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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연못 May 03. 2024

‘잘하지 못해’라는 핑계로 반복되는 실수

  홍보대행사에서 기획업무를 담당하다 보면 종종 입찰 제안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제안서를 작성한 뒤 그 내용을 관계자들에게 설명하는 것인데 그리 재미있는 과정은 아니다. ‘입찰’이란 단어가 전제되었듯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일에 꽤 많은 공을 들여야 하는 작업이라서 흥을 끌어올리기 쉽지 않다. (그렇다고 다른 일이 흥이 난다는 의미는 아니다) 입찰 관련한 과정 중 개인적으로 가장 자신 없는 부분은 제일 처음과 마지막이다. 아이디어를 내야 하는 처음과 설명회 말미 질문에 답해야 하는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 


  홍보 관련한 제안을 할 때는 일단 눈에 띄는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그 수많은 제안서 중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거리가 필요하고, 이는 메인 아이디어가 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물론 아이디어가 좋아서 뽑힌다 해도 실행은 다르게 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제안 과정에서 아이디어는 거의 모든 방향을 결정하게 되는 중요한 역할인데, 개인적으로 이 과정에 가장 취약한 것이다. 사람이 창의적이지 못해서 아무리 생각해도 별다른 것이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남에게만 기댈 수는 없으니 방법을 찾긴 한다. 가장 확실한 것은 많이 보는 것. 준비하는 내용과 관련된 것부터 상관없는 것까지 되는대로 찾아본다. 그러다 보면 뭐라도 건지게 마련이고, ‘이런 것 봤다’라고 얘기하면 나보다 반짝반짝한 사람들이 기가 막히게 포장해주곤 한다. 


  이후 과정은 나름 순탄하다. 함께 방향을 정한 뒤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부분에는 제법 소질이 있다. (여기서 또 ‘디자인이 멋스러운 것’과는 거리가 있지만) 처음에는 흰 여백에 무얼 어떻게 채워 넣어야 할지 막연하기도 하지만, 인내심을 갖고 하나하나 작성하다 보면 어느새 매듭을 짓게 되고, 이후 다시 또 인내심을 갖고 수정하며 정리하다 보면 전해야 할 내용들을 촘촘하고 논리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제안서를 완성하게 된다. 제안서 외에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하는 것은 이상하게도 언제나 살짝 짜증스럽고 귀찮지만 이 과정도 차분히 진행하기만 하면 어렵지 않게 마무리된다. 


  던져야 하는 서류들을 모두 기관에 던지고 나면, 이제 프레젠테이션 과정만 남는다. 보통 15분 남짓한 시간 동안 준비한 내용을 발표한 뒤 5분 남짓한 질의응답 시간을 갖는다. (비슷한 성격의 입찰만 진행해 보아서 이 정도 규모의 일들이 기준이 되었다) 이때, 발표는 거의 문제가 없다. 개인적으로는 제안서를 정리하는 것보다도 더 잘할 수 있는 일이라서 10~15분 정도 앞에서 떠드는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부담감이 없다. 문제는 그다음 5분. 질문이 날아오고 그에 대해 적당하면서도 임팩트 있는 답변을 순간순간 날려야 하는 그 짧은 시간이 가장 암담한 순간이다. 난 정말 심장이 약하고 순발력이 형편없다. 


  전체 과정을 놓고 보면 이 마지막 질의응답 시간은 정말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이다. 그런데 중요하다. 관계자들의 궁금증을 해결해 줄 수도 있고, 강한 인상을 남길 수도 있다. 물론 반대가 될 수도 있다. 지지부진 어영부영 불안불안으로 마음에서 조용히 지워질 수도 있다. (사실 채점자 입장이 되어보지 않아서 정확히는 모른다) 그러니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할 때 이 질의응답 부분까지 꼼꼼하게 준비해야 함이 옳다. 특히나 심장이 약하고 순발력이 형편없다면. 하지만 그러지 않는다. 발표할 대본을 준비하는 것은 비교적 쉽지만 질의응답을 준비하는 것은 생각보다 힘이 들기 때문이다. 발표 대본은 지금껏 공들여 작성한 제안서를 기본으로 문장들을 서술하면 되지만, 질문과 답변은 다시 또 예상해 보고 생각하며 필요한 자료들을 찾아보아야 한다. 이제 준비가 끝났다고 생각한 시점에 이런 힘을 다시 내야 한다는 사실이 괴로우니 은근슬쩍 모른 척하고 준비를 덮는 습관이 개인적인 패착이 되곤 하는 것이다. 


  사실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면 어따ᅠ간 질문을 할지 예상 가능한 범위가 생긴다. ‘이런 부분을 강점으로 내세웠지만 이런 부분은 약점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하는 것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래도 언제나 예상 못한 질문들이 나와 당황하긴 하지만, 그런 것들은 일단 차치하고서라도 준비할 수 있는 부분들은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한두 번만 돌려보아도 덜 당황하게 된다. 되도록 덜 당황해야 필요한 답변을 필요한 만큼 할 수 있게 된다. 반대로 한번 꼬이기 시작하면 밑도 끝도 없이 꼬이기 마련이다. 


  결국 입찰 제안에서 가장 못하는 부분이라고 하는 이 질의응답 부분은 마지막에 힘을 빼버리기 때문이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준비해야 하는데 쉽게 쉽게 끝내고 싶어 하기 때문에 약점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는 준비과정의 마무리 시점을 잘못 선정한 탓도 있다. 입찰 제안을 준비할 때 ‘발표 준비’가 마무리가 아니라 ‘예상 질문과 답변 준비’가 마무리라고 설정했어야 애초에 누울 곳을 달리 선정할 텐데,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긴 시간을 힘들게 준비하고서는 마지막의 짧은 시간으로 ‘망쳤다’는 생각이 들면 참 허무한데, 이를 반복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노릇이다. 


  이 길고 긴 푸념도 또 한 번 프레젠테이션을 망치고 나오는 길에 늘어놓기 시작한 것이다. 제발 다음에는 여기에 늘어놓은 얘기들 좀 읽어보고 준비하면 좋겠다. 똑같이 따ᅠ갈어지더라도 스스로에게는 조금 덜 창피하도록. 이왕이면 준비한 결과가 좋으면 더 좋을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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