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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채원 Jul 08. 2020

찬란한 길

통근길 독서일기 11.

마거릿 드래블 <찬란한 길>


대산세계문학총서를 처음 접하게 된 계기는 유배 중에 읽었던 페터 바이스의 <저항의 미학>이었다. 나는 이 소설 서두에서 벌어지는 페르가몬 부조의 묘사부터 압도당했다. 아마 앞으로도 사랑하고 되풀이해서 읽을 소설이 있다면 <저항의 미학>이 될 것이다. 그때부터 이 시리즈에 관심을 두게 되었지만 문학에 대한 관심은 그리 크지 않아 읽어본 책이 별로 없다. 슈테판 츠바이크를 읽으려고 하면 마이클 코넬리가, 리 차일드가 놓아주지를 않아서다. 


마거릿 드래블의 <찬란한 길>의 소개를 보고 이 책을 읽어보리라 결심한 이유는 대처리즘의 등장이라는 특정한 시기가 나의 오랜 문화적 열광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는 점이 첫째이고, 그 속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두 번째였다. 예전에 여성 주거안전에 대한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이 사회의 수많은 여성들이 배달음식과 택배를 두려워하고 남자의 신발을 들여놓고 살며 창호를 검은색 필름으로 칠해놓고 사는 모습에 놀랐고, 이런 이면을 이태까지 모르고 살았다는 내 무지에 더욱 놀랐다. 사회 구성원의 절반이 일상에서 안전을 고민하고 도모하며 살아가야 하는 사회, 그리고 그 절반은 무지와 무시에 빠져 살아가는 곳이라면 그 어디라도 기형적인 사회일 수밖에 없다.  


이 소설은 여성의 얼굴을 한 야만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다. 케임브리지 동창인 고학력 여성 3명. 성공한 언론계 거물과 결혼한 정신과 의사 리즈, 수감자들에게 영문학을 가르치는 알릭스, 그리고 영국과 이탈리아를 오가며 재야에서 미술을 연구하는 에스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과 대결하는 영초 언니 같은 패기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여기서 대처리즘으로 대변되는 뉴라이트와 신자유주의의 발흥은 마치 통주저음처럼 소설 전반을 흐르는 정조를 만들어낼 뿐, 직접적으로 인물에 작용하지 않고 있다. 대신 주요 남성 캐릭터들은 점점 시대적 배경에 맞게 변모해가며, 정작 주인공들은 남성 주인공에 종속적인 형태로 반응할 뿐이다. 그럼으로써 소설 속에서는 크게 두 개의 균열이 일어난다. 사회의 진보적 전망을 프로그램으로 승화해 저명한 저널리스트가 된 리즈의 남편 찰스는 그런 전망들이 저물어가기 시작하자, 역설적으로 출세가도를 달리고 대처 집권에 맞춰 갑작스러운 이혼을 통고한다. 가정에서의 균열. 없는 사람, 못 배운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며 생전에 사회주의가 실현되기를 소망하던 알릭스의 남편 브라이언은 대처 정부의 인문학 프로그램 축소에 따른 실직의 위기를 겪게 되고 점점 전투적인 실천가로 변모한다. 세상과의 균열. 가정과 세상 그리고 모두와 거리를 유지하며 고고하게 사는 에스터는 결국 고립으로 말미암아 나중에 큰 일을 당할 뻔하게 된다. 세상 누구도 안전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상태, 경제적으로 부유한 리즈는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정권 아래 풍요로운 생활을 영위하는 데서 괴리를 느낀다. 그리고 마지막에 어머니가 사망하고 나서 그 괴리와 위화감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소설의 제목인 <찬란한 길>은 리즈의 남편, 찰스를 성공적인 언론인으로 만들어준 유명 프로그램의 제목이기도 하지만, 세 사람의 성장기에 글을 배우던 교재 이름이기도 했다. 찬란한 길은 배움의 길이다. 교육은 세 사람의 미래에 찬란함을 약속했다. 하지만 리즈가 찬란한 길을 교재 삼아 글을 배울 때,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아버지의 부풀어 오른 성기가 미래의 위험을 예고하고 있었음을 당시에는 알 수 없었다. 북부 도시에 평범한 가정 주부로 남았던 리즈의 동생 셜리에게는 그런 위험이 없었다. 이 세 사람의 인생은 그 찬란한 길을 계속해서 걸음으로써  수많은 인생의 굴곡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마거릿 드래블의 문체를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다. 드래블은 다종 다양한 명사, 형용사, 부사들을 스타카토로 끊어치는 독특한 문체를 구사하고 있다. 왜 이런 문체를 구사할까? 문체적 특징이 주제의식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 읽으면서 계속 생각이 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다변성이 여성 서사의 특질이라고 정의하는 데에는 단호하게 반대하고 싶다. 그런 견해는 성적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특징적인 문체는 한정된 문장 내에서 입체적인 정보를 전달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자, 개인적인 특질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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