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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채원 Sep 11. 2019

이용마 기자를 기억하며......

한참 시간이 흐르고나서야 용마 형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형과 개인적인 교분은 두텁지 못했지만 함께 어깨걸고 싸운 파업의 동지였으며 존경하는 선배였고, 파업 당시 피디들에게 팔자에도 없는 기자질을 강요했던 노조 특보팀의 팀장이었다. 하지만 용마 형과 나 사이의 우정의 역사는 곧 오해의 역사였다. 나는 형을 줄곧 오해해왔으며, 내 잘못된 상상을 가끔 덧붙이기도 했다. 


건강한 용마 형과 마주했던 게 언제였던가. 파업이 끝나고 여의도로, 신천으로 뿔뿔이 흩어지던 때, 혹은 그 전이었을 것이다. W 형과 내게 위로차 술을 사준다고 상수동에서 만나기로 해놓고서는 살가운 말도 몇 마디 없었다. "잘 지내냐? 지낼만 하냐?" 이런 정도. 술도 못마신다면서 몇 잔을 거푸 들이키고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던 때, 나는 용마 형의 불룩 나온 배를 보고서 킬킬댔다. "와 이 형 배부른 거 봐라. 파업 노동자가 배는 완전 부르주아여, 허허허" 그때의 뱃속에서 얼마나 끔찍한 것들이 형을 갉아먹고 있었는지는 형도, 나도 몰랐다. 


용마 형을 처음 만났을 때는 또 언제였던가. 형이 노조 간부로서 파업을 설득하기 위해 시교국 총회를 방문했을 때였던 것 같다. 사람들은 형을 '노조의 브레인'이라고 불렀다. 또는 'MBC 노조가 낳은 불세출의 전략가'라고 불렀다. 그러면 형은 밝게 웃으며 '불세출의 전략가 이용마입니다.'하고 응수했다. 천성이 냉소적인 나는 '뭐가 브레인이고 뭐가 전략가지?'하면서 형을 의심했다. 내가 살아오면서 겪어온 바에 비추면, 상황판단이 뛰어나고 신묘한 계략을 짜내고 하는 사람들은 그 계략을 자신을 돋우는 데 쓰기 마련이며, 대개 전략가연하는 사람들은 부업으로 소위 '사쿠라질'도 잘하기 마련이다. 전략가를 자임하는 사람치고 제대로 사는 꼴을 못 봤기에 형의 첫인상은 역시 오해와 불신으로 남았다. 


노조 특보팀에서 마주쳤을 때도 용마 형은 이상한 사람이었다. 실없는 농담도 없었고 항상 진지했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사람이었다. 노조 특보팀에서 "파업 중인데 집회 끝나고 12시까지 기사를 쓰라고요? 다들 파업이라고 당구장 가 있는데 나는 뭐야? 저 준우 형님하고만 일할래요. 그 형님은 따뜻하더만. 인간미도 있고 집에도 일찍 보내주고!"하면서  뗑깡을 부리면, W 형이 웃으면서 말리곤 했었다. "그렇게 말해도 소용없어, 용마 형은 사이코패스야. 목적만 생각하지, 후배들 생각은 일절 관심 없어. 로보트야." 내게 노조 특보팀의 기억은 대개 이런 것이다. 


용마 형은 하던 말만 고집스럽게 하고 로보트 같았지만 한편으로는 고생 하나 안 해본 것 같은 부잣집 귀공자 용모에 똑똑했고, 기자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내가 봐도 천상 기자였다. 이 형은 앵커감이다. 어찌 보면 이 형도, 정권이 바뀌고 좋은 세상이 오면 꽃길을 걷게 될 거라서 이렇게 열심인지도 몰라. 9시 뉴스데스크에서 뉴스를 전하는 새된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겠지. 형을 오해한 것일까 싶었지만 당시의 형을 보면 앵커도 할 것이고 그러다보면 더 욕심을 부려서 국회의원 출마도 하겠고 화려한 미래가 약속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역사는 악마와 맺은 계약과도 같아서, 호의로 사람들의 헛된 희망을 끌어올리다가는 어느새, 방향을 바꾸어 사람들을 절망의 나락으로 밀어버린다.  메를로퐁티가 이를 '역사의 악의'로 표현했던가. 파업이 끝나갈 무렵, 노조원들에게는 그래도 희망이 있었다. 이명박이 만들어놓은 오욕의 세월을 견디다 못한 사람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며, 정권이 바뀔 것이다. 그러면 회사도 빠르게 재건될 것이고, 죽어라 일할 날만 남았다는 너무나 헛된 희망. 51.6%로 박근혜가 당선되었을 때, 나는 소변기 파이프가 새서 오줌 냄새가 나는 구석진 DMB 주조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용마 형은 쓰러졌다. 


형이 수척해진 얼굴로 다시 나타났을 때, 예의 못된 버릇이 또 나타나 나의 그릇된 상상으로 형을 덧칠해버렸다. 저 형은 암이 침범할 만한 형이 아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형이다. 근데 암이 어디 생겼대요? 복막이래. 장기에 생기면 떼내면 된다지만 복막은 어렵대. 아 하필이면 왜 그런 데에? 그래서 어떡한대요? 형이 산에 들어가서 치료법을 연구해본다. 용마 형답네, 곧 일어서시겠지. 믿기지 않아도 믿어야 했다. 심지어 형을 잘 아는 선배가 이제 준비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고 했을 때조차 형을 믿었다. 형은 질기고 독하고 당당하게 살아나서 다시 뉴스 스탠드에 설 수 있을 거라고. 


설령 임종을 지켜볼 수 있었다 하더라도 내가 믿지 않을 수 있었을까? 비보를 전해들었을 때 내 첫 감정은 슬픔보다는 분노였다. 죽을 놈들이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그 다음은 당혹이었다. 김재철도 저리 '단디'해서 네티즌들에게 푼돈을 구걸해가며 천박하기 그지없는 목숨을 이어가는데, 형이 먼저 가야할 이유가 무엇인가? 고대 사람들이 믿었듯이, 운명이 어떤 구체적인 형상을 지니고 있다면 나는 다시 한번 되묻고 싶었다. "수없이 많은 젊음, 수많은 가능성을 앗아가버리고도 모자라 또 우리에게 동료를 잃은 슬픔마저 안겨줘야 하는가" 비극이 운명의 부당성에 대한 집단적 항의의 기억을 만들어가는 것이라면 나는 형의 죽음을 한국 언론사에 길이남을 비극적인 장면 중 하나라고 하겠다. 그리고 다음에 든 감정은 현실 부정. 이게 사실일 리 없다. 형은 어디 두메산골에서 맛없는 된장밥 먹으면서 권토중래를 꿈꾸고 있을 것이다. 뗑깡 피우던 후배의 모습으로 남고 싶지 않아 힘이 없어 답신은 못하지만 카톡은 꼬박꼬박 읽는다는 소식을 전해듣고는 너무 늦었음을 알면서도 "형 보고 싶어요. 어서 건강하게 돌아오세요."라고 문자를 보냈다. 답은 없었다. 역시 로보트. 


회사에서 마련한 버스가 아산 병원에 다다를 무렵, 가까스로 눈물을 참고서 빈소에 들어섰다. 하지만 ENG 한 대가 외눈알을 번득이며 노려보고 있었고 정치가들, 명망가들, 심지어 사장과 임원들까지 둘러싼,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는 빈소의 풍경. 이 로보트는 마지막까지 후배들 마음에는 관심이 없구나. 녹진해진 마음을 추스리고 마른 눈물을 삼키며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형은 생전에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라는 책을 냈었다. 나는 삼척동자도 알 만한 바보같은 소리로 제목을 정한 게 불만스러웠다. 간지가 안 나잖아? 만약에 형이 건강하게 있었다면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채원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은 바보들도 알 수가 있지, 하지만 바보처럼 해내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있니?" 형은 바보로 태어나서 바보로 살다가 바보 같은 책을 내고 바보같이 죽었구나. 


평생에 별로 눈물이 없어 나를 낳아준 어머니에게서조차 독종 소리를 듣던 내가 형이 또한 팔자에도 없는 캐딜락을 타고서 개선장군처럼 회사를 돌던 날, 왜 그토록 서럽게 울었는지 모르겠다. 왜 그랬을까? 나는 형 덕에 뭣 같아진 조직에서 씨발씨발 거리면서 미친 놈처럼 일하는데, 형은 뉴스 스탠드 한 번 서보지 못하고 이 풍진 세상에 씨발 소리 한 번 못 뱉고 간 데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는 형이 마련해준 것이라는 데 대한 고마움,  제작 한 번 해보고 싶다고 모리배들에게 빌면서, 당당하게 싸우는 형님 누님들 등 뒤에 숨으면서, 형에게는 질기고 독하고 당당하게 살아남아야 한다고 빌었던 데 대한 부끄러움, 형 살아 생전에 땡전 한푼 없이 밤새 일하는 홍보국장 하시느라 고생하십니다 소리 한 번 못해 본 데 대한  아쉬움. 교차하는 감정들 덕에 형 가시는 길에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밖에는 아무 말도 보태지 못했다. 붓으로 눈물을 찍어본들, 이미 떠나버린 형에게 한 마디 전할수야 없겠지만 이 비루한 글로 조사를 대신하기 전에 마음이라도 전하고 싶다. 


용마 형, 형의 정신은 이토록 강건하면서 왜 형의 육신은 이다지도 유약합니까? 참으로 야속합니다.


(20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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