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번 내보고 싶다는 로망에 시작한 글쓰기였다. 별로 역동적이지 않은 삶을 길게 이어 붙이느라 고생을 조금 해야 했다. 보통 책 한 권 분량이 원고지 600매 이상이라고 해서 그만큼을 써보자는 목표였는데 생각보다 많았다. 관련된 경험을 쪼개면서 뭐가 이렇게 없나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었다. 그래도 뭐라도 쓸 게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웠다.
처음 목표는 30꼭지, 600매였지만 다 채우지 못했다. 28꼭지에 500매 조금 넘게 썼다. 못내 아쉽긴 하지만 이미 엿가락처럼 늘리고 늘린 이야기들을 더 어찌하지는 못할 것 같다. 처음 시작할 때는 ‘브런치북’ 당선이 목표였다. 남들보다 느리게 살고 있는 인간의 도전기를 솔직 담백하게 담아내 책으로 출간되는 상상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욕심이 없다. (정말이다. 아닌가? 정말일거다) 어찌어찌 끝으로 와보니 이런 정도로 책을 내는 것이 욕심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됐다. 상상처럼 이야기가 풍성하지도 재미있지도 않았고, 스스로의 노력 총량 역시 지극히 미미했다. (순간순간에는 그만큼 하는 것도 힘든 것 같았는데) 상상 속의 나와 현실의 나는 상당한 괴리가 있었다. 지금은 그저 목표한 바를 일단락 짓는 것만으로도 스스로를 토닥이는 중이다.
두 달 반 정도 걸린 것 같다. 직장 다니며 2년간 웹소설을 써 전업 작가로 변신한 후배에 비해서는 턱없이 모자란 시간이었다. (책 준비한 사람들 얘기 듣다 보면 다들 몇 년씩은 걸렸다고들 했다) 책을 내기에는 모자란 시간이었지만 취미를 발견하고 습관을 들이기에는 적절한 시간이었다. 이미 한 번 얘기한 적 있지만 시간 사용에 조금 떳떳해진 것이 가장 큰 변화였다. 하고 싶지 않거나 스스로 한심하다 여길만한 것에 시간을 사용하는 빈도가 줄었다. 글을 쓰자는 목표가 있었고, 목표를 이루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정된 시간에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으니 목표한 바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자연스레 나머지 것에 소홀하게 된다는 의미였다. 오랜만에 스스로 원하는 것에 시간을 쓰고 있으니 왠지 잘 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무언가 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상당 시간 동안 좋아하는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다고 얘기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의욕이 조금씩 상실되었던 것 같다. 삶의 방향을 모르는 것이 사람을 참 힘들게 만든다. 이래도 그만이고 저래도 그만인 사람이 열심을 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참 쓸 데 없는 안 좋은 생각마저도 하게 되는데 그게 또 참 한심하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어렵게 ‘이거 한 번 해봐야겠어’라는 마음을 먹었고, 두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지속했고, 좀 어설프긴 하지만 매듭을 지었으니 토닥거릴 만한 사건이었다. 꾸준히 하고 싶은 것이 생긴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고, 그건 삶에 대한 의욕과 연결되는 일이기도 했다.
‘책을 내고 싶다’는 ‘글을 쓰고 싶다’는 것과는 결이 조금 다른 것 같았다. 글을 쓴다는 것에 비해 책을 낸다는 것은 일정 정도의 짜임새와 분량을 요구했다. ‘책’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일반적인 기대치를 만족시킬 만한 정량적인 부피가 일단 필요했다. ‘이런 얘기를 하려면 이 정도는 해줘야지’하는 기준이 저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그래도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적정량을 고려해야 했다. 여기에 짜임새도 갖춰야 했다. 그 적정량의 분량이 정말 적절하게 느껴지도록 이야기를 구성하고 배치하는 작업이었다. 최소한 ‘이 책은 이런 내용이에요’라고 설명한 것이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나아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도록 필요한 것들을 필요한 만큼 필요한 곳에 놓아둘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책을 내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이 글쓰기에서는 고민을 더 많이 해야 했다. 한 꼭지의 분량도 예전보다 많이 써야 했고, 많이 쓰려니 이야기를 더 깊이 있게 다루어야 했다. 한 꼭지 내에서 이야기를 더 퍼내는 것도 간신히 할 판이었는데, 그런 이야기들이 나름 이어질 수 있도록 몇 십 개를 모아야 했다. 뭔가 기획 및 사고 훈련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글을 더 잘 쓰고 싶고 책을 내보고 싶다는 꿈은 결국 현실을 더 열심히 살아내야 한다는 의미가 되었다. 일단 생각하고 쓰기 위한 시간 확보를 위해서도 그랬지만 글감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더더욱 그랬다. 현재는 소설을 쓰고자 하는 것이 아니니 결국은 현실 경험이나 무언가 연구 비슷한 행위를 한 결과를 가지고 글을 써야 하는데, 책으로 엮어낼 만큼의 분량을 만들려면 꽤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인의 추천으로 읽게 됐던 <대리사회>만 보더라도 대리운전이라는 업을 치열하게 해내지 않았더라면 쓸 수 없었으리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러고보니 그 지인은 내게 열심히 좀 살라고 추천했던 거였나?) 결국 책을 내고 싶다는 꿈은 내 삶에 결여되어 있었던 ‘열심’을 다시금 채워내야 하는 문제로 귀결되었다.
다음에는 여행이나 좋아하는 것의 리뷰 등을 써보자는 생각도 ‘열심’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조금 더 평범하게 얘기해보자면 부지런해야 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그 분투에 못지않게 글쓰기에도 집중해야만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그 삶이 어느 순간 ‘치열하다’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뜨거워지면 조금 더 괜찮은 것들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고작 두어달의 소소한 노력으로도 긍정적인 변화들이 생겼는데, 더 길고 깊은 노력들을 이어갈 수만 있다면 꽤나 멋진 일들이 생겨날지도 모르는 것이니까. 그리고 자꾸 움직이고 알리고 부딪히고 해야 뭐라도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사회생활하며 끊임없이 봐오지 않았던가.
평범한 가치를 뒤늦게 깨닫게 해준 시간이었다. 좋아하고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찾으려면 노력해야 하고, 발견한 것을 조금이라도 꾸준히 하면 뭐라도 긍정적인 결과가 만들어진다는 평범한 이야기. 누구나 하는 이야기지만 내 삶과는 연관 없었던 이야기가 이제야 살짝 자리를 만들려 하고 있었다. 늘 쉽게 쉽게 돌아만 가느라 잘 경험해보지 못한 일반적인 시간들을 이제야 누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누가 만들어준 목표가 아닌, 스스로 만든 목표를 위해 열심을 내보는 것은 역시나 그 도전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도전이 끊기면 또 추진력을 얻는데 이만큼의 시간을 허비해야 할 것 같아 계속해서 뭐라도 하려고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