으면 ‘한 꼭지에 20장씩 30개 쓰면 되겠네’ 하는 생각이 든다. 20장이라고 하면 엄청 많아 보이지만 A4 용지로는 대략 2장 반 정도 되는 분량이다. 조금의 끈기만 발휘하면 끝낼 수 있는 정도다. (때로는 ‘많은’ 끈기가 필요하기도 하다)
목차에 맞춰 실제로 글을 쓰기까지는 공백이 있었다. 늘 그렇듯 ‘이런 걸 대체 왜 써야 하는가’라는 자조를 떨쳐내는데 시간이 걸렸다. (‘닥치고 쓰기’가 참 안 된다) 8주간의 책 쓰기 수업 내에는 결국 시작하지 못했다. 수업이 끝나고도 제법 시간을 보낸 뒤에 시작하게 됐다. 수업 3주차에 작성한 출간기획서를 원고로 옮기는데 몇 달이 걸린 것이다. (매번 이런 식으로 살다보면 몇 가지 한 것도 없이 죽겠다 싶었다)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도록 힘을 준 작은 단초가 있긴 했다. 글을 쓸까 말까 갈등하면서 브런치만 들락날락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내 글에 댓글이 달렸다는 알람이 떠 있었다. 댓글이라곤 한두 개밖에 받아보지 못했기에 너무 깜짝 놀라서 뭔가 하고 들어가 봤다. 심지어 최근에는 글을 올린 적도 없는데 무슨 일인가 싶었다. 2년 전 글이었다. 사회생활 하며 느꼈던 것들을 15편 정도로 정리한 적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였다. 경력자로 이직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압박스럽다는 내용이었는데, 자신의 상황과 너무 비슷해서 많이 몰입하고 공감했다는 댓글이었다. 정황상 꽤 심한 얘기를 들은 뒤 퇴근한 늦은 밤에 답답한 마음에 이리저리 인터넷을 오가다가 그 글을 보게 됐고, 자신의 상황을 대신 그려준 것 같아 반가웠던 것 같다. 댓글 말미에 ‘작가님 글 잘 읽고 정신 차리고 갑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남겨놓았는데 왠지 마음이 짠했다. ‘이 분 참 힘들었겠구나’라는 생각에 술이라도 한 잔 같이 하면 좋겠다 싶었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내가 쓴 글이 누군가에게 위로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갑자기 너무 감사해졌다.
더 이상 스스로를 없이 여기지 말고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또 2년 뒤에 누군가 보고 도움을 받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것만으로 충분히 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아무것도 아닌 인생이 다른 이에게 의미 있어진다는 것이 얼마나 감동적인 일인지. 상상만으로도 무척 감사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해도 쓰기로 했다. 이 글을 다 써야 한 고비를 넘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A4 한 장짜리 이야기를 마음 내킬 때만 쓰는 것 말고, 한 편에 2장 이상 되는 이야기를 20~30개 정도 연관성을 갖고 이어가는 것을 해봐야 할 것 같았다. 그건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소설가 장강명은 ‘책 한번 써봅시다’라는 칼럼에서 ‘작가가 아니라 저자를 목표로 삼으라’고 말하면서 한 주제로 600장(원고지 기준) 분량의 원고를 쓴 뒤 지인에게 보여주고 반응을 들어보라고 조언한다. ‘이를 해낸 사람이라면 작가 지망생과 작가를 가르는 흐릿한 선을 넘어섰다고 자부해도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는 문구를 보고 더욱더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보지 않고 상상하는 것과 해보고 느끼는 것은 분명 다른 일이었다.
두어 달 전에 마지막으로 저장했던 출간기획서 파일을 다시 열었다. 제목은 마음에 안 들었고, 목차는 애매했다. 그러나 당장 뾰족한 제목이 떠오르지도 않았고, 목차도 어떻게 바꾸면 좋을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책 제목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브런치에 정기적으로 글을 올린 뒤 다 모이면 그 때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브런치 북’으로 엮을 때 조금씩 수정할 것 같았다. 제목만 생각하다가 글 쓰는 것을 내년으로 미루기는 싫었다. 목차는 전반부만 일단 다듬었다.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한 꼭지마다 적절히 분량을 채울 수 있는 범위로 조금씩 조정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지막을 어떻게 마무리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서 일단 이렇게 중반까지만 정리했다. 마지막 몇 개의 목차는 쓰면서 생각하기로 했다. 누가 뭐라고 하는 건 아니었지만 일단 시작하기로 마음먹으니 괜히 조바심이 났다.
쓰기 시작했다. 서너 편 모일 때까지는 업로드하지 않았다. 일주일에 두 편씩은 꾸준히 올릴 작정이었는데, 혹여나 기한에 맞춰 쓰지 못하는 날이 있을까봐 조금 모아놓고 출발하기로 했다. 예전에 어떤 저자가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고 했던 것을 봤던 기억이 났다. 유명 블로그이자 책의 저자이기도 했는데, 꾸준히 글을 써서 모아놓고 업로드하기 전에 한 번 더 퇴고한다는 이야기였다. 일견 타당해 보였고, 불안한 것이 싫기도 해서 따라해 봤다. 괜찮은 것 같았다. 게으른 성격 탓에 업로드할 때 특별한 퇴고 없이 슬쩍 만져보는 정도에 그치긴 했지만 미리 글을 쌓아놓는 다는 것은 안정감이 있었다.
본문에 이미지는 넣지 않기로 했고, 중간 제목도 뽑지 않기로 했다. 보통의 수필집처럼 글만 얌전히 깔아놓기로 했다. 한 가지 고민은 ‘연속성’이었다. 나는 이 글들을 하나의 묶음 형태로 생각하고 써나가는 것이지만, 보는 사람들은 어쩌다 한 개씩 개별적으로 읽게 되는 상황이 살짝 고민이었다. 그래서 다음 편을 쓸 때 어떤 상황이었는지 모를 사람들을 위해 한 번씩 더 요약처럼 언급하기로 했다. ‘지금 독립출판으로 책 만드는 과정을 얘기하고 있는 중이에요’라는 식으로. 사실 개별적으로 분절된 글들을 모아놓을 수도 있겠지만, 생각해둔 목차가 완전히 그런 형태가 되기는 힘들 것 같았다.
브런치에 첫 편을 올렸을 때 10개 남짓한 ‘좋아요’를 받았다. 예상 밖이었다. 예전에 몇 개 올렸을 때는 그보다도 훨씬 못 받았던 것 같았다. 두 번째, 세 번째 글을 올렸을 때도 비슷한 개수의 ‘좋아요’가 달려서 ‘브런치 팀에서 관리를 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쓸 데 없는 음모론 같은 건 접어두기로 했다. 그저 감사히 받기로 했다.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를 읽어주었다는 것에, 그리고 잘 읽었다고 표시해준 것에 무척 감사했다. 늘 비슷한 숫자의 반응과 늘지 않는 구독자 때문에 고민하기도 했는데,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내 목표는 정한 분량을 채워서 끝까지 써보는 것이니까 그것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예전처럼 페이스북 등에 연동하는 것도 하지 않았다. 지인들이 ‘얘는 아직도 이런 생각 하고 있는 건가’라며 한심해할 것 같아서 용기가 나지 않았다.
20꼭지를 넘게 쓰면서 장강명님의 얘기가 어떤 의미인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하나의 주제로 묶일 수 있도록 20~30개의 이야기를 총 600매 이상의 분량으로 채워간다는 것은 꽤나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한 꼭지마다 20~30매 가량 되도록 풀어낸다는 것도, 각각의 이야기들이 하나의 책으로 묶여도 어색하지 않도록 구성하는 것도 각별한 주의를 요했다. 끊임없이 생각해야 했고, 생각이 분산되지 않아야 했고, 끈기 있게 하나씩 하나씩 끝을 지어야 했고, 그러면서 다음 이야기를 예상해야 했다. (고작 한 번 해보는 중이면서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 너무 부끄럽다) 책 한 권을 내기 위해 들여야 하는 노력이 어떤 것인지 아주 살짝 엿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