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것이 좋아졌다. 희한하게 삶이 건강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운동이 너무너무 싫지만 막상 하기 시작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과 비슷했다. 인생에서 딱 한 번 2~3달 꾸준히 달리기를 해본 적이 있었는데 그 때가 그랬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기존 옷들이 넉넉해지는 신기한 경험을 했을 뿐 아니라 왠지 모를 활력 같은 것들이 생겼다. ‘이래서 사람이 운동을 해야 하는구나’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 유일한 운동 경험이 13년 전이었다. 아직도 그때의 느낌을 어렴풋이 기억할 만큼 인상적이었으나 그 뒤로는 일어난 적 없는 일이었다. 이틀, 사흘 자전거를 타거나 한강을 걸어본 적은 있었지만 일주일 넘도록 꾸준히 한 적은 없었다. 그렇게 인색했다. 내 몸에 얼마나 좋은지, 내 생활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경험해봤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내지 않았다. 물론 바빴지만 남들 이상으로 바쁘지는 않았다. 시간 없다는 것이 ‘핑계’라는 것은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사실이었다.
또 한 번 13년 전의 일이 될까 겁이 났다. 한 번에 가장 오래 달릴 수 있는 기간이 3개월 정도인 것 같은데 멈춘 뒤 다시 달리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서 하는 개인적인 프로젝트를 오롯이 혼자 했을 때 3개월 이상 지속한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나마 3개월까지 간 적도 한 손에 넉넉히 꼽힐 정도다. 한 때는 이 때문에 스스로를 ‘의지박약’이라 하여 엄청 괴롭힌 적도 있었다. 너무 괴로워서 특별한 위인 외에는 아무 장치도 없이 그리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이라고 다독여주기도 했으나 너무 풀어준 것 같아 걱정스럽기도 했다.
겁이 나는 이유는 여럿 있었다. 글쓰기가 업이 아니라면 하다 말다 한들 무슨 상관있나 싶지만 그게 그렇지 않으리라는 짐작이 가능했다. 운동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당장 생활에 아무 지장 없는 것과 비슷한 이치였다. 직장을 다니고 친구를 만나고 여행을 다니는데 있어 운동의 역할은 굉장히 미미하게 느껴졌다. 하루에 만 보를 걷지 않는다 해도 그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으며 심지어 일상 속에서 몸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운동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체력은 분명히 떨어지고 있었다. 삶은 결국 내가 힘을 낼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체력이 감소하니 일상의 영역도 줄어들었다. 퇴근 후의 몸 상태는 ‘방전’이라는 단어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해져 갔고, 그 상태로는 추가적인 무언가를 얻기 어려웠다.
수많은 활동들을 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그 많은 걸 해내세요?’, ‘그런 에너지는 어디서 나는 거예요?’, ‘체력이 대단하시네요’ 라고 말하는 것은 굉장히 적합한 표현이었다. 결국 내 에너지 총량을 늘리지 않으면 직장생활 버티기에 급급한 상태가 되는 것이었는데, 생전 운동을 하지 않는 나로서는 점점 줄어드는 한계에 맞춰 허덕이고 있었던 것이다. 운동을 해본 뒤로 몇 년이 지나서야 이런 상태를 깨달았는데 그때마저도 다시 운동을 시작하지 못했다. 운동할 힘이 없다는 핑계였다. 그렇게 점점 비실비실해졌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활이 건강해지는 활동이라고 느낀 몇 안 되는 것이었는데 이번을 마지막으로 앞으로 영원히 안녕이라면 생활은 건강하지 못한 방향으로 점점 더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흘러갈 것만 같았다.
글쓰기를 멈추게 됐을 때의 또 하나 걱정은 탐탁지 않은 시간으로 삶을 채워나갈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시간은 뭘 해도 똑같이 흘러간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무엇으로든 채우게 되어 있었다. 버스 안에서 멍하니 노래 들으며 창 밖을 보는 시간과 사무실에서 한 개의 이메일, 두 번의 통화, 대표의 부름에 응답한 시간이 비슷하게 각각 1시간씩 걸린다는 사실에 가끔 놀랄 때가 있었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와 전혀 상관없이 시간은 정확하게 흘렀다. 집에서 가만히 누워서는 자는 것도 아니고 영상을 보는 것도 아니고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닌 상태로 있다고 해서 시간이 멈추는 것은 아니었다.
글을 쓰기 위한 시간을 마련하느라 게임과 멀어졌던 것처럼 반대의 상황으로 회귀할 가능성도 충분했다. 다른 것이 채울 수도 있었다. 무엇이든 가능했다. 어쨌든 잡아놓았던 시간을 해당 행위가 사용하지 않으면 다른 것이 치고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정말 ‘텅 비어 있는 상태’로 시간이라는 열차가 달려가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으나 어지간하면 지겨워서라도 무언가를 하게끔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인생은 결국 이 시간이라는 것에 무엇을 주로 채우냐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었다. (뭐라고 갑자기 인생 얘기를..)
몇 가지 걱정들이 들면서 글을 계속 더 쓰고 싶어졌다. 운동처럼 ‘13년 전에 한 번 써본 적 있는데’라고 하고 싶지 않았다. 그 때 되어서 ‘꾸준히 썼다면 이러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막심 추측형 일기를 쓰고 싶지는 않았다. 어렵게 시작한 습관을 더 단단하고 예리하게 만들고 싶었다. 솔직히 계속하면 어떤 것들이 좋아질지는 예측하기 힘들었다. 운동은 몸무게라도 빠지고 체력이라도 좋아질 것이라는 상상을 어느 정도 하겠는데, 글쓰기는 그렇지 않았다. 삶에서 어떤 부분이 나아질 것이라는 가늠이 잘 되지 않았다. (주변에서 관련된 얘기를 많이 못 들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막연히 인생이 조금 더 건강해질 것 같다는 기대가 있을 뿐이었다. 글을 쓰기 위해 좋아하는 장르들로 삶을 채우면서 긍정적인 감정이 더 많이 생겨날 것 같다는 뜬구름 같은 기대 하나뿐이지만, 그 하나가 꽤 중요했다.
문제는 무얼 계속 써 나갈지 모르겠다는 부분이었다. 대학생 때는 영화를 본 뒤에 한 편씩 쓰는 것이 어렵지 않았는데 지금은 영 되지가 않았다. 일상에서 느꼈던 단상들을 풀어내는 것도 굉장히 인색해졌다. 생각하는 능력이 엄청 퇴화한 것 같았다. (그냥도 아니고 엄청) 그렇다고 오늘 날씨는 어땠고 아르바이트는 무슨 일을 했고 저녁은 무얼 먹었는지 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초등학생이 그런 그림일기를 조금만 특색 있게 SNS에 올리는 것이라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현재 쓰고 있는 내용이 일단락되고 나면 더 쓸 수 있을만한 얘기가 전혀 없을 것 같았다. 이 부분은 몇 달 전 이 글쓰기를 시작할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좀 쓰다보면 하고 싶은 얘기들을 더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했던 기대는 빗나가고 말았다.
‘글쓰기는 좋아졌는데 하고 싶은 얘기는 없다’라는 명제가 논리적으로 가능한 것인지도 의문이었다. 왠지 상충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는데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애초에 답이 존재하는 것인지도 의문이지만) ‘하고 싶은 얘기가 없다’와 ‘하고 싶은 얘기가 뭔지 모르겠다’ 중 어느 것이 정확한 표현인지 조차도 헷갈렸다, 어쨌건 다시 동일한 지점으로 돌아와 버린 것 같아서 살짝 낙담이 됐다. 직선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 아니라 원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그래도 다시 하면 될 일이었다. (훗, 이번엔 그렇게 오래 낙담하고 있지 않았다) 지난번처럼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아보고 얼개를 짜보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덤으로 이번에 아쉬웠던 부분을 그때는 조금 더 잘 처리할 수 있도록 피드백 시간도 가져보고. (요즘 넷플릭스 기업문화 때문에 ‘피드백’이 또 유행인 것 같아서) 무언가 잘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참 오랜만에 자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