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한 가지 습관을 들이는데 30~40일 걸린다고들 하던데 생각처럼 잘 되지는 않았다. (이 수치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양하다) 글쓰기가 삶의 순간순간에 자리하긴 했지만 고정이 되지는 않았다. 누구나 얘기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매일 쓰기 습관처럼 되려면 아무래도 내 글이 팔릴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가능할 것도 같았다. (농담이다) 그래도 두 달째 글쓰기를 염두하며 살고 있었다. 고정적으로 업로드하기 위해 시간을 조정해 공백을 만들었다.
게임을 하는 내가 마음에 안들 때가 있었다. 재미있어서 하는 시간은 상관없었는데 그렇지 않을 때가 문제였다. 해본 사람들은 다 아는 것일 텐데, 많은 게임들이 매일 매일 보상을 주는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 게임에 접속하면 아이템 하나를 주고, 매일 정해져 있는 미션을 완료하면 그에 따른 아이템들을 각기 더해주는 식이다. 정해져 있는 미션은 게임마다 강도가 다르지만 대개는 어렵진 않지만 시간을 조금 요구하는 식이다. 마음에 안 드는 순간은 이 미션을 매일 매일 착실히 완료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게임을 시작하고 어느 정도 지나면 웬만한 퀘스트들을 완료한 상태라서 딱히 더 즐길 것이 없을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출석도장을 찍으며 정해진 미션을 성실히 해나가는 것을 신성한 습관처럼 지키고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모아놔야 언젠가 이벤트가 열릴 때 수월하게 퀘스트를 해결할 수 있지’ 하는 믿음을 가지고.
이 모습이 종종 얼마나 꼴배기 싫은지 모른다. 공부고 운동이고 그 어떤 것에도 이런 성실함과 꾸준함을 보인 적이 없었는데 유일한 대상이 게임이라니. 더군다나 저 숭고한 믿음은 또 무어란 말인가. ‘일일미션’이라는 것이 딱히 흥미로운 수준이 아니기에 때로는 귀찮고 하기 싫을 때도 있었다. 그저 별 것 아닌 스킬의 반복이기에 애초 게임에 기대한 흥미로운 시간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션을 완료했다. ‘오늘은 하지 말까? 귀찮잖아’ 하다가도 ‘아냐, 시간 얼마나 걸린다고. 매일 쌓아놓을 걸 쌓아놓아야 필요할 때 사용하지’ 하는 마음으로 그 없는 인내심을 발휘하곤 했다. 이렇게 매일 영어를 익혔다면 해외여행이 얼마나 풍성해졌을까.
게임을 한두 번 바꿀지언정 매일의 출석과 일일미션의 테두리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 종종 지금 표현한 것보다도 더 한심해하면서도 그만 두지는 못했다. 마치 스스로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쓸모없는 인간인 것 같다는 심각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이제 안 할 거야’ 하는 마음은 아무 소용 없었다. 하루가 지나가기 전에 ‘안 돼, 잠깐만 하면 되는데’ 하는 마음이 언제나 승리하곤 했다. 정말 중독은 다른 집중할 대상이 있어야만 빠져나올 수 있는 것이었다. 그냥 스윽 관심을 끊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대학교 때 중독과 관련해 한 선배가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강박적으로 접속하고 있는 게임은 두 개였다. 시간이 은근히 소요됐다. 아르바이트할 것 외에 게임들 하고나면 별로 시간이 남지 않았다. 불안 초조해하며 남는 시간에 글쓰기 등을 할애하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게임에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서른 꼭지 정도를 목표로 하나씩 써나가던 중 생계를 위한 알바 시간과 더불어 글 쓸 시간을 더 제대로 확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바하고, 게임하고, 남는 시간에 글을 쓰려니 속도가 잘 나지 않았다. 나름 정해놓은 데드라인이 있었는데 별로 넘기고 싶지 않았다. 반백수 주제에 핑계도 없이 약속을 어기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한 달이 좀 넘어가는 시점에 게임 한 개를 슬며시 내려놓았다. 두 개를 다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먼저 흥미를 잃은 쪽의 발길을 점점 끊은 것이었는데, 하루 이틀 들어가지 않아도 예전처럼 조바심이 나거나 하지 않았다. 오늘 받지 못한 아이템이 눈앞에 아른거리지도 않았다. 그저 언젠가 여유롭게 하고 싶은 날 조금 즐기면 그만이라는 기특한 생각도 할 수 있었다. 이상하다 싶기도 했다. ‘어떻게 이렇게 자연스럽게 편한 마음으로 멀어질 수 있는 거지?’
두어 달이 지날 즈음 나머지 게임에도 며칠 째 들어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자기 전에 누워서라도 잠깐 들어가 미션을 완료하면 될 일이었는데, 그마저도 하지 않았다. 왠지 부질없는 짓 같았다. ‘마음이 떴네, 떴어. 그렇게 온 정성을 다 하더니’ 몇 번인가는 시간이 나도 의식적으로 접속하지 않았다. 여전히 휴대폰 화면에 아이콘이 예쁘게 자리하고 있었지만 그저 휙 지나갈 뿐이었다. 이런 의지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 스스로 신기하기도 했다.
게임을 하지 않아서 생긴 시간에 글을 썼다. 하루 바삐 목표를 채우고 싶었다. 마감 직전까지 할 수 있을까 없을까 쫄리는 상황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되도록 여유 있게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다시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우선순위에 글쓰기가 자리하기 시작했다. 생계형 알바와 비슷한 무게로 시간을 할애했다. 그래야 했고 그러고 싶었다. 솔직히 엄청나게 재미있지는 않았다. 아무리 해도 잘 못 쓰는 것 같고, 여전히 읽을 가치가 없는 신변잡기를 쓰잘 데 없이 쏟아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냥 멈추고 싶지는 않았다. 끝까지 쓰고 싶었다. 거의 다 썼다 싶은 글을 깡그리 지워버릴 때는 스스로에게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조금이라도 잘 쓰고 싶었다.
생각하는 시간도 늘었다.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나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될지에 대해서 고민이 많아졌다. 이 얘기 다음에 저 얘기를 붙여도 될지 고민했고, 얘기 자체를 덜어내야 할지 더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작위적이거나 꾸며 쓰고 싶지 않기 위해서도 고민했다. 진짜 마음이 뭐였는지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 위해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봤다. 자연스레 살아온 방향도 살아가고 싶은 방향도 더 세밀히 살피게 됐다. 과연 이 개인적인 도전 이야기를 끝맺을 때 어떤 결과를 담을 수 있을지도 고민이었다. ‘해보니 아무것도 아니더라’라는 허무주의 같은 말들을 쏟아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런 것들은 괜찮더라’하는 정도라도 얘기하려면, 그리고 그 얘기가 작위적이지 않으려면 잘 들여다보고 잘 정리해야 했다.
다른 사람들의 글도 살펴봤다. 관심 없던 글에도 관심이 생겼다. 일부러 더 찾아보기도 했다. 어떤 생각들을 어떤 묶음으로 만드는지, 어떻게 구성하고 표현하는지 궁금했다. 독특한 소재도, 일상에서 특별함을 발견하는 심안도, 몰입하게 만드는 문장력도, 카피라이터 뺨치는 제목도 모두 부러웠다. 틈나는 대로 간간이 읽어가며 내 글은 어떻게 해야 할지 더 고민했다. 솔직히 문장 하나하나에 공력을 들일만한 처지는 아니었다. 그저 한 꼭지를 어떻게 채워야 할지가 고민이었고, 목차를 어떻게 더 다듬을 수 있을지가 고민이었다. 이 모든 것들을 셈날 정도로 유려하게 해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한숨을 몰아쉬기도 했다.
그렇게 작은 노력들을 쌓아가고 있었다. 부끄럽고 미미하고 하품 나는 것들이었지만 언젠가 마주하게 될지 모를 이벤트 때 든든한 밑천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직까지 매일의 접속과 일일미션 수준으로 채워가고 있지는 못했지만 점점 단단하고 흔들림 없는 일상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금씩 쌓아가고 있었다. 오랜만에 건강하다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