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별 거 아냐’라는 생각을 아무렇지 않게 하곤 했지만, 정작 자유롭지는 못했다. 아내와 휴가까지 내고 2박 3일 잘 쉬고 왔으면서도 정작 당일에 별다른 축하 메시지 하나 받지 못하니 못내 서운했다. 사람 마음이 참 이상했다. 아내가 마음 다해 넘치도록 축복해 주고 챙겨주어서 참 행복한 생일이라고 생각한 것이 하루 전이었는데, 생일 축하한다는 광고 메시지 외에 지인들에게 짧은 안부 인사 하나 받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세상 불쌍한 사람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꾸만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내려놓기를 반복하고 있는 스스로가 처량해 보이기까지 했다.
‘예전에는 참 많이도 축하 인사를 주고받았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카카오톡에 저장된 프로필들을 찬찬히 훑어가면서 생각에 잠겼다. ‘결혼하나 보네, 이 친구도 이제 아이 사진이 가득하구나, 프사가 이상한 거 보니 연락처가 바뀌었나?’ 제법 추억에 빠져 있다가 문득 또 한 번 되뇌게 됐다. ‘연락 안 한 지 진짜 오래됐구나.’ 그랬다. 지인들과 만나기는커녕 안부를 물은 시점도 까마득했다. 막상 길에서 마주친다 해도 어색하게 한두 마디 건네고는 스멀스멀 자리를 피할 관계로 변했을 만큼의 시간이 흐른 것처럼 느껴지기에 충분했다.
재작년에 한 번 십수 년 만에 만났던 고등학교 친구와 이야기 나눌 때는 참 서걱서걱하다는 느낌이었다. 반가웠고 어린 시절의 친근함이 즐거웠지만 대화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지는 않았다. 기억 속 마지막 시점의 모습이 여전히 유효한지 확인하는 절차도 필요했고, 그동안 어떤 부침과 변화를 겪었는지 조심스레 탐색하는 과정도 거치게 됐다. 술과 키득거릴 만한 어린 시절 이야기들로 몇 시간 보내기에는 어렵지 않았지만, 다음에 또 만났을 때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낼 수 있을지 살짝 막연하기도 했다.
‘이 친구와는 왜 그렇게 연락을 안 하고 지냈을까?’ 1차적으로는 삶의 경계가 달라진 시점이 출발선이었다. 카카오톡의 다른 프사들을 넘기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대학교, 이전 직장 등 함께 있던 공간에서 각자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면서 자연스레 연락이 뜸해지기 시작했었다. ‘그렇다고 모두가 연락이 끊기는 것은 아닐 텐데?’ 마음과 시간을 내서 보고자 하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일에 치여 바쁘다는 핑계가 가장 컸다. 그리고 그 핑계는 어쩌다 한 두 번 생각해 본 것 같은데, 시간은 어느새 몇 년씩 흘러가 있었다.
몇 년이 흐른 어느 시점부터는 스스로의 인생 고민에 깊이 함몰되기 시작했다. ‘난 왜 지금 이런 정도밖에 못 된 거지? 왜 이 나이가 되도록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거지?’ 바쁘게 일하고, 윗사람 욕도 하고, 종종 이직도 하면서 적당히 성실하게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나이가 든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웠다. 이전처럼 ‘더러워서 내가 옮기고 말지’라는 감정으로 이직하기가 거의 불가능해졌고, 프리랜서라도 하자니 경력도 인맥도 능력도 너무나 남루했다. 아직 먹고살아야 할 세월이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남았는데, 스스로 그 먹고 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거의 밑바닥 수준이라는 현실을 깨닫고 나니 인생이 너무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사실 이 문제는 나에게만 일어나는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또래 사람들과 어쩌다 이야기 나누다 보면 대부분 하고 있는 고민이었다. ‘지금 다니는 회사를 생각보다 오래 다닐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그 이후에는 어디서 어떻게 수입을 만들어내야 할지 막막하다’는 류의 고민은 안타깝게도 흔하디 흔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문제가 내 문제가 되었을 때는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이렇게 남루한 인생을 살고 있는 시점에 누군가를 만나 굳이 시간과 돈을 쓴다는 것이 어리석은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 시간에 앞으로 닥칠 재난을 어떻게 해야 피해 갈 수 있을지 방법을 찾는데 몰두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 일쑤였다.
자신의 문제에만 함몰되어 있다 보니 여유라는 것이 공존하기 어려웠다. 다른 사람의 인생사가 귀에 들리지 않았고, 주변에서 관계들이 사라져 가는 것이 보이지 않았다. 내 인생이 조금 나아지면, 조금 더 그럴 듯 해지면, 그러고 나면 그때 만나서 밥도 사고 얘기도 들어주고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동안 사람들은 모두 날 위해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인지, 그리고 왜 일방적으로 ‘내가 사주고’ ‘내가 들어주고’ 한다고 생각했던 것인지. 이성적이지 못한 불안함으로 자기 문제에만 함몰된 사람은 이렇게나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부류의 모습으로 강화되어 가고 있었다.
‘생일에도 연락이 없는 게 당연한 결과였네’라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해서 감정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씁쓸했다. 하지만 본인의 문제이니 누굴 탓할 수도 없었다. 씁쓸했지만, 그래도 그 이상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원인을 알았으니 노력해 보는 쪽을 선택할 수밖에. 지금 이 모습이 아무래도 못마땅하니 스스로 즐거워할 수 있는 방향으로 틀어보기 위해 마음과 시간을 들여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수순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별 볼 일 없는 현실이 여전히 달라진 것은 아니니 열심을 내어 능력을 개발하는 시간을 갖되 지인들과의 시간에도 마음을 열고 또 열고.
사실 고민이란 것도 누군가와 나누었을 때 가벼워지기도 하고, 의외의 방향을 찾기도 한다는 것을 심심치 않게 경험해 왔으니 이제는 제발 그러한 점들을 망각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을 불어넣었다.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인생이 혼자서만 끙끙대는 인생보다는 훨씬 행복해질 여지가 많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