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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채원 Sep 20. 2019

<PD수첩>에 대한 단상

출근 일기 1.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잘하리라 믿지 않던 곳에서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들을 꾸역꾸역 해낼 때, 불행과 역설이 쌍둥이처럼 잉태된다. 그래서인지 내게 피디수첩을 잘하고 있다는 말처럼 부당한 칭찬은 없었다. 오직 한 가지 일만 하도록 강제받은 사람에게 잘한다는 칭찬처럼 잔인한 말이 더 있을까? 선천적 시각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너는 청각이 예민하구나 하듯이. 스톡홀름 증후군처럼 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어느덧 '정'도 들어버렸다는 사실 또한 나를 더욱 불행으로 몰아넣는다. 살아오면서 항상 밝고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해왔지만 피디수첩은 이 사회의 어두운 곳을 보지 않고는 어떤 밝음도, 어떤 아름다운 것도 가능하지 않음을 끊임없이 가르쳐준다. 그렇기에 피디수첩은 내게 그야말로 오랜 애증의 대상이었다.


이런 독특한 양면성 속에서도 직업적 자존심 때문인지, 아니면 일종의 부산물이랄지 이런 피디수첩을 해보고 싶다는 지향은 있었다. 어쨌든 피디수첩이 아무런 생각 없이 만들 수는 없는 프로그램이었기에. 부영, 한전, 4대 강, 영풍 등을 연출하면서 항시 마음속에 담아왔던 야심은 이런 것이었다. 이왕 할 바에야 피디수첩다운 피디수첩을 하고 싶다. 물론 피디수첩에 맞는 전범이란 없다. 그렇기에 피디수첩은 엄연한 사실들이 피디 각자의 고유성에 투과됨으로써, 그러한 고유성이 백화제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만큼은 집요하리만치 강요하고픈 덕목이 있어왔다는 사실은 돌이켜봐도 새삼 놀라운 일이다. 어째서 어떤 규범에도 얽매이기 싫어하는 보헤미안에 가까운 사람이 동시에 마의 산에 나오는 나프타 뺨칠만한 완고한 형식주의자가 될 수 있었을까? 예술이 곧 형식에 대한 복종을 의미하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이런 태도는 아마도 피디수첩의 형식을 규정하는 가장 큰 계기가 현실에서 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개인적 역량이 뛰어난 피디라도 현실이 용납하지 않으면 한 발짝도 전진할 수 없다. 아르놀트 하우저가 예술에서 첫 획과 그다음 획 사이에 얼마나 많은 세상과의 투쟁의 계기가 숨어있나 반문한 점을 기억해보자. 피디수첩은 개별 피디들에게 끊임없는 기지와 반성을 요구하는 총력전의 장이며 피디의 역량과 현실의 강고함 간의 변증법적 관계의 산물이다. 어둠 속에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내디뎌야 하듯, 제보자의 말 한마디에서 무엇을 믿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 끊임없이 숙고해야만 하는 조심성과 사회정의 실현에 복무한다는 긍지에서 오는 객기 사이에서 어렵사리 균형을 잡아나가야 한다. 방송이 끝날 때마다 내가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올랐다는 성취감보다는 이 번 텀은 잘 막았다, 겨우 연명했다는 안도감이 더 컸다는 사실은 이 프로그램이 얼마나 많은 (실제적인) 압박과 (주체적인) 압박감이 있었나를 방증하는 근거다.


이런 어려움들을 감안하면 피디수첩에서 무엇을 잘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은 적절하지 못하다. 내가 잘할 수 있다고 해도 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리어 이 일을 해나감에서 무엇에 관심이 있고 어떻게 만들고 싶은가 하는 질문이 마땅히 돌아와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에 관심이 있고 어떻게 만들고 싶은가. 우선 나는 단발적인 사건을 재연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중계하는 것, 더 나아가서는 사소하고 일회적인 사건의 실마리를 따라 사회구조적 모순으로 깊숙하게 하강하는 것. 충분한 대안을 제시해서 모순을 해소하려는 시도보다는 지금껏 중계해온 현실이 봉착하는 아포리아, 사회의 근본적인 변혁을 상상하지 않고서 는 맞닥뜨릴 수 없는 사회적 아포리아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 재연도 CG도 필요 없는 정말 날 것 그대로의 영상. 이런 것들을 만들고 싶다. 한 번도 만들어보지는 못했지만 이런 경지에 한 번쯤은 도달해보고자 하는 야심이 이런 불구덩이에서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니었나 싶다. 보다 사소하게는 선배와의 약속. 그 선배가 약속하지 않았을지라도 내가 약속으로 오해했던 것. 세상 물정 모르고 좋은 환경 속에서 온실 속의 화초처럼 커 나온 사람에게 '채원아 아무 말 말고 딱 2년만 피디수첩 해봐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선배님은 내게서 무엇을 보셨습니까' 응답에 대한 채비를 못했다는 미련 때문이다. 더욱이  가장 중요했던 이유는, 세상과 싸워 나가는 과정에서 기댈 곳을 찾지 못하고 모든 것을 박탈당한 사람들, 혹은 내가 파업 때 너무나도 고대했었던, 저 멀리서 누군가 우리의 얘기를 들어주기를 바랐던 경험을 이제야 겪고 있는, 그런 사람들의 눈빛, 그 눈빛을 잊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촛불이 일고, 다시 피디수첩 팀 책상에 앉았을 때, 일기에 각오를 다졌었다. 빛이 나지 않더라도 빚을 감 심정으로 하겠다. 나는 이 각오에 어느 정도 부응하고 있을까, 지금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데. 나프타가 세계 정복의 전위에 서 있으면서도 특유의 예민함으로 그 전위 바깥으로 밀려나듯이, 나 또한 그런 역설에 봉착하고 있음을 요사이 부쩍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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