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을 쓰고 싶지만 일단은 그냥 써야겠다

by 별연못

대학생 때는 재기발랄한 글을 무척이나 흉내 내고 싶었다. 주로 잡지나 신문의 문화세션 등에서 발견되는 어투였는데 센스 가득해 보였다. 호흡이 빨랐고 단어 선택은 남달랐으며 이야기는 매력적이었다. 내겐 그런 기사들이 글의 교본이었고 이상향이었다. 하지만 쉽사리 비슷한 느낌의 글을 뽑아내지는 못했다. 뭔가 어설펐다. 그런 기사를 보는 것은 좋아해도 평소에는 너무 일반인처럼 살고 있어서 전혀 그런 바이브가 묻어나오지 않는 건가 싶기도 했다. 가난한 애가 어쩌다 명품 옷 하나 입게 되었다 해도 부유한 티를 낼 수 없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인문서적을 읽을 때는 그 통찰력과 깊이를, 소설을 읽을 때는 다른 세계에 놓인 듯한 서사와 특색 가득한 문체를, 수필을 읽을 때는 소소한 유머에서부터 뭉클한 따뜻함까지 순간순간 눈에 띄는 것들을 부러워했다. 이런 것들을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작가’라고 불리는 것이 손색없어 보였고, 나도 그런 ‘글쟁이’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흉내 내지는 못했다. 깊이 있게 무언가를 관찰하는 것도 어려웠고, 서사와 그에 어울리는 문체를 창작하는 것은 엄두도 나지 않았으며, 일상의 한 순간을 프레임 안에 귀 기울여보고 싶게끔 담아내는 것도 막연해 보였다.




맞다, 어렵게 생각하고 있었다. 눈이 높아서 이성을 못 만나는 사람 같았다. “그냥 성실하고 좋은 사람이면 되”라는 도입부에 비해 본문에는 꽤 복잡하고 디테일한 설정들이 짜여 있는 경우였다. 가벼운 마음으로 만나보려다가도 가볍지 않은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프로세스를 시작해 끝내는 집구석을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설정이었다. 경험 많은 선배는 “많이 만나봐야 내가 어떤 사람과 잘 지낼 수 있는지도 알 수 있는 거야”라며 안타까워하지만, 듣는 이는 당장 그 앞에 선택지가 없음이 더 안타까울 뿐이다.


무슨 얘기를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심정은 완성도에서 비롯된 강박 비슷한 것이었다. ‘한 번에 딱 맞는 사람 만나 평생의 반려자가 될 거야’라는 애틋한 마음이 오히려 딱 맞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모르게 만들 수도 있다. 물론 사람과의 만남은 가장 중요한 일이니 신중해야 하겠지만, 실전에 나가지 않고 연습무대에만 주구장창 머물고 있는 것이라면 좀 답답하지 않을까. 그리고 오히려 ‘실수는 없어야 해’라는 ‘원 샷 원 킬’ 정신이 오히려 상황을 더 안 좋게 끌고 가기도 한다. 어렵사리 만난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지만, 자신이 그런 안목을 가질리 없다거나 다른 사람을 또 어떻게 만나야 할지 모르겠다는 두려움 등등으로 인해 나락에서 빠져나오기 힘들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왜 연애 얘기를 신나서 떠들고 있는 거지?)


무척 재미가 있거나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거나 의미심장한 글을 쓰고 싶다. 심지어 이런 모든 요소들이 조화롭게 녹아든 대작을 쓰고 싶기도 하다. 하나의 주제를 골라 한 번에 써내고 나면 책으로 출간되어서는 숱한 사람들에게 ‘인생책’으로 꼽히는 상상을 한 적도 있다. 이러니 글을 쓸 수 없었다. 양심은 있는지라 조금 써놓고 보면 상상 속 완성도와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거리감을 느꼈기에 더 지속할 수가 없었다. 때로는 주제조차 고를 수 없었다. 이런 내용은 너무 뻔하며 무릎을 칠만한 요소가 전혀 없으니 쓸 필요 없는 것이므로 폐기물 속에 처박아 버리곤 했다.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내게 그런 건 없었다. 그저 여행 얘기를 쓰고 싶었고, 조금 더 노력해본다면 좋아하는 것들을 리뷰하거나 분석하는 글을 써보고 싶었다. 여행 얘기도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직장 다니며 3~4일씩 짧게 휴가 내서 가까운 곳들 다녀온 이야기였다. 누구나 다녀온 곳이었고 누구나 경험한 루트였다. 그래도 그런 여행 얘기가 하고 싶었다. 특히 여행하며 함께한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아내와 더 가까워진 시간들, 가족과 특별하게 보낼 수 있었던 시간들, 친구와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눈 시간들을 기록하고 싶었다. 시간이 오래 지나 여행 정보로는 효용가치가 없겠지만, 사람과 관계의 이야기로는 읽을 만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었다.


칼럼이나 리뷰, 분석 등의 글을 좋아했고 써보고 싶기도 했다. ‘분석’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과 심오함 때문에 멈칫거려지긴 했지만 그저 취향을 드러내는 감상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야구나 만화에 대해, 혹은 야구만화에 대해서는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대학생 때 써보았던 영화 감상을 계속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영화나 드라마, 예능 등은 삶에서 늘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니 조금만 생각과 감상평을 더하면 곧잘 쓸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당연히 이 모든 것들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영화평은 넘쳐나고 있었고, (심지어 브런치에 두 편 올려본 것은 영 반응이 없기도 했다) 만화 리뷰도 색깔 있게 하고 있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여행 에세이는 그야말로 홍수였다. 비집고 들어갈 틈 같은 건 전혀 없어 보였다.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것이 전혀 아니었다.


“많이 만나봐야 알아”라는 말은 “많이 써봐야 알아”라는 말로 바꿀 수 있었다. 일단은 눈 앞에 끌리는 사람 만나서는 공도 들여보고, 행복해 보기도 하고, 아파해 보기도 하면서 자신만의 사람을 찾아가는 여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시시덕거리는 감상평도 써보고, 나름대로 비교하거나 의미를 발견할 만한 분석도 해보고, 사람 사는 이야기도 써보면서 나만의 무기를 장착해가는 여정을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반응도 들어보고 고민도 하면서 나름대로 잘 해보려고 애쓰는 그 평범한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는 것도 잊지 않으려고 했다. 늘 이 과정이 싫어서 아무것도 안 하고 쉬운 길로만 돌아온 얘기를 더 우려먹기에는 지긋지긋할 테니까.




그냥 앉아서 매일 써지는 타입은 아니었다. 고민 고민해서 ‘이번에는 이런 목차를 만들어서 써보자’라고 해야 유지할 수 있는 타입이었다. 여전히 이 글쓰기가 돈벌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내 삶을 위해 꾸준히 해야 하는 운동 같은 것이라고 여기는 마음이 갈등을 빚고 있어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할지 우왕좌왕 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그로 인해 한 글자도 적지 않는 것이 가장 최악이라 생각하고, 쓰고 싶은 것부터 차근차근 써봐야겠다는 마음을 가장 앞에 두기로 했다. 그러고 나니 ‘하고 싶은 얘기가 없는데?’라는 원인 불명의 모호한 고민에서 살짝 벗어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냥 하고 싶은 여행 얘기도 써보고, 관심 있는 것들 조금 더 주의 깊게 살펴본 얘기도 써보면 좋을 것 같았다. 다음에는 그런 얘기들을 좀 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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