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괴담회 시즌4 제작일지
<심야괴담회>가 정규 방송으로 안착하고 얼마 뒤, 어느 시청자가 남긴 댓글을 캡처해 두었다. 이렇게 원초적이고 단말마적인 욕설과 비명만큼 더한 찬사는 없는 것 같아서다. 최초 기획안과 파일럿에서 <심괴>는 토크쇼였다. 괴담을 잘 된 것이든, 못 된 것이든 가리지 않고 소개를 하면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파일럿을 보고 나서 정규로 안착하면서 위에서 그렸던 그림은 달랐던 것 같다. <심괴> 기획에 대한 이해는 그저 <다큐멘터리, 이야기 속으로>의 부활 정도에 그쳤고, 기획안에 심어놓은 트렌디함은 가볍게 무시해 버렸다. 그래서 재연 전문 PD가 붙어서 재연을 도와주기로 하면서 현재의 틀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방식은 마치 경차의 엔진에 슈퍼카의 바디를 얹은 것과 같아 이후 <심괴>의 모든 방향을 규정해 버렸다.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재연은 <심괴>에게 '파르마콘'이다. 잘 쓸 때는 약이 되지만, 잘 못 쓸 때는 독이 된다. 아니, 좀 더 쉽게 말하면 뮤직비디오와 같다. 잘 찍어오면 스토리를 확 살려주지만, 못 찍어오면 스토리의 매력을 감퇴시킨다. 그럼에도 퀄리티에 대한 욕심을 부리지 못하는 이유는 저예산과 극악의 노동강도 때문이다. 시사교양에서 만든 프로그램은 유독 노동강도가 높다. <심괴> 이전에 정규 안착에 성공한 프로그램이었던 <불만제로> 또한 조연출이 주말에 닭을 키우고 장어와 미꾸라지를 기르며, 위조된 이력서로 위장 취업을 감행하는 극악한 프로그램으로 이름이 높았다. 당시 밤 11시에 퇴근하면, 오늘은 뭐라도 하고 잘 수 있겠구나 기분이 좋았을 정도였다. 휴식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였고, 어마어마한 노동강도가 어느 정도였냐 하면, 벌어놓은 돈을 쓸 시간이 없어 지금 내가 몰고 있는 자동차는 <불만제로>와 <PD수첩>을 마치고 일시불 현금이체로 산 것이다. 그래서 그다음 파일럿이 나올 때마다 연출하는 선배들에게 "후배들에게 더 이상 죄를 짓지 말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으나, 이제 내가 후배들에게 크나큰 죄를 짓고 있다. 촬영일은 단 하루, 편당 제작비는 몇 백만 원 언저리 내에서 오로지 밤을 잊은 중노동으로 해결해야 한다. 배우들은 열악한 환경에, 2시간이 넘는 분장을 견뎌가면서 일하고 제작진들도 새벽까지 이어지는 촬영에 편집팀에 인계 작업까지 마쳐야 하는 상황이다. 가장 큰 문제는 대본이 일단 길어지고 재연에 적합하도록 재가공되다 보니 원문의 분위기를 살릴 수 없게 된다. 그러면서 시청자들이 더 큰 자극을 바란다는 가정 하에 점점 더 까다롭게 스토리를 고르게 되면서 금세 스토리가 고갈되는 조로증이 오는 것이다.
심버지로서 재연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는 역시 양가적일 수밖에 없다.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노력이 들어간 재연은 어느새 <심괴>의 꽃이자 <심괴>를 지탱하는 기둥이 되었다. 하지만 재연을 통해 우리는 미래를 가불 하면서 프로그램의 수명을 앞당기게 되었다. 타개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별다른 타개점은 보이지 않는다. 이번 시즌을 시작하면서 오디오를 강조한 포맷을 생각해 봤으나 연이은 일정에 포맷을 개조하기는 쉽지 않았다. 게다가 유독 이 프로그램의 보수적인 시청자들은 조그만 변화도 용납하지 못하는 것 같다. 결국 궁여지책으로 생각한 것이 A.I였다. A.I 이미지를 프로그램에 사용하면서 졸지에 기술 친화적인 PD가 되었지만, 나는 뼛속까지 문돌이로서,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굉장히 낮다. 심지어 편집에 사용되는 미디어스테이션의 개념도 조연출이 없으면 해결하지 못할 정도다. A.I를 사용한 이유는 단 하나, 제작비가 삽화보다 저렴하고 결과물이 긴급한 편집일정에 알맞기 때문이다. 게다가 A.I를 적용한 영상물을 제작하는 프로덕션의 젊은 디자이너와 개발자 중에는 그저 '덕심'만으로 도와주려는 <심괴> 팬들도 많다. 하지만 A.I에 대한 시청자들의 불쾌감이 표출될 때마다 시청자들에게 죄를 짓는 심정이다. 하지만 A.I 이미지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재연에 소요되는 예산과 노동력을 어떻게 아낄 것인가. A.I로 아낀 자원을 재연에 쏟아붓는다면, 그래서 에피소드 3개 중 1,2개 정도의 퀄리티를 높일 수 있다면, 눈 감고 귀를 닫고 밀고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이제 재연은 <심괴>의 유전자에 깊이 각인되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모 PD들은 하루 만에 만들어낼 수 없는 영화적인 연출로 나를 경악케 하면서 그동안 재연에 대한 판단마저 의심하게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내가 추구하는 바는 토크쇼였고, 재연이 접근성을 해친다는 판단에는 변함이 없다. 좀 더 내가 고집을 부려 기획을 끝까지 밀고 나갔으면 어땠을까? 재연을 토크쇼의 약발이 떨어질 때 극약처방으로 사용했다면 좀 더 힘 있게 몰고 나가지 않았을까? 4번의 시즌이 지났음에도 이 번민은 항상 뇌리에 도사리고 있다.