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것이 조금 더 좋아졌다고 해도 ‘인생의 목표야!’라고 하기에는 쭈뼛쭈뼛했다. 나를 특징짓는 요소 중 하나가 되기는 바랐지만 그게 전부라고 할 만큼의 열정은 아니었다. 책 한 권 내는 것은 조금 더 구체적인 바람이었지만 아직은 막연한 꿈이었다. 냉정하게 말해서 초등학생의 꿈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러니 글쓰기는 내게 ‘취미’라고 부를 만한 것이었다.
취미를 인생 대부분의 시간에 할애하기는 어렵다. 경제적 이유가 가장 크다. 취미가 먹고 사는 문제도 해결해준다면 좋겠지만, ‘취미’라고 부를 때는 대부분 그렇지 못하기에 ‘취미’라고 한계 짓는 것일 테다. 생계를 위한 활동을 하고 남는 시간에 하게 되는 것이 취미생활이다. 운 좋게도 경제활동에 사용하는 시간이 적어서 취미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할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다.
돈 버는 일에 소홀히 하고 취미에만 몰두하는 것은 많은 경우 납득되기 어렵다. 학생이 공부 안하고 영화감상 취미에만 빠져있는 것과 비슷한 취급을 당할 여지가 크다. (사실 그보다 더 큰 비난을 받을 것 같다) 그 학생이 장차 영화평론가가 된다고 해도 학생의 신분으로 있는 몇 년 간은 두고두고 잔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그래도 그 학생은 언젠가 ‘학생’이라는 기간이 끝날 때가 오겠지만 사회인이 된 뒤에는 ‘돈 벌어야 하는 사회인’이라는 기간이 거의 끝나지 않고 영속될 가능성이 크다.
직장을 다니고 있는 동안 이런 글을 쓰고 있었다면 전혀 미안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조금은 당당하고 뿌듯한 감정마저 느꼈을지도 모른다. 경제적 활동을 해야 하는 사회인으로서 충분히 역할을 감당하면서도 그 외적인 시간에 추가적으로 좋아하는 삶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니 칭찬을 받으면 받았지 비난을 받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러나 돈을 잘 못 벌고 있는 백수에 가까운 기간 동안 취미라고 부를만한 것에만 몰두하고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굉장히 불편한 ‘미안한 감정’이 일상 전반에 깔리게 된다.
‘나 꼭 이런 글을 써서 이런 책을 낼 거야!’라고 얘기한다고 해도 미안했을 것이다. 예전에 아내가 그런 경우의 지인 얘기를 할 때 그분 힘들겠다며 거든 적이 있었다. 남편이 책 쓰는 일에 집중하느라 돈을 많이 못 벌어서 힘들어하는 지인의 얘기를 할 때 나 역시 그건 좀 이기적인 것 같다며 살을 붙였었다. 그래놓고는 비슷한 행태를 겪게 한다면 나도 마찬가지로 이기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도 그분의 남편은 사명감이 있었고 그 책에 온전히 몰입했다. 결국 책도 출간됐다. 삶이 아무리 빡빡해도 같이 사는 사람이 인생의 목표를 갖고 열정을 뿜어낸다면 응원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저런 인간하고 살게 됐나’라며 시시때때로 한탄한다 할지라도 반려자가 눈빛을 반짝거리며 최선을 넘은 최선을 쏟아내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결국은 지지하게 될 것이다. 삶이 더 멋있게 보일 수도 있고, 긍정적인 의미로 가득해질 수도 있다. (굉장히 일반화하고 미화해 얘기하고 있다는 것 안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훨씬 복잡 미묘할 것이다)
글 쓰는 것이 조금 더 좋아졌고, 계속해서 쓰고 싶고, 더 잘 쓰고 싶어졌다고 해도 아내에게 말하지는 못했다. 미안했다. 남편이 돈을 잘 못 벌고 있어서 힘들어도 직장을 쉬어보지 못하고 주구장창 근속하고 있는 사람에게 ‘나 쉬면서 좋아하는 걸 찾았어’라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높은 연봉으로 스카우트 제의 받았어’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삶의 행적을 아무리 되짚어봐도 그리 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사명감을 갖고 어떤 내용을 파고들겠다거나 글 쓰는 행위로 밥 벌어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이제 아침마다 한 시간씩 운동할 거야’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가계 경제에 도움 되는 일이 아니었다. 남편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은행 대출을 갚고 공과비를 내고 음식을 사는 것에는 도움을 줄 수 없었다.
눈빛을 반짝거리며 진심으로 모든 노력을 쏟아내는 모습을 보인다면 아주 조금은 덜 미안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난 이러기 위해 태어난 거야’라고 말할 정도로 분명한 태도를 취한다면 마지못해서라도 수긍해줄 것 같았다. ‘왜 예전에는 멀쩡한 척 하다가 이제 와 이러는 걸까’라며 한숨 쉰다 해도 결국은 응원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만큼의 믿음을 줄 수만 있다면 정말 아주 조금은 덜 미안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 기껏해야 여행 얘기나 리뷰 얘기를 연습 삼아 써보자고 이제야 간신히 마음먹은 상황이었다. 그런 눈빛이 나올 리 없었고, 삶의 이정표를 목소리 하나 안 떨리고 뻔뻔하게 거짓으로 토해낼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불안하면 불안한 대로 그대로 투영되는 얼굴이었다. 간신히 좋아하는 것 꾸준히 해보겠다고 얘기하는 것 이상으로는 힘을 줄 수 없었다.
나이보다 느리게 살고 있다는 것이 괜스레 서글퍼졌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다 얘기하지 못하고 온갖 생각으로 끙끙거려야 했다. ‘파이어족’이 부럽기도 했다. 좋은 직장 들어가 극단적으로 저축해서 30대 말에서 40대 초반에 은퇴한다는 그들이 왠지 참 현명하게 느껴졌다. (실제로 본 적 없이 기사에서만 접해서 존재하는 종족인지 늘 궁금하기도 하지만) 먹고 살 여력을 전혀 만들어놓지 않은 자신이 참 한심하기도 했다.
결국 ‘반백수’라는 정체성을 자신 있게 ‘프리랜서’라고 말할 수 있도록 바꾸던가, 웬만큼의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 전제되어야 했다. 브런치 같은 플랫폼에 글을 꾸준히 올리거나 가끔씩 글들을 모아 독립출판으로 사부작사부작 책을 만드는 일은 그 다음이어야 했다. 혼자 사는 것도 아닌데 한없이 이기적으로 살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자니 글쓰기 따위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여유도 없는 주제에 그럴 때가 아니라는 또 하나의 극단적인 생각이 곧바로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결국은 균형 잡기 문제였다. 먹고 살기 위한 삶과 좋아하는 것을 하는 삶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도록 할지는 적절한 분배에 달려있었다. 같이 사는 사람에게 미안해지면 자유로울 수 없었고,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끼면 책임감을 지속하기 어려웠다. 필요한 만큼 벌어야 하고, 하고 싶은 만큼 해야 이유 없이 지치지 않고 계속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균형 잡힌 분배가 가능하려면 부지런해야 하고 체력이 받쳐줘야 한다는 것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책 내는 것이 로망이라며 글을 꾸준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뿐인데, 고려해야 할 사항도 다스려야 할 감정도 참 많이 부대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